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이폰에서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스크린 타임’을 열어본다. 이번주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나의 일일 평균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10시간 32분. 그나마 지난주 대비 17% 줄어든 시간이다. 10시간 32분, 하루 24시간 중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스마트폰을 잡고 있다는 거다. 좀 부끄럽지만, 흠, 장담컨대 나만 그런 건 아닐 걸?
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나미(천우희)도 마찬가지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어놓지 않는 나미. 그러다 술에 취해 버스에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분실했다. 다행히 다음날 폰을 주웠다는 이와 통화하고, 비록 실수로 습득자가 스마트폰 액정을 깨뜨리는 우여곡절을 겪긴 하지만 무사히 폰은 나미의 손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 하룻밤 동안의 분실로 나미의 일상은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 자신이 쓰지 않은 카톡, 자신이 쓰지 않은 SNS의 글들로 모든 인간관계가 망가지고 나락으로 떨어진 것. 스마트폰 해킹을 당했다고 항변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내밀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글들이다.
스마트폰 하나 분실했다고 고작 며칠 만에 일상이 붕괴될 수 있느냐고? 집과 직장 정보는 물론이요, SNS 계정과 사진첩에 남겨진 기록들을 통한 취미와 취향 그리고 동선, 각종 금융정보에 담긴 경제력, 메시지와 카톡 등으로 유추할 수 있는 인간관계···. 누군가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때 알아낼 수 있는 정보들이 이토록 많으니 악의를 가지고 개입한다면 충분히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나미의 폰에 스파이웨어 프로그램을 설치한 준영(임시완)이 이런 무수히 많은 정보들과 더불어 실시간으로 나미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며 나미의 삶에 접근하는 모습은 공포와 경악 그 자체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벌어지는 현실 밀착적 공포와는 별개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개연성에는 갸웃하게 된다. ‘첨단 통신 기술 국가인 한국에서 자란 나미가 범인을 너무 순진하게 믿는다’라는 와이어드 이탈리아판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달까.
초반부터 일련의 사건들에 준영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의 뒤를 쫓는 형사 지만(김희원)의 행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7년간 연락 두절 상태인 아들 준영을 쫓는 형사 아버지라는 설정 덕에 추적에 오묘한 감정이 생기며 긴장은 불어넣지만, 그것만으로는 나미를 만난 뒤의 행보를 납득하기 어렵다. 개연성이 떨어지고, 캐릭터 자체가 예상 가능하게 밋밋한 편이라 뒤로 갈수록 극적 긴장감도 떨어지는 편.
아쉬움을 메우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영화 ‘비상선언’으로 짧지만 강렬하게 섬뜩한 사이코패스의 얼굴을 보여준 바 있는 임시완은 또 한 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악인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드라마 ‘미생’, ‘런 온’의 임시완을 생각했다면 잊어라. 당분간 그의 해사한 얼굴을 보며 소름이 돋아날 수 있다. 단 며칠 만에 나락으로 떨어지며 감정의 파고를 보여주는 나미 역의 천우희와 웃음기를 쫙 빼고 묵직한 얼굴로 나선 김희원도 제 몫을 하며 캐릭터 이상을 보여주려 한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스마트폰이 또 하나의 나, 사회적 자아로 자리잡은 이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와 믿음에 대해서도 곱씹어보게 만든다. 과연 내가 나미의 상황이라면, 나와 가깝다 믿었던 사람들이 과연 나의 결백을 믿어줄까 하는 의구심. 핏줄이나 수십 년 알고 지낸 관계가 아니라면, 특히 소셜미디어 등으로 빠르게 친해진 관계는 그만큼이나 ‘손절’도 쉽다. 클릭 몇 번으로 친구 관계와 팔로우를 끊고, 단톡방에서 나가고 차단을 누르면 금세 끝나버리는 관계들.
나미와 오랜 시간 함께한 회사 사장(오현경)이나 항상 편이 되어주는 절친 은주(김예원)도 준영이 습득한 내밀한 정보를 활용하여 상대의 약점이나 치부를 공격하자 맥없이 끊어지는 것을 보라. 영화 후반부, 은주에게 걸려온 메시지로 신뢰와 믿음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긴 하지만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로 쌓아온 관계에 대한 허망함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아무려나 이거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영화를 본 당신은 분명 당신의 스마트폰에 무엇이 깔려 있고, 무엇을 저장하고 있는지 점검하게 된다. 그러면서 당신의 스마트폰이 당신이라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여주는지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20세기의 일기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단순한 패턴이나 비밀번호도 바꿔야겠다는 생각도 절로 든다. 여기에 더해 2월 22일 개봉한 영화 ‘서치 2’까지 본다면 일상을 편리하게 해주는 각종 디지털 기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로 변할 수 있는지 강하게 느끼게 될 것.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니, 영화들 보고 경각심이라도 가져보자고.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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