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주 52시간제’ 근로 시간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주 단위의 연장근로 단위를 노사 합의를 거쳐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도 운영할 수 있게 해, 한 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된다. 그 밖에 근로자들이 원하는 주 4일제나 주 4.5일제가 확산할 수 있도록 선택 근로제도 강화한다.
고용부에서 발표한 이 개정안은 오는 6~7월 국회에 제출된다. 여론은 극명하게 갈린다. 좀 더 유연한 노동환경을 만들 수 있다며 환영하는 쪽도 있지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체제를 강화하는 개악이라는 비판도 많다.
한국과는 정반대로 유럽에서는 주 4일제가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워라밸이 좋다는 유럽에서도 스타트업은 일반 기업에 비해 업무 강도가 높다. 그런데 최근 주 4일 근무가 팀의 생산성을 높이고, 직원들에게 좀 더 존중받으며 일하고 있다는 느낌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결과가 나와 스타트업계에서도 주 4일 근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영국, 주 4일제 시범 운영 61곳 참여 후 56곳 유지
2022년 영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주 4일 근무제 시범 운영을 실시했다. 이 실험에는 61개 기업이 6개월간 참여했다. 실험이 끝난 이후 56개 기업이 주 4일제를 유지하기로 했고, 18개 기업은 영구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현재 유럽은 주 40시간, 주 5일 근무가 기본이다. 이를 주 4일, 일주일에 32시간 근무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직원은 더 많은 휴식시간을 확보하고, 근무의 유연성을 높이며,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것이 도입 이유다. 노동 시간은 줄어도 급여와 복리후생은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된다.
이 연구를 실시한 케임브리지대학은 결과 보고서에서 주 4일 근무제는 직원의 스트레스와 질병을 크게 줄이고, 직원의 이탈을 막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주 4일 근무제 도입 후 병가 일수는 65% 감소했고, 71%의 직원이 번아웃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영국의 실험 이후 유럽의 많은 기업과 정부에서 주 4일제를 시도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경영진도 변화하는 일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 중이다. 1분 1초를 아껴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 스타트업에도 주 4일제가 좋은 선택일까? 스타트업으로선 생산성과 성과의 측면에서 뛰어난지,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전략인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럽 스타트업 전문 매체 EU스타트업스(EU-Startups)은 팀 리더, 관리자, 최고 경영진을 대상으로 주 4일제를 도입할 의향이 있는지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75%가 고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2019년부터 주 4일제 도입한 프랑스 스타트업
파리에 있는 HR테크 스타트업 웰컴투더정글(Welcome to the jungle)은 유럽에서 꽤 빠르게 주 4일제를 도입한 회사 중 하나다. 일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하는 장소뿐만 아니라 노동 시간, 회사와의 관계 등 점점 더 유연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웰컴투더정글은 채용 전문 플랫폼으로 회사들이 고용주로서 더 낫게 브랜딩 할 수 있도록 돕고, 회사에 잘 맞는 직원을 연결하고 채용하도록 도와준다.
2015년 파리에서 설립해 2018년 체코의 스타트업 프라우들리(Proudly)를 인수하면서 급격하게 성장했다. 전 세계에 5000개 이상의 기업 고객을 보유하고, 평균 290만 명이 웰컴투더정글 웹사이트를 방문한다.
지난 1월 말에는 5000만 유로(690억 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해 글로벌 확장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특히 미국 시장에 맞게 솔루션을 현지화하고, 더 많은 팀원을 채용할 예정이다.
웰컴투더정글은 HR테크 회사답게 스스로 근무 환경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시도 중이다. 웰컴투더정글은 전체 직원의 27%가 원격근무를 한다. 2019년에 5개월 동안 주 4일 근무제를 실험한 후 4일 근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웰컴투더정글의 주 4일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 아래 운영된다. 먼저 직원들은 수요일과 금요일 중 쉬는 날을 택할 수 있다. 이는 정규직(인턴 포함)과 1개월의 수습 기간이 완료된 사람들에게만 해당한다. 직원들은 쉬는 시간 동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한 주는 다음과 같은 사이클로 흘러간다. 먼저 개발팀에서는 매니저와의 1대1 회의는 월요일 또는 화요일에 하는 것으로 정했다. 워크숍 같은 지식 공유 세션은 화요일에 잡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회의 금지의 날로 정해서 쉬는 사람은 쉬고, 일하는 사람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기술, 아이디어 탐색을 위한 팀 회의는 목요일로 잡았다. 팀 행사나 회사 이벤트도 주로 목요일에 잡는다.
근무일이 줄면서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회의에 대해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었다. 수요일과 금요일을 빼고 회의를 잡게 되면서 전체 회의 수를 40%가량 줄여야 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했다. △회의 주최자는 회의에 꼭 필요한 관련자만 초대해야 한다. △회의 초대장에는 자세한 의제가 있어야 한다. △회의 기본 시간은 30분으로 설정된다. △지각은 허용되지 않는다. △회의는 논의가 완료되는 즉시 종료된다. 회고에 관한 회의는 2주에 한 번에서 2개월에 한 번으로 그 주기가 길어졌다.
웰컴투더정글의 주 4일제 시도에 관한 내부 반응은 어땠을까. 직원들은 피로도가 낮아졌고, 4일로 한 주의 단위가 짧아지자 업무를 미루는 일이 줄었다고 답했다. 또 다가올 새로운 업무에 대한 기대가 생겼고, 근무 시간에 개인적인 일을 하는 시간이 줄었고, 창의성이 향상되었다고 답했다.
#2주간 9일 근무 실시하는 런던 스타트업
런던의 HR테크 스타트업 찰리HR(CharlieHR)은 주 4일제 실험 기간을 거쳐, 최종적으로 2주에 9일을 일하는 제도로 정착했다. 찰리HR는 팀이 일주일에 5일은 고객 지원과 기술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격주로 4일을 근무하는 것이 팀에 가장 맞는 방식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찰리HR의 최고 운영 책임자(Chief of Staff) 에이미 카우페(Amy Cowpe)는 회사 전체 인원이 50명인 상태에서 주 4일제 근무를 하는 것은 운영상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신 격주로 금요일을 쉬게 되면 직원들이 그날을 특별한 휴가처럼 느껴 스트레스 감소, 생산성 향상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실제로 찰리HR 직원들은 2주에 9일제를 실시함으로써 업무 관련 스트레스가 24% 감소했고, 팀원들의 업무 몰입도가 14%, 생산성이 11% 증가했다고 답했다. 찰리HR에 지원한 채용 예정자들도 입사하고 싶은 3가지 이유 중 하나로 9일 근무제를 꼽았을 만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확인했다.
찰리HR의 공동 창업자 벤 케이틀리(Ben Gateley)는 “회사마다 운영 구조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주4일 근무제가 어떤 회사에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객 대면 업무가 필요한데 주 4일 근무로 인해 업무가 지연될 경우 근무 일수는 줄지만 업무 강도가 훨씬 높아져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족한 업무를 메꾸기 위해 더 일하게 되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케이틀리는 “회사와 업무의 특성에 따라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의 영역에 많은 변화가 있음은 확실하다.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고민의 본질은 같다. 고용주로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팀을 이끌어갈 것인가. 주 4일 근무제가 결국은 회사와 개인 모두의 ‘지속 가능’을 목표로 한다면, 가장 먼저 유연해져야 하는 것은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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