[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저작권은 별도로 신청하거나 국가기관에 등록하지 않아도 성립하는 권리다. 따라서 다른 지식재산권에 비해 존재와 성립 여부를 주장하는 것이 간편하다. 저작물의 질적 수준이나 산업에 기여하는 정도가 낮더라도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다. 저작권법은 보호 대상이 되는 저작물의 내용이 경제적·예술적 가치가 있는지, 제작에 많은 비용이 들었는지 등은 따지지 않고 저작자의 창작성만 있으면 저작물로 인정한다.
즉 ‘저작물의 품격은 기호의 문제이지 무엇이 저작물인지를 좌우하는 문제가 아니다. 창작성이란 그 예술적 가치나 경제적 가치와 관계가 없으므로, 어린아이가 그린 천진난만한 그림이라도 창작성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박성호, 저작권법, 48면). 이처럼 저작권은 성립요건의 허들이 높지 않으므로 특허권이나 상표권 등 다른 지식재산권에 비해 실무상 권리자가 쉽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다.
저작권은 물권과 같은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강력하다. 예를 들어 어느 게임 회사에 받을 돈(채권)이 있다고 해서 법원에 그 회사가 서비스하는 게임의 중단을 청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게임에 사용된 이미지, 에셋 등의 요소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면 게임 서비스를 중단시킬 수 있어 게임 회사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만약 게임에 사용된 배경 이미지가 저작권 침해물이라면 그 게임의 서비스 중단을 청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다. 권리자는 이 같은 강력한 카드를 활용해 게임사와의 라이선스 비용 협상 등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통과정에서도 저작권은 제조업체, 독점 유통업체(공식 대리점) 등이 병행수입업체 등을 관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공식 수입품과 비교해 병행수입품은 항상 가품인지 의심받는 약점이 있다. 공식적인 유통경로를 거치지 않은 상품의 경우 소비자는 그 상품이 모조품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따라서 병행수입업자는 상품을 판매할 때 소비자에게 상품이 공식 수입품과 같다는 인식을 주거나 공식 대리점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병행수입업체가 사실과 다르게 ‘공식 대리점’ ‘정품 인증’과 같은 문구를 사용하거나 제조업체, 공식 대리점의 허락 없이 이들이 제작한 광고 이미지를 사용하는 사례가 있다. 전자의 경우 사실과 다르게 공식 대리점이라고 표시함으로써 영업 주체를 혼동시킨 행위이므로 부정경쟁방지법에 위반되고, 후자의 경우 제조업체 등이 제작한 광고 이미지를 무단 사용한 것이므로 저작권 침해가 성립한다. 따라서 제조업체 등은 병행수입업체가 광고 이미지 사용 시 저작권 침해를 문제 삼아 형사고소, 민사소송 등을 제기하는 식으로 유통채널을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판례에 따르면 사진의 경우 저작물성을 다소 엄격한 기준으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즉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재현한 사진, 누가 촬영하더라도 똑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진의 경우 과연 저작물의 요건인 창작성을 인정할 수 있을지 쟁점이 되는데, 판례는 이 경우 저작물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를 판시한 대법원 98다43366 판결(햄 제품 광고 사건)은 사진이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요건과 그에 따른 사진별 저작물성 여부를 아래와 같이 판시했다.
①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문학·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이어야 한다.
② 사진의 경우 피사체의 선정, 구도의 설정, 빛의 방향과 양의 조절, 카메라 각도의 설정, 셔터의 속도, 셔터 찬스의 포착, 기타 촬영 방법, 현상 및 인화 등의 과정에서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있으면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
③ 햄 제품 사진은 그 피사체인 햄 제품 자체만을 충실하게 표현해 광고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서 촬영자의 창작 노력이나 개성이 반영된 사진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
④ 다만 햄 제품을 다른 장식물이나 과일, 술병 등과 조화롭게 배치해 촬영함으로써 제품의 이미지를 부각해 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진은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다.
비슷한 취지로 대법원 2005도3130 판결(찜질방 광고 사건)은 일식점 내부 공간 사진은 저작물로 볼 수 없으나, 찜질방 내부 전경 사진은 저작물로 보호된다고 판시했다.
① 광고사진 중 일식점의 내부 공간을 촬영한 사진은 단순히 깨끗하게 정리된 음식점의 내부만을 충실히 촬영한 것으로서 누가 찍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진이므로, 그 사진에는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있는 사진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② 그러나 광고사진 중 업소 내부 전경 사진은 목욕을 즐기면서 해운대의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업소의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 피해자의 촬영담당자가 유리창을 통해 저녁 해와 바다가 동시에 보이는 시간대와 각도를 선택해 촬영하고 그 옆에 편한 자세로 찜질방에 눕거나 앉아 있는 손님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배치함으로써 해운대 바닷가를 조망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창출시키기 위한 촬영자의 창작적 고려가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판례를 종합하면, 저작물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창작적 노력이나 개성을 주장할 수 있도록 피사체의 종류, 수, 배치, 구도, 각도 등 여러 요소를 고민해 광고 이미지를 제작해야 한다.
그런데 사진의 성격상 어쩔 수 없이 누가 촬영하더라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과학 실험을 촬영한 사진, 객관적인 현상을 기록한 사진 등이 그러하다. 이 경우 사진 촬영이나 제작에 적지 않은 비용을 들였다면 사진을 무단 사용한 자를 상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 2007가합16095 판결은 모발이식 전후 환자 사진의 경우 모발치료의 효과를 나타내고자 하는 실용적 목적으로 촬영된 것으로서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사진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경쟁 관계에 있는 자가 사진을 무단 사용함으로써 수년간의 연구 성과와 임상경험에 편승해 부정하게 이익을 꾀하는 것은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고 판시했다.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정리하면 사진은 처음부터 촬영자의 노력이나 개성을 강조해 저작물로 인정받는 것이 권리를 보호받는 가장 쉬운 길이다. 불법행위 법리를 통해 보호받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으나 법원은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책임을 협소하게 인정하며, 손해배상 청구권은 본질적으로 채권에 불과해 돈으로만 배상받을 뿐 저작권처럼 사용 배제를 청구할 수도 없다. 그러니 제조업체나 공식 수입업체는 비용을 아끼지 않고 광고 이미지를 제대로 제작하는 것이 장래 사업에 유리할 것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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