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월 8일 애플페이의 한국 상륙이 확정됐다. 그동안 삼성페이를 보며 아쉬움만 삼켰던 아이폰 유저들은 환호하는 분위기. 기정사실처럼 돌던 소문대로 애플은 현대카드의 손을 잡았다. 현대카드는 수많은 국내 아이폰 유저를 신규 고객으로 확보할 기회를 얻었지만,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독점권을 잃었다. 단말기 보급과 수수료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Lovely Apple(사랑스러운 사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1월 자신의 SNS 계정에 사과 8개가 있는 사진과 함께 게시한 문구다. 이를 보고 ‘2월 8일 애플페이를 출시하는 것 아니냐’던 일부 팔로워의 추측은 기정사실이 됐다. 애플사는 지난 8일 “Apple은 Apple Pay를 한국에서 출시할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에 공지하겠다”라는 단출한 입장문으로 국내 진출을 알렸다. 현대카드도 이날 애플과의 협업 사실을 알렸지만, 구체적인 서비스 시작 시기는 밝히지 않았다.
이로써 애플페이는 2014년 서비스 론칭 후 약 10년이 지나서야 한국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이미 해외 간편 결제 시장에선 빠른 속도로 자리 잡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 전역 소매업체의 90%에서 애플페이를 사용할 수 있으며, 애플페이 기능을 활성화한 아이폰은 2016년 10%에서 2022년 75%로 늘었다. 애플페이를 출시할 당시 미국도 비접촉 결제가 보편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확장세다.
국내 아이폰 유저의 간절한 기다림에도 애플페이가 한국에 빨리 들어오지 못한 이유로는 금융당국의 제재와 근거리 무선 통신(NFC) 기반의 결제가 보편화하지 않은 상황 등이 꼽혔다. 일단 금융당국이 ‘애플페이 등 해외 결제 서비스의 국내 진출을 허용한다’고 밝히면서 장애물 하나는 해소됐다. 금융위원회는 2월 3일 “여신전문금융업법, 전자금융거래법 등 관련 법령과 법령해석 등을 고려해, 신용카드사가 필요한 절차 등을 준수해 애플페이 서비스 도입을 추진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라고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새로운 결제 서비스의 개발과 도입을 기대한다면서도 몇 가지 조건을 걸고 시장 진입로를 열어줬다. 조건은 △신용카드사는 애플페이와 관련한 비용을 고객이나 가맹점에 부담시킬 수 없음 △정보 유출 발생 시 손해를 책임지는 등 소비자 보호 방안 마련 △서비스 범위와 형태에 따라 전자금융업자·여신전문금융업자로 등록 등이다.
금융당국 허가라는 산은 넘었지만 현대카드는 애플페이 독점권을 잃었다. 현대카드가 가맹점에 애플페이를 쓸 수 있는 NFC 단말기를 보급하더라도 독점 사업은 안 된다고 당국에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선점효과는 누리지만 타 사와의 경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2019년 6월 금융위는 법령 해석을 통해 신용카드사가 간편 결제 등의 단말기를 가맹점에 무상 보급할 경우 △다른 신용카드업자의 결제를 막지 않고 △제공 목적이 사업자 간 신용카드 거래를 위한 계약 체결·갱신과 관련이 없고 △공익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단말기 비용을 가맹점 수수료로 전가할 수 없다는 점도 명시했다.
현대카드가 애플페이와의 협업에 공들인 배경에는 신용카드 시장의 치열한 경쟁이 자리한다. 국내 신용카드 시장은 4강 체제로, 신용카드사 점유율(개인·법인 판매 기준)은 1위 신한카드와 2위 삼성카드가 공고한 가운데 3·4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형국이다. 신한카드 점유율이 20%대지만 1위부터 4위까지는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개인 신용카드 이용 금액을 기준으로 했을 때 2022년 현대카드 점유율은 16.0%로 3위를 기록했다. 2위인 삼성카드(17.8%)를 추격하면서 동시에 4위인 KB국민카드(15.4%)에 바짝 쫓기는 모습이다.
현대카드는 수년째 3위와 4위를 오가며 점유율 확대에 힘써왔다. 독점 계약을 통한 가입자 확보에도 나섰다. 현대카드는 2000년부터 코스트코의 기존 제휴사 삼성카드를 밀어내고 2019년부터 10년간 제휴를 맺었다. 삼성카드가 코스트코코리아 제휴카드를 30만 장 이상을 발급하는 등 효과를 톡톡히 누렸던 만큼, 현대카드의 점유율 확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애플페이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면 꾸준히 수익이 나는 판매처를 확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선 선점 효과만 기대하게 됐다.
다만 애플페이를 사용할 수 있는 NFC 단말기 확산에 적지 않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애플페이는 국제 표준 규격인 EMV를 따르는 NFC 단말기에서 결제가 가능한데, 주요 부가가치 통신망(VAN) 사업자가 잡고 있는 대형 마트·편의점·프랜차이즈 가맹점에는 EMV 인증 단말기가 보급됐지만, 영세 가맹점에선 찾기 어렵다. EMV 인증 여부를 떠나 NFC 단말기 보급률 자체가 10%대로 낮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금융당국은 연 매출 30억 원 이하 영세·중소 가맹점에 NFC·QR 단말기를 지원하지만, 그 중 애플페이가 가능한 단말기는 일부에 그친다. 신용카드 단말기 보급 사업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EMV 인증을 받으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라며 “단말기 업체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NFC 단말기마다 EMV 인증이 들어갈 수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가맹점은 계약을 맺은 VAN 사에서 제공하는 결제 단말기를 쓴다.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하는 메이저 VAN 사들은 외국인 소비자가 많은 편의점, 대형 프랜차이즈 등 위주로 먼저 단말기를 보급해왔다”라며 “NFC 단말기가 영세 가맹점에 깔리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본다. 소상공인 가맹점주들은 지원 받은 단말기가 애플페이 결제가 되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라고 짚었다.
수수료 문제로 타 카드사의 진입이 더딜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워낙 폐쇄적이라 세부 조건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카드사가 수수료 부담을 져야 할 것”이라며 “현대카드가 시범 운영하면서 얼마나 효과를 거두는지 보고 다른 카드사도 뛰어들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KB국민카드 등은 애플페이 진출 여부에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고 밝혔다. 앞선 관계자는 “애플에 넘어가는 수수료를 감안하면 애플페이 도입이 카드사나 VAN 사에 좋은 일만은 아니다”라며 “NFC 단말기 확산으로 어떤 효과가 날지 지켜봐야 한다”라고 전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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