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너 일가와 사모펀드 운용사의 주식양도 소송이 이어지고 있는 남양유업에 행동주의 운용사의 주주환원 공세가 시작됐다.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국내 자본시장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이 커진 상황이지만, ‘불통’ 경영을 고수해온 남양유업이 주주제안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지분 3%를 가진 이들이 지분 절반 이상을 소유한 지배 주주와 맞서야 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앤컴퍼니와의 법정다툼에 몰두한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수세에 몰린 만큼, 소송전의 최종 향방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원식 회장 일가 “김앤장이 쌍방대리, 다시 따져보자” 대법원 상고
홍 회장 일가는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와의 주식 양도 항소심에서 패소한 것에 불복해 3월 2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홍 회장 측은 입장자료를 통해 “상급심을 통해 쌍방대리 등에 대한 명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구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항소심 재판에 대한 억울함도 함께 호소하고자 대법원에 상고하게 됐다”고 밝혔다.
홍 회장 측은 항소심 재판에서 ‘법률대리인 쌍방대리’ 쟁점과 관련해 입증 기회 없이 빠르게 심리가 종결돼 법리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지난 2월 9일 서울고법 민사16부는 한앤코가 홍 회장 일가를 대상으로 제기한 주식매매계약(SPA) 이행 관련 소송 2심 선고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쌍방대리 주장과 매각합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홍 회장 측의 주장은 1심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홍 회장 측은 회사 매각 과정에서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남양유업과 한앤코 양측을 모두 대리한 것이 문제라며 해당 주식매매계약이 무효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홍 회장 측은 변론 종결 이후에도 변론 재개를 요청하는 자료를 제출하는 등 사력을 다했지만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변론을 재개할 사유가 없다”며 “피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앞서 홍 회장은 코로나19 사태 속 과대광고 논란을 낳은 이른바 ‘불가리스 사태’에 책임을 지고 한앤코에 지분 53.08%를 3107억 원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AP)을 체결했다. 하지만 약 3개월 후 홍 회장은 ‘부당한 경영 간섭’과 ‘비밀유지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한앤코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여기에 “사전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은 한앤코에 계약해지의 실질적인 책임”이 있다며 위약벌 소송까지 제기한 바 있다.
#사모펀드 인수 전망 속 ‘위기 대응’ 견제 나선 행동주의 펀드
업계 안팎에서는 이제 남양유업의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막바지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9월 1심 패소 이후 약 4개월 만에 결론 난 2심마저도 홍 회장 일가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 상고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는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이 같은 정세를 파고들었다. 장기간의 경영권 분쟁 속에서 피해를 입은 소액주주들의 권리 회복에 앞장서겠다며 남양유업을 상대로 주주제안에 나선 것.
제안 내용은 남양유업이 공개매수 방식으로 주당 82만 원에 일반주주 지분의 50%를 매입할 것과 독립적인 법률전문가 감사 후보를 선임할 것 등 네 가지다. 2021년 한앤코가 홍 회장 측 지분 53%를 주당 82만 원씩 총 3107억 원에 인수할 당시 남양유업의 주가는 한때 81만 원을 웃돌았지만 현재 60만 원선에 머물고 있다.
남양유업 감사의 경우 이사회에서 추천한 인물이 9년간 맡아왔는데, 이사회는 오너 일가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외이사진을 살펴보면 양동훈 건국대학교 경영대학 석좌교수와 이상우 씨가 이름을 올렸다. 두 인물은 남양유업의 거래처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양 교수는 현재 남양유업에 설비 등을 납품하는 유니온비엔씨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고, 이 씨는 남양유업과 거래하는 부국유통 출신이다.
차파트너스는 감사 선임 후 주주가치를 훼손한 경영진에 대한 법적 대응을 통해 주주가치를 회복하는 것에서 나아가, “변경 지배주주가 주주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한앤코로 경영권이 넘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사모펀드가 남양유업을 인수한 이후에도 견제력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차파트너스 측은 “대주주와 경영진은 현재 남양유업의 기업가치와 일반주주가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주주제안의 목표는 남양유업의 기업가치 정상화와 전체 주주가치의 제고”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남양유업 관계자는 “주주 제안한 내용과 관련해서는 절차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오너리스크가 반복되는 남양유업의 실적은 최근 몇 년간 하향 곡선을 그렸다. 2018년 1조 797억 원에 달했던 매출은 2020년 9489억 원으로 1조 원 아래로 떨어졌다. 2022년 매출액은 9646억 원을 기록, 순손실은 781억 원으로 적자가 지속됐다.
#감사 선임·배당금 지급, ‘불통’ 남양에 주주제안 통할까
3월 말로 예정된 정기 주총은 일단 지분 52.08%를 보유한 홍 회장과 특수관계인에게 주도권이 있다. 이 때문에 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도 곧 ‘변경 지배주주’ 자리를 꿰찰 것으로 보이는 한앤코가 아닌 홍 회장 일가 쪽에 집중됐다.
차파트너스의 요구사항이 모두 수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2013년 물량 밀어내기 갑질 논란부터 2021년 불가리스 사태, 최근 불거진 창업주 3세 마약스캔들까지 남양유업은 오너리스크의 정점에 있는 기업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경영인이나 임원들이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홍 회장의 불통경영은 계속됐다.
남양유업이 그동안 주주친화적 요구안을 받아들인 적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파트너스의 제안 역시 이번 주총에서 받아들여질지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3%룰’을 활용한다면 감사위원 추천 후보 선임을 노려볼 만하다. 차파트너스는 현재 남양유업 지분 3%(2만 447주)를 보유하고 있다.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을 기용할 때는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최대 3%로 제한되는 ‘3%룰’을 적용하기 때문에, 일반주주들로부터 약 5만 9000주를 추가로 모으면 감사 선임이 가능하다.
소송의 최종 향방이 홍 회장 일가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이미 1·2심에서 모두 패소해 최종적으로는 지배주주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오히려 홍 회장이 배당 요구를 수용하게끔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패소해 한앤코에게 주식을 매각하는 ‘최악의 결말’을 앞두고 그 전에 주주권리 중 하나인 배당액을 넉넉하게 챙기는 방법도 존재한다. 홍 회장의 경우 소송전이 끝나면 각종 청구서가 날아들 예정이다. 대유홀딩스와 맺은 조건부 주식매매계약금 320억 원을 돌려줘야 하는 데다, 500억 원대 손해배상을 통해 매각 지연 사태에 따른 책임을 물을 것으로 보이는 한앤코를 상대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보유 주식과 경영권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면 배당을 통해 주주 권리를 확보하는 방안도 충분히 가능한 전개”라며 “다만 자기주식 매입이나 액면분할 등 다른 주주환원 제안은 무시하고 이익을 가져올 배당 정책만 수용한다면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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