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나선 정부가 월례비 수수에 대해 면허 정지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간 정부는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시공사로부터 받아온 월례비를 강요에 의한 ‘부정 금품’으로 규정하고 처벌 방법을 강구해왔다. 하지만 최근 사법부와 노동계에서는 월례비를 타워크레인 노동자의 근로 대가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 나온다.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의 중심에 선 월례비는 정말 부정한 금품일까.
국토교통부는 타워크레인 등 건설기계 조종사의 불법·부당 행위에 대해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겠다고 2일 밝혔다. 면허 정지 대상으로 꼽힌 불법·부당 행위는 △월례비 등 부당한 금품수수 △건설기계를 사용한 현장 점거 등 공사방해 △부당한 태업 등 성실의무 위반 등 3개 유형이다.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라 건설기계 운전 자격 취득자가 업무를 성실히 하지 않거나 품위를 손상해 공익을 해치거나 타인에 손해를 입히면 국토부는 자격(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하는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부당행위는 건설업체 비용을 증가시키고 공기를 연장시키는 한편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국민들에게 피해가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번 가이드라인 마련을 계기로 타워크레인 등 건설기계를 활용한 뿌리 깊은 불법행위와 악성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월례비는 건설사가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급여 외에 별도로 지급하는 돈이다. 통상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건설현장에 타워크레인을 빌려주는 임대업체에 소속돼 월급을 받는데, 공사 일정을 맞추려는 공사 현장의 시공사나 하도급업체들은 타워크레인 업무 강도를 높이는 대가로 월급 외에 웃돈을 지급해왔다.
정부는 건설현장의 월례비를 강요에 따른 ‘부정 금품’으로 규정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임대사와 고용계약을 맺고 월급을 받는데도 건설현장의 시공사나 각 하도급사에 별도 월례비를 부당하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토부가 2022년 12월 말부터 보름간 실시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실태조사에서는 전국 1494개 건설현장에서 피해사례 2070건이 접수됐는데, 이 중 1215건(59%)이 ‘월례비 요구’로 나타났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통상 원청에서 하도급을 받은 철근콘크리트 업체가 타워크레인 업체에 월례비를 지급하는데, 월례비를 지급하지 않아 자재 운반이 거부되는 사례가 종종 하청업체로부터 보고된다. 철근 작업자건 목수건 일당 20만 원이 넘는 인부 10여 명이 아파트 꼭대기에서 놀게 되는 상황을 막으려면 현장 인부 한 명을 줄여서라도 타워크레인 조종사 월례비는 챙긴다”고 털어놨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과 관계자는 “현재 월례비 수취행위가 대부분 강요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강요를 하지 않더라도 (월례비 지급 문화가) 아예 정착돼 당연히 주는 것처럼 인식이 되고 있는데 사실 문제의식 없이 주는 것 자체도 초반에 월례비가 일련의 과정이 생략된 채로 정착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월례비가 일방적인 강요로 지급된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건설현장 시공사가 공사를 빨리 끝내기 위해 연장 근무나 위험 근무를 요구하며 지불한 대가라는 것. 현재 일부 현장에서는 월례비를 받은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서면 합의 없이 한 주에 52시간 넘게 근무하거나 과적 운반, 심지어는 거푸집 결합 등 비운반 업무까지 요구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10년 넘게 타워크레인 업무를 하면서 시공사에 월례비를 강요한 적은 없다. 처음 건설현장에 배치되면 ‘공사 기한이 빠듯하니 업무를 잘 부탁한다’는 식으로 월례비 얘기가 나온다. 이후부터는 건자재를 들어올리는 일은 물론 호퍼(투입기)를 연결해 상층부에 래미콘을 공급하는 펌프카 조종사 업무, 미리 짜놓은 거푸집을 공중에서 내리 꽂는 식의 상층부 인부 공정까지 수행한다. 건자재를 들었다 놓는 작업보다 하중 변화가 심한 위험 작업이지만 공사 기간 단축과 원가절감을 노리는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른 타워크레인 조종사도 “일선 건설 현장의 시공사 대부분이 최저입찰로 공사를 따내기 때문에 공기를 단축할수록 수익이 남는 구조다.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현장 안전을 지키고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근로 시간을 지킨다고 하면 공기를 맞추지 못하니 성과금 식으로 지급하던 게 지금의 월례비다. 공사 순서를 무시하고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돈을 줘가며 공기를 당기려는 원청이나 철근콘크리트 업체는 왜 지적하지 않는 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2월 성명을 내 “건설노조는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옹호한 적이 없으며 건설협회 등 건설 사업자단체에게 월례비 근절을 촉구하는 입장의 공문도 발송했다.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노동자의 일방적인 강요로 지급받는 것이 아니며, 건설회사가 안전하지 않고 무리한 작업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정부는 월례비 발생과 관련해 건설사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는다. 또 월례비를 주지 않고 각종 규정을 준수해 작업하며 작업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태업’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판단과 달리, 사법부는 최근 월례비를 임금 성격으로 판결했다. 광주고등법원은 지난 2월 16일 전남 담양에 있는 한 건설사가 타워크레인 조종사 16명에게 지급한 월례비를 돌려달라며 조종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건설사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에 대한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한 관행으로,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에게 월례비는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을 가지게 됐다”고 판시했다.
월례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형적인 고용구조를 먼저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월례비가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고용하는 업체와 실제 업무지시를 내리는 업체가 일치하지 않는 데서 생겼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정민호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 타워크레인분과 위원장은 “타워크레인 임대 계약은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와 시공 원청이 하지만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임대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문제는 작업지시가 실질적으로 현장 원청이나 하도급업체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사실상 불법 파견 근로와 같은 기형적인 고용 형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고 말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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