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하도급이란 기업(원사업자)이 생산 활동의 일부를 다른 기업(수급사업자)에 위탁하고, 수급사업자는 위탁받은 부분을 생산해 원사업자에게 납품하는 거래를 말한다. 일본식 한자로는 ‘하청(下請)’이라고 한다. ‘사내하청’ ‘원청’ ‘재하청’ 등의 단어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의 71%는 하도급 거래로 사업을 영위하고, 중소기업의 매출액 대비 하도급 거래 비중은 평균 83%에 달한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존속은 하도급 거래의 유지에 달려 있으며, 최근 회자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임금·처우 격차는 하도급 거래의 불공정성과 맥을 같이 한다.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와 하도급 거래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하도급 거래로 자본 설비의 고정화를 회피해 시장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분업과 전문화를 통해 핵심 역량에 집중할 수 있다는 식이다.
하도급 거래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비용 절감이다. 그리고 비용에는 인건비나 안전 비용 등이 포함돼, 위험의 외주화나 갑질 등을 야기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무위키에서 하도급 또는 하청 항목에는 ‘몇십 년 된 회사라도 원청이 단가를 내리다가 계약을 끊어버리면 바로 도산하는 것이 하청업체’ ‘하청업체의 대표이사나 임원은 원청업체에 잘 보여야 하므로 원청업체 실무자에게 쩔쩔맨다’ ‘하청업체 직원은 원청 소속 비정규직보다 훨씬 못하다’ 등 우울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배경 탓에 하도급법 집행은 공정거래 분야 법 집행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2021년 공정거래위원회 5개 지방사무소의 사건처리실적을 행위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전체 1400건 중 불공정하도급 거래행위가 842건으로 무려 60.1%의 비중을 차지한다.
공정위에 접수된 사건 건수로 비교해 보면 2021년 기준 하도급법은 52%, 소비자 보호 관련법 및 공정거래법은 각 17%, 가맹사업법 11%, 대리점법은 2%, 대규모유통업법은 1%를 차지해 하도급법 사건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거래 관행과 산업 구조상 하도급 거래에서 불공정 시비가 야기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공정위에 접수된 사건 중 하도급법은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지만, 하도급법 분쟁 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설명이 많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수급사업자는 불공정하도급 거래(하도급법 위반) 사건이 발생하면 어떤 조치를 할 수 있을까? 우선 구제 절차를 선택해야 한다. 민사소송, 공정거래조정원 조정 신청, 공정위 신고 등을 동시에 착수하거나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민사소송의 경우 절차 내에서 감정 신청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가능하고 진행 과정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인지대 등 소송비용이 상당하고, 1~3심까지 계속되는 것을 각오해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정위 신고의 경우 비용이 들지 않고 국가 행정권이 개입해 조사를 진행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반적인 하도급 조사 사안에서는 감정 신청 등이 예정돼 있지 않아 복잡한 사건에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규명하는데 한계가 있고, 그런 경우 심사 절차 종료로 사건이 종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공정거래조정원 조정 신청의 경우 비록 분쟁이 발생했어도 조정을 통해 어느 정도 원만한 해결을 기대할 수 있고 제삼자의 조정안을 통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조정안이 강제적 효력이 없고, 상대방에게 조정의 의사가 없는 경우 조정절차를 위해 공연히 시간만 허비하는 단점이 있다.
이 중에서 공정위 신고로 개시하는 공정위 조사 절차의 경우를 보자. 앞서 본 것처럼 사실관계가 복잡해 고도의 증거조사가 필요한 사안은 공정위 조사 절차와 맞지 않는다. 법률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새로운 사안, 예를 들어 ‘삼겹살을 주문자의 요구한 규격에 맞게 가공해 납품하는 거래가 하도급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제조 하도급에 해당하는지 여부’처럼 이론적으로는 탐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만 선례가 없었던 사안도 공정위 조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관계가 복잡하고 법률적 쟁점이 많은 사안이라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방법이 낫다.
그렇다면 공정위 신고가 상대적으로 적합한 사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법 위반 사례가 축적되고, 사실관계 및 위법성 판단을 유형화한 사안일수록 공정위 조사 절차에서 법 위반을 확인받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2022년 공정거래 백서에 언급된 사례를 보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미분양된 상가 건물 인수를 강요해 거래상 지위를 남용한 사례, 조선 경기 악화 및 발주자의 단가 인하 요청을 빌미로 일방적으로 하도급대금을 감액한 사례, 계약조항을 무시한 채 공사 지연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도급계약을 해지해 부당한 위탁취소가 문제 된 사례 등이 있다.
반대로 원사업자 입장에서 하도급법 관련 규제를 예방·방지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앞서 언급된 하도급법 위반 유형을 숙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규제받는 입장에서 특히 중요한 건 공정위 등 행정기관이 발표하는 규제 이슈,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정위는 2023년도 들어 하도급법 분야에서 납품단가 연동, 기술 탈취 근절 방안 등을 발표했는데, 이처럼 반복 발표되는 제도라면 세부 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키워드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하도급법 분쟁을 원천적으로 예방하기는 어려우므로 피해구제, 하도급대금 지급관리 시스템 등 벌점 경감 사유 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과 같이 하도급법은 공정거래법 규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따져봐야 할 내용도 많다. 그러나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사회나 언론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수많은 업체가 하도급 거래에 얽혀 있지만 굳이 이를 상기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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