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서울시가 주택 사업장의 미분양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시민들에게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인데, 업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정보 공개가 미분양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시는 10일 국토교통부와의 주택정책협의회에서 미분양 주택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다. 시민들에게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려면 사업장별 미분양 현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다. 앞서 시는 2022년 12월에도 같은 내용의 법 개정을 국토부에 건의했다. 미분양 주택은 분양 공고상 계약일이 지난 이후에도 계약이 체결되지 않아 선착순으로 공급되는 주택을 말한다.
우리나라 미분양 주택 현황은 매월 공표되고 있다. 국토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취합한 주택 사업장별 분양 결과를 종합해 지역별, 규모별, 부문별(공공 또는 민간) 미분양 주택 통계를 만든다. 주택 공급 정책 기초 자료를 구축하고 시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자 2000년부터 작성이 시작됐다. 일부 지자체는 사업장별 미분양 현황을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다만 주택사업자가 미분양 정보를 신고할 의무는 없다. 주택법에 따라 입주자 모집 계획을 담은 분양 공고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지만, 미분양을 포함한 분양 결과는 법적으로 신고할 의무가 없어 주택 사업자가 미분양 정보 제공을 거절하거나 불확실한 정보를 제공할 여지가 있다.
실제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지자체에 분양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 사업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주택정책지원센터 관계자는 “사업장별 미분양 현황은 자치구에서 확인하는데, 협조가 안 되는 사업장이 발생했다”며 “미분양 신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신고를 안 하면 누락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사업장별 미분양 현황을 공표하고 있는 대구광역시는 주택 사업장 대다수가 비공개를 조건으로 분양 결과를 제공했다. 전체 사업장 63곳 중 미분양 정보 비공개를 요청한 사업장은 49곳에 달한다. 대구광역시 건축주택과 관계자는 “통계 자료를 만들기 위해 사업장별 미분양 물량을 취합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개별 사업장의 미분양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자료를 제공한다. 사업장별 자료를 공개한다면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분양 주택 통계 누락을 바로잡는 방법은 간접적인 수준에 그친다. 국토부는 전국 미분양 자료를 부동산 실거래 자료(RTMS), 주택도시보증공사 분양보증자료 등과 대조해 수치 누락을 검토하고 있다. 초기 청약 경쟁률이 낮은 단지나 신규 미분양 단지, 전월 대비 미분양 물량 차이가 큰 단지 등은 개별 확인을 진행하지만 이마저도 단지의 협조가 필요한 실정이다.
미분양 정보 왜곡은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 입안과 주택 수요자의 의사 결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분양률은 주택 수요자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 분양가 못지않게 중요한 정보다. 미분양은 고분양가와 같은 내외부 요인에서 비롯되는데, 이를 해소하지 않고 개별 소비자에게 정보를 숨기는 방식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정책 입안에서도 미분양 주택은 매우 중요한 지표로 정부가 불확실한 미분양 통계를 공표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분양 정보 공개 의무화를 놓고 주택 건설업계의 반발도 예상된다. 정보 공개가 이른바 ‘낙인 효과’로 미분양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분양률이 90%에 가까운 단지는 열에 아홉이 분양됐다는 정보가 공개됐을 때 나머지가 순식간에 팔리는 효과를 누리겠지만 50%를 밑도는 단지는 절반 이상이 미분양된 단지라는 낙인이 찍혀 더욱 분양이 어려워질 수 있다. 분양 실적이 저조한 사업장에서는 감출 수 있는 약점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미분양 정보가 시민들이 아닌 정부에만 제한적으로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공공기관이 보유하거나 관리하는 정보 가운데 경영이나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법인이나 단체 또는 개인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 사업장 상당수는 미분양 정보를 경영상 비밀이라고 주장한다.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지난주 서울시로부터 미분양 정보 공개 의무화와 관련한 건의를 접수했다. 건설 사업자에게는 규제 도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건의 취지와 더불어 우리 경제와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자체 신고된 미분양 물량을 내부적으로 검증해 과대하거나 과소하게 잡힌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에 대한 재확인을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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