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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장애인채용② 장애인 동료를 대하는 사심과 공감

약간의 배려와 시간이 필요할 뿐…장애인 노동권의 시각 달라져야

2023.02.09(Thu) 10:46:10

[비즈한국]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아이를 직접 낳고 키우다 보면 세계 최저 출산율이라는 우리나라 지표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주변에 아이들만 눈에 띈다. 조금 특별한 둘째 아이를 만난 이후에는 남들과 조금 다르게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이렇게 많이 있었나 싶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둘째는 선천성 난청으로 생후 2년 여간 크고 작은 수술을 여러차례 받았고, 지금은 또래 친구들보다 늦은 발달을 따라잡기 위해 언어재활 치료중이다)

 

어쩌다 보니 회사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장애인 고용률 지표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현안 가운데 하나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장애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이 고군분투하며 성장한 이야기와 사회에 적응하고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모습이 담긴 입사지원서만큼은 아무리 일이 많더라도 담당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한장 한장 공들여 읽는다. 내 아이의 모습이나 발달재활센터에서 만난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대입해 보고, 나름의 미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장성한 자식을 면접장까지 데리고 온 것만으로도 하나의 큰 과업을 마친 것 처럼 뿌듯해 하는 선배 부모들을 보면서 괜히 코 끝이 찡해지기도 하고, 면접장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동문서답하는 지원자들을 보면서 겉으론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힘내라고 응원도 하면서 그렇게 사심을 채우며 일하고 있다.

 

사진=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 한 장면

 

우리 부서에서 계약직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23살의 K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말은 조금 어눌하고 행동도 느린 편이었지만, 업무를 아주 잘게 쪼개서 세분화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알려주면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냈다. 같이 근무하는 기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교육받지 않은 내용을 돌발적으로 질문하는 방문객들 때문에 패닉에 휩싸이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분출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런 날은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전화로 다시 한번 설명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랬던 K도 1년 가까이 근무하다 보니 마음도 많이 단단해지고, 대하기 어려운 고객을 대처하는 나름의 방법도 터득했는데 그쯤 되니 K의 장애는 회사생활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처음에는 은연중에 불편함을 표출하던 팀원들이 K의 속도에 맞춰줄 정도로 조급함을 버렸다는 것이다. K는 계약기간이 끝날 즈음 모 대기업의 사내카페 정규 바리스타 자리에 합격해서 이직했다. 새로 일하는 회사에 놀러오면 직접 내린 커피를 한 잔 대접해 드리고 싶다는 그를 보면서 부모도 아닌데 괜히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청각장애로 인공와우를 하고 있는 인턴 N은 타자 속도와 정확도가 발군이었다. 온라인에서 메신저를 통해 텍스트로 업무를 주고 받는 동안만큼은 오히려 비장애인들 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는 직원이었다. N은 그동안 ‘정리해야지, 정리해야지’ 하며 생각만 하고 현업에 치여 미뤄둔 수십년 전 인사기록 자료들을 6개월 만에 완벽하게 전자화 시켜주었다. 그는 지금 기록물 관리회사에 다니고 있다.

 

앞 선 글(직장 내 파벌이 아닌 내 편을 만드는 현명한 방법)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까칠하고, 공평하게 친절하고, 공평하게 선 긋고 거절하고, 협력하면서 일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지만, 유독 장애인 채용에서만큼은 그 원칙을 잘 지키지 못한다. 다른 팀에서 배치를 거부한 직원일수록 우리 부서에 배치하고, 굳이 사수역할을 자처하며 장애 특성에 맞춰 적합한 직무를 찾아 교육시키고 좋은 자리가 있으면 이직도 권한다. 외부 고객이 아닌 내부 동료 직원들에게 모욕이나 괄시라도 받으면 직급이고 나이고 상관없이 찾아가서 강하게 항의하고 들이받기도 한다.

 

발달 장애인을 주로 고용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회사들은 장애인 의무고용 미이행에 따른 과태료를 삭감받는 간접고용 정책(장애인 연계고용제도)을 서비스 모델로 하여 창립 10년을 넘은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 ‘베어 베터’​도 그 시작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이진희 공동대표(전 NHN 이사)의 ‘사심’과 그의 동료 김정호(전 NHN 한게임 이사)의 ‘공감’에서 비롯되었다. 그들같은 경영 마인드나 추진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다름’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사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나 말 한마디, 그리고 그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동료들의 힘으로 장애인의 노동권에 대한 인식과 시각이 조금씩 바뀌어 가리라 믿고 있다.    

 

미국의 유아 TV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에는 휠체어를 탄 아이뿐 아니라 자폐스펙트럼, 다운증후군, 시각장애, 청각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나온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작가 에밀리 펄 킹슬리 또한 다운증후군으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이탈리아로 떠나는 멋진 여행을 준비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네덜란드에 도착해 새롭게 적응해 나가는 여정’에 비유한다. 아직 네덜란드만의 매력을 잘 모르고 있을(굳이 알고 싶지 않을지라도), 그리고 네덜란드의 가이드북을 사는 것을 망설이고 있을 인사담당자들이 이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장애인 채용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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