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들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앞서 근무 시간에 대한 두 편의 글을 통해 칼같이 정시 출퇴근하는 이와 유연근무제를 사용하며 꼼수를 부리다가 징계를 먹은 이에 대한 사례를 다루었다. 누가 잘했고 못 했고, 하면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그들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누리고 활용하고자 했던 노동자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자기가 직접 회사를 차리고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지 않는 이상 일을 해서 돈을 벌려면 근로계약서 작성부터 해야 한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첫째는 3월 새 학기부터 집안 내외에서 손이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용돈을 벌기로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용돈지급 개시일과 용돈을 벌 수 있는 행위들, 그리고 각 행위별로 사전에 협의한 금액과 적용 기간, 용돈 지급일과 지급방법 등을 적은 용돈벌이 계약서를 작성해 서명하고 서로 나눠 가졌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회사에서 주로 사용하는 근로계약서 양식을 활용해서 사회경험 미리 시키는 셈 치고 시작했는데 계약에 임하는 아이의 자세가 무척 진지해서 근로 시간에 대한 토론까지 진행했다. 노동자가 된 아이는 자신이 책을 읽거나 놀고 있을 때는 일을 시키지 말아 달라며 휴식시간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고, 주어진 시간 동안 용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할지 아니면 놀 것인지는 본인이 스스로 선택할 일이고 일한 만큼 돈을 벌면 된다며 사용자가 된 입장에서 뼛속까지 자본주의 사상가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물론 용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면서 일하거나, (부모 된 도리로서 당연히 시키지는 않겠지만) 위험하거나 부당한 일을 해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물론 현실의 근로계약서에는 이런 내용들이 근로 시간, 휴게시간, 휴무(주휴일, 무급휴일), 휴가 등으로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사업장 특성상 근무표에 따른 교대근무가 불가피하거나 근로 시간 및 휴게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특례업종이라면 근로일 사이에 최소한 연속 1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이 보장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어찌 되었든 8살 아이도 노동을 해서 돈을 벌려면 그만큼 내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또한 자신의 시간을 팔고 대가로 돈을 받는 계약을 하고 나니 행여 그 시간에 대한 자기의 권리까지 빼앗기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도 자연히 드는 모양이다. 일한 만큼 돈을 벌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주 52시간으로 연장근로시간이 제한되자 야간이나 휴일에 잔업 특근수당을 받아야만 생계유지가 가능하던 노동자들은 퇴근 후 배달 아르바이트를 뛰며 투잡을 불사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의 최저시급은 9620원. 월급으로 환산할 경우 주 40시간 근무 기준 200만 원을 겨우 넘겼다.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은 207만 원. 나 혼자 먹고 자고 숨만 쉬는데 번 돈을 모두 소진하는 셈이다. 자신의 1시간 가치를 워렌 버핏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기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알다시피, 워렌 버핏과의 3시간 남짓 점심시간은 지난해 말 250여억 원에 경매 낙찰되었다)
영화 ‘인 타임’은 시간이 곧 돈이고 삶 그 자체(실제 자신이 보유한 시간을 팔아먹을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데, 보유한 시간이 0이 되면 사망한다)인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하루 먹고 살 만큼의 시간을 겨우 벌어 삶을 유지해가는 일용직 노동자다. 그와 같이 가난한 노동자들은 늘 숨이 턱에 차도록 전력 질주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을 단 1분도 허락받지 못한다.
시간조차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 사회, 시간의 사용 주체가 내가 될 수 없는 사회. 우리의 삶이 그렇게 팍팍하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연장 근로시간의 허용범위나 관리 단위, 최저시급을 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근로계약서에서 약속한 대로 자기 스스로가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 주체가 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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