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97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NASA의 관제실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지구 궤도를 잘 돌고 있던 우주정거장 스카이랩과의 교신이 갑자기 끊겼기 때문. 교신이 끊어진 이유는 더 황당했다. 태양 폭발로 인한 전파 방해도, 라디오 장치의 고장도 아니었다. 빡센 일정에 불만을 품은 우주인들이 의도적으로 라디오를 꺼버린 것. 이 일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주에서 벌어진 ‘파업’으로 회자된다. 이후 NASA는 우주인의 스케줄을 더 여유롭게 조정했고, 스카이랩의 우주인들이 워라밸을 쟁취했다.
아직까지도 이 이야기는 많은 다큐멘터리, 책, 뉴스에서 거론된다. 하지만 완벽한 ‘가짜 뉴스’다. 당시 미션 기간 초반에 스카이랩 우주인들과 NASA 관제실에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주인들이 의도적으로 교신을 끊고 파업한 적은 없다. 우주인들의 목숨은 관제실의 컨트롤에 달려 있다. 우주인들이 생명줄과 같은 교신을 일부러 끄고 시위하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당시 우주정거장에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주인과 관제실 사이에 정말로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꽤 유명한 이야기, 우주인들이 우주정거장에서 파업을 했었다는 사건의 전말을 공개한다.
1969년 아폴로 11호 미션을 시작으로 NASA는 유인 달 착륙에 연이어 성공했다. 이후 NASA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했다. 겨우 며칠만 지구 바깥에 머무르다 오는 것이 아니라 수개월 내내 우주 공간에 머무를 수 있는 새로운 우주 기지를 구상했다. 바로 우주정거장 프로젝트다.
1973년 5월 14일 NASA는 아폴로 미션 때 사용한 새턴V 로켓을 활용해 역사상 첫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을 궤도에 올렸다. 그런데 첫 발사 과정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다. 빠르게 솟아오른 로켓 주변이 난류에 휩싸였고 스카이랩은 미소운석까지 얻어맞았다. 실험실 모듈을 덮고 있던 태양열 차단막이 벗겨져 날아갔다. 우주정거장 내부는 순식간에 태양열로 달궈졌다. 내부 온도는 70도를 넘었다. 우주정거장이 아니라 우주 한증막이 된 셈이다. 태양열 차단막이 떨어져나갈 때 일부 조각은 태양광 패널도 강타했다. 태양광 패널을 제대로 펼칠 수 없게 된 우주정거장은 빠르게 전력이 방전되기 시작했다.
NASA는 부랴부랴 우주인들을 올려보냈다. 5월 24일과 7월 28일 두 번에 걸쳐 각각 세 명의 우주인으로 구성된 탐사대가 방문했다. 각 팀은 스카이랩에서 총 28일, 59일을 머물렀다. 특히 7월에 올라간 스카이랩 3호 팀은 성과가 아주 좋았다. 우주정거장 보수 작업부터 각종 과학 실험까지 목표치를 초월해 많은 작업을 해냈다. NASA가 이들을 ‘150% 크루’라고 치켜세울 정도였다.
문제는 그다음 11월 16일 지구를 떠난 스카이랩 4호 미션에서 시작되었다. NASA는 앞선 두 번의 미션을 통해 우주인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이번에는 미션 기간을 56일에서 84일로 무려 한 달 가까이 확 늘렸다. 훨씬 많은 우주 실험도 요구했다. 우주인들은 밥 먹고 자는 시간까지 쪼개면서 바쁜 일정 속에 틈틈이 운동도 해야 했다. NASA는 임시로 허접한 러닝머신(?)까지 만들게 했다. 사실 러닝머신이라기엔 민망한 수준이었다. 비좁은 우주정거장 안에 철판을 매달고 그 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수준이었다.
사실 앞서 두 번의 미션 때 올라간 우주인들은 모두 경험 많은 베테랑이었다. 스카이랩 2호 때는 제미니와 아폴로 미션 때 비행한 베테랑 피트 콘래드가 선장을 맡았다. 스카이랩 3호 때는 아폴로 12호를 타고 직접 달까지 다녀왔던 앨런 빈이 선장을 맡았다. 하지만 스카이랩 4호 미션 때는 이런 베테랑 멤버가 없었다. 세 명 모두 이번이 첫 우주 경험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당시 지구 근처로 아주 거대한 혜성 코후테크(Kohutek)가 지나가고 있었다. NASA는 지구 바깥에서 혜성을 자세하게 관측할 수 있는 이 기회도 놓칠 수 없었다. 날짜도 참 안 좋았다. 얄궂게도 혜성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 NASA는 12월 22일, 25일, 29일 총 세 번에 걸쳐 우주인들이 우주정거장 바깥으로 나가 혜성을 관측하는 일정을 추가했다.
스카이랩 4호 미션의 우주인들은 우주 식품을 담고 있던 긴 은박지 용기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트리 위에는 자신들이 관측해야 하는 혜성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호일을 오려서 얹었다. 소소한 파티를 즐긴 우주인들은 다시 일로 돌아가 휴일에도 쉬지 못한 채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1968년 아폴로 8호 미션 때 이후 우주인들이 우주 공간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두 번째 순간이 되었다.)
결국 NASA는 바쁜 일정으로 지쳤을 우주인들을 달래기 위해 잠깐의 휴식을 제공했다. 크리스마스날 우주정거장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90분 동안 교신을 주고받지 않고 그들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이 시간에도 NASA는 우주정거장의 상태와 궤도를 추적하고 있었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짧은 시간 동안 우주인들은 각자 책을 보고 쪽잠을 자고 지구의 사진을 찍는 등 잠깐의 여유를 만끽했다. 90분이 지난 뒤 NASA는 다시 우주인들과 교신을 주고받으며 원래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베테랑 선배들보다 훨씬 긴 기간의 미션을 마친 신입 우주인들은 지구로 무사히 귀환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현재 여러 설이 있다. 실제 교신이 끊어진 날짜가 25일이 아니라 26일 또는 29일, 30일이었다는 등 다양하다. 아쉽게도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 당시 관계자들의 기억과 증언에 따라 조금씩 묘사가 다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우주인들이 의도적으로 교신을 끊고 시위를 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재밌게도 스카이랩 미션이 모두 끝나고 2년도 더 지난 뒤 뜬금없이 ‘우주인 파업 썰’이 등장했다. 1976년 8월 기자 헨리 S.F. 쿠퍼는 ‘더 뉴요커’ 잡지에 ‘우주정거장에서의 삶’이라는 짧은 글을 실었다. 여기서 그는 스카이랩 4호 미션 당시 우주인들이 빡센 일정을 강요하는 NASA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일부러 90분간 교신을 끊고 자유시간을 즐겼다는 내용을 실었다. 90분간 교신 기록에 공백이 존재한다는 단 하나의 사실에 우주인 파업이라는 자극적인 상상력을 더한 셈이다. 정확한 출처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빠르게 퍼졌다. 다양한 과학책,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실제 사건인 듯 소개되었다.
NASA는 매번 우주 미션이 끝날 때마다 우주인들과 지상 관제실이 주고받은 모든 교신의 녹취록을 공개한다. 달에 처음 발을 내딛기 전 혹시 발이 빠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닐 암스트롱의 순진한 모습도, 우주선 안에서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누군가의 ‘갈색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끔찍한 상황에 대한 민망한 교신기록까지 모두 공개되었다. 당연히 스카이랩 4호 미션 당시 기록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파업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교신이 끊어지기 전에도, 교신이 돌아온 후에도 서로 욕하고 책임을 묻는 대화는 전혀 없었다. NASA는 스카이랩 4호 때 우주인들이 파업을 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님을 공식적으로 여러 번 밝혔다.
지금까지도 우주인들의 파업 썰은 소통과 배려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교훈을 남기긴 하지만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계속 도는 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한번 자리 잡은 가짜 뉴스는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익한 교훈과 재미까지 준 가짜 뉴스가 사실이길 바라는 메타 현실을 살아가려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일은 가짜 뉴스가 우주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사례일지도 모르겠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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