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영화 ‘공조 2 : 인터내셔날’에 보면 급박한 작전상황 중에도 끊임없이 6시에 정시퇴근할 수 있는지를 묻는 젊은 경찰이 등장한다. 드론을 날려서 도난된 마약트럭을 찾는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만약 그가 잠복대기중에 퇴근 시간이라며 집에 돌아갔다면 우리는 현빈과 다니엘 헤니, 그리고 유해진의 활약상을 보지 못했을 터이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영화를 통틀어 가장 현실적인 장면이어서 웃음이 터졌다.
우리팀의 3년 차 대리 A는 언제나 업무 시작 시각인 8시 30분 정각에 사무실에 나타난다.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책상에 앉아 잽싸게 업무를 시작한다. 실수로라도 몇 분 일찍 오는 일이 없다. 퇴근 시간 또한 마찬가지다. 정신없이 전화 받고 회의 다녀오고 일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인데, 큰 이변이 없는 한 5시 30분에 정확히 ‘팀장님,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고 나서는 그녀 덕분에 퇴근 시간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공원을 산책해서, 그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따로 없다.
눈치도 빠르고, 손도 빠르고, 머리도 영민한 A는 기한이 정해진 업무나 자신이 주 책임인 업무에 있어서만큼은 실수가 거의 없다. 모든 업무를 기한 내에, 그것도 ‘고퀄’로 해내는 것은 기본이고, 지나가면서 던진 말 하나 허투루 듣는 법 없이 지적사항이나 수정에 대한 피드백도 완벽하다. 유관 부서에 협조 요청도 잘하고 보고서 작성도 훌륭하다. 규정의 적용이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부당한 부분이 있다고 느끼면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한다. 이 정도면 뭐 직장에서 한 명의 팀원으로서는 거의 ‘사기캐릭터’다. 그러니 팀장으로서 그녀의 칼같은 출퇴근 시간을 가지고 나무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총무인사를 총괄하는 임원이 회사 내에서도 보수적인 성향으로 이름 높은 인물로 바뀌고 한 달 쯤 지나자 예상한 대로 호출이 왔다. 하필이면 퇴근 엘리베이터에서 지난 한 달 간 매일같이 A를 마주친 모양이었다. 본인도 나름 보고 들은 바가 있으니 꼰대 라떼 소리는 듣기 싫어 참고 참다가 “너무 정시출근, 정시퇴근 하는 것 아니냐. 2~30분 일찍 출근해서 업무 준비를 하거나, 남아서 일하는 다른 직원들 업무를 좀 거드는 것이 좋겠다’ 며 한마디 했는데, A가 생글생글 웃으며 “그러면 오버타임인데 시간 외 수당 주실 건가요?” 했다는 것이다.
이후로 한참을 요즘 것들에 대한 한탄, 그로 인한 팀워크의 붕괴, 더 나아가 회사의 위기와 사회구조 전반에 걸친 세대문제를 주제로 한 훈화말씀이 이어졌다. 기계적으로 고개만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일어나면서 “그래도 일 처리 하나는 똑 부러지잖아요. 조금만 지켜봐 주세요.” 라고 한 말씀 올리고 임원실을 나왔다. A가 물론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나이 많은 직장상사에게 쉽게 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이 이야기를 팀장된 도리로서 팀원인 A에게 귀띔해주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스스로 내뱉은 말도 있으니 조금 더 지켜봐 주는 것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동안 누구도 그녀의 정시출퇴근에 말을 얹거나 눈치를 준 적이 없었는데, 임원 한 명의 의견을 전달한다고 해봐야 괜한 잔소리가 될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얼마 후 외부의 갑작스러운 통계자료 요청으로 야근이 불가피한 일이 생겼다. 업무를 여러 명이 나눠서 분담하면 야근 일수는 현저히 줄어들 테지만, 엄밀히 따지면 담당파트만 며칠 죽어라 고생하면 될 일이기도 했다. 임원의 눈에 본인 일만 칼같이 끝내고 정시 출퇴근하는 사회성 없고 개인주의 만땅인 소위 ‘전형적인 Z세대’라던 A대리는 업무를 나눠 가졌을까?
똑똑하고 유능한 직원일수록 이 일을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그 과정에서 본인의 역할분담이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그 노동의 대가는 어떻게 지불될 것인지 등을 충분히 소통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선행되면 엄청난 시너지를 내며 일을 한다. A 대리 뿐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회사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내 회사도 아닌데), 로열티를 갖고 일해라(경력 쌓고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이직할 건데), 지시한 대로, 시키는대로 해라(당신의 지시가 정답도 아닌데)라는 공감되지 않는 화법으로는 자발적인 참여는 커녕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MZ세대니까? 밀레니얼세대라서? 이건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문제라 생각한다.
젊은 직원들이 기성세대의 라떼 이야기를 싫어하는 것은 이미 모든 걸 이루고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소싯적 이야기를 하며 그때는 옳고 지금은 틀렸다는 말만 일방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과 자유의 영역인 출퇴근 시간을 정확한 논리도 이유도 없이 그저 ‘일찍 출근하는 것이 미덕이다’ 라고 명령해봐야 되려 반발심만 생긴다. 2~30분 일찍 출근해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주변 정리도 하고, 포털뉴스도 검색하면서 미리 예열을 해줘야 8시 30분에 업무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출근길에 하루 일과의 우선순위를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스위치 온’이 되는 사람도 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직장에서 개개인의 성과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알아가려고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A대리는 3일간 매일 2시간 씩 야근을 함께하며 추가로 주어진 업무 또한 시간 내에 완벽히 소화해내고 칼같이 퇴근했다. 연장근로마저 시간 내에 계획대로 배분해서 완벽히 끝내는 그녀가 제발 내가 팀장으로 있는 동안 만큼은 이직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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