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종영을 앞둔 ‘일타 스캔들’의 장르는 ‘로코’, 로맨틱 코미디다. ‘사교육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국가대표 반찬가게 열혈 사장과 대한민국 수학 일타 강사의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라는 홍보 문구를 봐도 그렇다. 조카를 딸처럼 키우는 전직 핸드볼 선수이자 현직 반찬가게 사장인 억척 발랄한 남행선(전도연)과 ‘1조 원의 사나이’라 불리며 사교육계를 쥐락펴락 하는 수학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이 서로 얽히면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우리는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봐 왔다.
문제는 이들의 로맨스가 벌어지는 곳이 사교육 전쟁터로 불리는 녹은로 학원가(현실의 강남 대치동)라는 데 있다.
남행선이 대외적으로 조카 남해이(노윤서)의 엄마인 까닭에, 남행선과 최치열이 서로에게 설레는 과정은 험난한 고개가 많았다. 처음엔 최치열이 소속돼 있는 ‘더 프라이드’ 학원에서 소수정예로 운영하는 ‘의대 올케어반’이 문제였다. 남해이는 정당하게 올케어반의 레벨 테스트를 통과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남해이가 올케어반에 들어오는 걸 꺼려 했던 다른 멤버 엄마들의 담합으로 올케어반은 물론 학원에도 발을 못 붙이게 됐다.
최치열은 이런 사정에 강사로서 책임감을 느낀 데다,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그가 남행선의 음식만 소화할 수 있었기에 계약을 맺고 비밀리에 해이의 과외를 해주게 된다. 이 과정이 다른 엄마들에게 발각됐을 때, 엄마들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한다. 엄마들 무리의 리더 격인 방수아(강나언)의 엄마 조수희(김선영)는 남행선을 ‘자식을 위해 몸까지 던지며 베갯머리 송사를 한 엄마’로 매도하는 글을 온라인 게시판에 써서 세상의 비난을 두 사람에게 향하게 만들었을 정도다.
이 과정을 흔한 로맨틱 코미디에서 볼 수 있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수희를 위시로 한 엄마들과 세상의 비난이 쏟아짐에도 지워버리기 힘든 두 사람의 감정을 충분히 묘사했기에 시청자들의 감정도 두 사람에 이입하며 공감을 자아냈으니까. 그랬기에 10화에서 남해이가 세상을 향해 외친 커밍아웃이 극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스캔들 아니에요. 왜냐하면 저희 엄마는 실은 엄마가 아니라 이모예요. 미혼이고요. 그러니까 이건 스캔들이 아니라 로맨스예요.” 그리하여 스캔들은 로맨스가 되었다. 아마 보통 로코라면 이후 적당히 두 사람의 ‘꽁냥꽁냥’을 보여준 뒤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타 스캔들’은 초반부터 쇠구슬을 쏴 대는 의문의 연쇄살인범의 존재를 보여주며 범죄 스릴러의 기운을 한 축으로 삼았다. 길고양이들을 향하던 쇠구슬은 최치열과 충돌했던 올케어반 학생, 수년간 최치열에게 악플을 남기고 스캔들을 조장하던 ‘최치열나짱나’인 더 프라이드 수학강사 진이상(지일주)을 겨누었고, 최치열을 변화시킨 남행선에게로 향한다. 애초에 쇠구슬 연쇄살인범은 남해이의 단짝 이선재(이채민)의 형 이희재(김태정)인 것처럼 보였으나, 드라마 후반부에 최치열을 몇 년간이나 보필해온 충직한 실장 지동희(신재하)임이 밝혀졌다.
지동희는 사실 과거 최치열과 가까웠던 고등학생 정수현의 동생 정성현으로, 성적에 집착하던 엄마로 인해 누나를 떠나보내고 자신 또한 성적 압박으로 학대를 받다 존속살인을 저지르며 괴물이 된 인물이다. 드라마 속 이야기라고? 아들의 성적에 집착해 잠을 재우지 않고 심각한 폭행을 일삼던 어머니가 아들에게 살해당했던 2011년의 ‘구의동 고3 존속살인 사건’을 떠올려 보면, 드라마 속 이야기라고 치부하기 힘들다. 자식의 성적을 위해 시험지를 유출하고, 딸의 장례식에서도 시험을 앞둔 아들에게 공부하라 닥달하는 비정상적인 모정을 지닌 엄마 밑에서 자란 지동희가 누나가 유일하게 믿던 어른인 최치열에게 집착하게 되는 건 현실에서 있을 법하여 두려움을 안긴다.
괴물로 상정된 지동희도 지동희지만, 그보다 더 현실적인 두려움이 느껴지는 이들은 녹은로 학원가를 지탱하고 있는 학부모들이다. 자식의 성적을 위해서라면 남의 정당한 권리를 끌어 내리는 데 서슴지 않고, 내 자식이 얻지 못하는 특혜를 남이 얻는 것에 쌍심지를 켜고 훼방을 놓는 부모들. 남행선과 최치열을 불륜으로 몰아가며 명백한 명예훼손죄를 저질렀던 수아엄마나, 아들의 성적에 집착해 시험지를 유출하는 대형사고를 벌이고도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라며 아들을 협박하는 선재엄마 장서진(장영남)의 모습은 얼마나 섬뜩한가.
성적 압박으로 환각과 망상증세까지 보이는 딸의 위험을 감지 못하고 남의 자식(남해이)의 멘탈이 약하니 어쩌니 하며 뒷담화를 하는 수아엄마, 자백하자는 선재에게 “넌 잘 몰라. 이 사회가 얼마나 노골적이고 원색적이고 직업적 포지션을 중시하는 데인지”라며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는 선재엄마가 쇠구슬 쏘는 연쇄살인범 못지않게 무섭게 느껴지는 내가 이상한 걸까?
어쩌면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 내 지인들이 어느 순간 수아엄마나 선재엄마에 빙의되어 같은 뉘앙스의 말과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몰라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이 학폭을 저질러도 명문대 입학에 필요한 깨끗한 생활기록부를 위해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가는 학부모가 거들먹거리는 게 이 사회 아니던가. 자식의 성공을 위해 많은 것을 용납하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비정상적인 학부모가 끊임없이 양산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타 스캔들’은 3월 5일에 최종회가 방영된다. 주인공인 남행선과 최치열의 결말은 크게 궁금하지 않다. 선재엄마, 수아엄마, 정수현과 지동희의 엄마 등 자식의 성적에 전전긍긍하며 모든 것을 내던지는 수많은 녹은로의 학부모들이 어떻게 깨어지고 부서질지, 그리하여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반칙으로 얻은 시험지에 백지를 내는 남해이처럼 올곧은 자신의 잣대로 세상에 저항할 수 있을지가 궁금할 뿐이다. 수준 이하의 권선징악과 개과천선으로 얼버무린 ‘SKY 캐슬’ 같은 결말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에 살고 싶다는 희망은 있었으면 하거든.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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