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직장 내 여성차별을 평가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10년 연속 꼴찌를 하며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라는 불명예를 달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수가 처음으로 400명을 넘어섰고, 주요 대기업의 연말 인사에서도 여성 CEO 발탁이 눈에 띄게 늘었다. 견고했던 유리천장에 금이 가고 있다는 희망적 목소리도 들려온다. 비즈한국은 각 분야에서 활약 중인 여성 리더를 만나 유리천장을 깰 수 있던 비결을 물었다.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용기를 내려는 많은 여성에게 이들의 이야기가 좋은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는 게 바로 ‘중고거래’다. 먼지 쌓인 쓸모없던 물건이 새 주인을 찾고,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저렴하게 ‘득템’ 하는 중고거래의 재미는 한 번 맛보면 끊기 어렵다. 중고거래 시장은 매년 커지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25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번개장터, 당근마켓, 중고나라 등 국내 3대 중고거래 플랫폼도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이 가운데 번개장터는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인다. ‘국내 대표 패션 중고 플랫폼’이라는 차별화 전략을 세웠고, 물류·검수 등에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취임해 번개장터를 이끌고 있는 최재화 대표(37)가 이뤄낸 성과다.
#선택과 집중 “패션 중고 플랫폼으로 인지시킬 것”
최재화 대표는 스타트업 업계가 주목하는 젊은 여성 CEO다. 2020년 번개장터 CMO(최고마케팅책임자)로 합류했고 다음 해 COO(최고운영책임자)로 발탁, 그리고 2022년 6월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는 대표 취임 후 지난 8개월의 성과에 대해 “점수를 준다면 50점 정도”라며 “스스로에게 다소 박한 것이 여성 CEO의 공통점 아닐까”라며 웃었다.
그가 준 ‘50점’에는 아쉬움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많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최 대표는 “지금까지는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구조나 필요조건, 작업 등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이뤄낸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 단계가 마무리되는 것 같고, 성과를 내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취임 후 번개장터가 고객에게 던지는 수많은 메시지를 순위화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중고거래 시장의 다양한 카테고리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추구하는 방향성이 여러 가지라는 점이 번개장터의 한계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패션 카테고리의 성장성에 주목했고, 국내 최대 중고거래 패션 플랫폼이라는 포지셔닝 콘셉트를 정했다.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번개장터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13년이 됐는데, 사용자들이 그동안 가장 많이 성장시켜준 카테고리가 패션이다. 그동안은 이러한 부분을 외부에 드러내고 정체성으로 각인하는 데 미흡했던 것 같다. 올해는 번개장터가 패션 중고거래 영역에서 가장 큰 플랫폼이라는 것을 시장에 명확하게 인지시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자책골’이라던 맥주회사 이직 덕에 구글 입사
최 대표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능력자다. 민사고 출신에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MBA를 이수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에서는 기업 전략을 컨설팅하고, 세계 최대 맥주 회사인 AB인베브에서는 아시아 크래프트 맥주 마케팅을 전개했다. 이후 구글코리아에서 국내 유튜브 사용자 마케팅을 총괄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공부만 해온 엘리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민사고는 논술 경시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으로 입학했다. 학원을 안 다녀 선행학습이 되지 않아 시험을 봤다면 떨어졌을 것이다. 하버드 MBA도 합격하게 될 줄 몰랐다. 당시 하버드에서 요구하는 영어 성적이 있었고, 그 이상의 점수 보유자만 지원하길 권장한다고 돼 있었다. 나는 그 점수가 안 됐는데도 지원해 합격했다. 사실 서류가 통과돼 전산오류인가 생각했을 정도다.”
목표를 정하고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그가 꼽은 성공의 비결이다. 최 대표는 마케팅을 하겠다며 맥주 회사로 이직할 때 주변에서 말렸던 일화를 소개했다. “주류업계는 규제가 큰 만큼 마케팅을 배우기 좋지 않은 환경이다. 많은 사람이 나의 선택을 ‘자책골’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규제 때문에 광고보다 현장 마케팅에 집중하고,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결론적으로 그 경험 덕에 구글코리아에 입사했다. 구글에서는 기술적 지식보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경험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항상 그곳이 종착지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의 선택지가 매력적인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다음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CEO 되니 느껴지는 여성에 대한 편견 “제대로 성과 보여줄 것”
최 대표는 CEO 취임 후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여러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본부의 리더일 때는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한 회사를 이끈다는 책임감이 막중해졌다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유리천장을 느끼게 됐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대표로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내외부적으로 나이가 어린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는다. 내가 여자인 게 ‘특이한 것’이란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마케터로 일할 때는 마케팅 여자 시니어를 종종 만났는데, 이제는 들어가는 미팅에서 유일하게 여자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글로벌 기업과 비교했을 때도 아쉬운 부분은 많다. 그는 “AB인베브는 특히 브라질 사람이 많은 회사다. 남미가 모계 중심 분위기가 있어 브라질은 여성의 인권 수준이 높다. 회사에서 여성 리더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며 “지금은 여성 CEO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 대표의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 젊은 여성 CEO의 대표주자로 제대로 된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그는 “번개장터에 합류할 때만 해도 CEO 취임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대표 역할을 맡게 돼 즐겁고 보람차다. 스트레스 없는 중고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각오”라고 전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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