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23일 6세대(6G) 이동통신 서비스 산업 지원을 위한 민당정 간담회를 마친 뒤 관련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예타 제도는 대규모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 기획재정부가 사업의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인데, 6G 사업의 시급함을 들어 예타 면제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예타가 사실상 유명무실화되면서 재정낭비가 심해졌다며 윤석열 정부가 예타 면제 요건 강화를 공언했던 것과 반대되는 방향이다.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예타 요건 강화 분위기에 구멍이 생길 경우 재정 악화를 막을 길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네트워크 기술패권 경쟁 선도를 위한 민당정 간담회’ 후 브리핑에서 6G 통신 기술과 관련해 “긴급하게 돌아가는 기술시장에서 경쟁력을 고려해 예타를 면제했으면 좋겠다는 (민간의) 요청이 있었다”며 “예타 면제를 상임위에서 논의하고, 야당과 협의의 장을 만들어서 시장 상황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협조를 구하겠다”고 설명했다.
예타는 대형 신규사업의 무분별한 착수에 따른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신규사업은 예타 대상 사업(제38조 1항)이 된다. 다만 공공청사 신·증축, 문화재 복원사업, 국가안보 관련 사업, 남북교류·국가 간 협약 사업, 재난 복구 사업, 지역균형발전 사업 등 국가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은 예태에서 면제(제38조 1항)된다.
문제는 면제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하게 되어 있다 보니 재정 낭비를 막는다는 정책 목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는 아동수당지급, 코로나19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 남부내륙철도 등 복지 사업과 지역 사업에 대해 예타 면제를 집중적으로 했다. 이 때문에 매년 20%대 수준이던 예타 면제 사업 비중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50%를 넘어섰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던 2017년 예타 대상 사업 56건 중에 면제가 된 사업은 12건(21.4%)이었으나 2018년에는 59건 중 30건(50.8%)이 면제 대상이 됐다. 2019년에는 80건 중 47건(58.8%), 2020년에는 55건 중 31건(56.4%), 2021년에는 59건 중 31건(52.5%)이 예타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렇다 보니 예타 면제 사업비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2015년 1조 4003억 원, 2016년 2조 8060억 원이었던 예타 면제 사업비는 2017년에 17조 6421억 원으로 급증하더니 2019년에는 35조 9750억 원까지 뛰었다. 2020년에도 30조 215억 원으로 30조 원을 넘어섰다. 2017년부터 2021년 5년간 예타 면제가 된 사업에 들어간 재정만 무려 107조 204억 원이나 된다.
예타 면제를 받은 사업 중 규모가 큰 것은 아동수당지급(13조 3611억 원), 코로나19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9조 6630억 원), 남부내륙철도 사업(4조 6562억 원), 고교무상교육(4조 4411억 원) 등이다. 모호한 법 규정을 사용해 선거를 고려한 퍼주기 사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예타 면제를 줬다는 의구심을 살만한 대목이다.
이처럼 예타 면제가 일상화되면서 2016년 626.9조 원이었던 국가채무는 2019년 723.2조 원, 2020년 846.6조 원, 2021년 965.3조 원으로 매년 100조 이상 불어나더니 2022년에는 1064.4조 원까지 급증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9월 △재원조달·정책 효과 구체적 제시 △대규모 복지사업의 경우 시범사업 우선실시 △예타 면제 사업 사후 적정성 재검토 의무화 등이 담긴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 개편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예타 제도는 정치인의 지역구 챙기기 등 선거 겨냥 사업을 막기 위한 제도”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유명무실해졌던 예타 제도를 강화하기로 해놓고 이를 확정짓기도 전에 여당이 6G 사업을 비롯해 여러 사업에서 예타 면제를 들고나오는 건 재정건전성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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