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교보생명의 주식 가치를 의도적으로 부풀렸다는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이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이에 따라 교보생명이 8년째 추진 중인 기업공개(IPO)도 늦춰질 전망이다. IPO를 둘러싼 주요 주주들의 의견이 상이한 데다 사법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실상 추진이 불가능하다. 교보생명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어서 어피니티와의 갈등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법조계 및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고법 형사1-1부는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딜로이트안진 회계사 등 5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안진의 전문가적 판단 없이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일방적 지시로 가격 결정이 이뤄졌다고 볼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지난해 2월 1심과 같은 결과로, 딜로이트안진이 적용 가능한 여러 가치평가 접근법 중 하나를 선택했을 뿐 어피니티에 유리한 방법만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게 무죄 선고의 이유다. 교보생명은 검찰의 상고를 통해 부족한 부분이 보완될 거라는 입장이다.
이번 형사재판과 별도로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2차 판정도 남아 있다. 특히 형사재판의 결과가 어피니티 컨소시엄 쪽으로 기운 것이 ICC 중재 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2012년 어피니티파트너스, IMM PE, 베어링PEA, 싱가포르투자청 컨소시엄은 교보생명에 1조 2000억 원을 투자했다. 투자 당시 3년 내 상장하지 않을 경우 신창재 회장에게 주식을 사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인 풋옵션을 걸었다. 이후 2018년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풋옵션을 행사했지만 신창재 회장이 이를 거부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신창재 회장과 어피니티는 주주 간 계약에 따라 풋옵션 행사가격은 양측이 각각 평가기관에 맡기되, 가격 차가 10% 이상일 경우 제3의 기관을 통해 최종 가격을 구하기로 했다. 어피니티는 딜로이트안진에 의뢰해 주당 40만 9912원의 가격을 산정했고, 신창재 회장은 가격 산정에 주주 간 합의가 없었다며 이를 거부했다.
ICC는 풋옵션은 인정했지만 풋옵션 가격은 판결하지 않았다. 2021년 9월 ICC는 “어피니티의 풋옵션 권리를 인정하지만, 딜로이트안진이 평가한 풋옵션 행사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해 교보생명과 어피니티가 이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상황이다. 교보생명은 자신들이 승소했다는 쪽으로, 어피니티는 “풋옵션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 어피니티는 ICC에 풋옵션 가격을 산정해달라고 2차 중재를 요청한 상황이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어피니티의 ‘풋옵션 분쟁’은 갈등의 골이 깊다. 어피니티가 교보생명에 투자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2018년부터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교보생명이 8년째 추진하는 IPO도 늦어질 전망이다. 이미 교보생명은 IPO가 세 번이나 무산됐다. 2015년에는 시장 침체, 2018년과 2021년은 어피니티와의 분쟁 탓이다.
지난해 7월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위원회는 교보생명에 상장 미승인 결정을 내렸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에 따르면, IPO는 ‘회사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송 등 분쟁사건’이 없어야 한다. 이 내용을 토대로 한국거래소는 교보생명의 IPO 승인을 거절했다. 교보생명은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 심사 미승인 사유가 해소돼 IPO를 재추진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여전히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어피니티 측은 사전 협의 없는 IPO를 반대한다. 풋옵션 가격(40만 9912원)을 선정한 2018년보다 생명보험사의 주가가 최대 40% 이상 하락했다. 이 상황에서 IPO를 추진해 주식 가격이 재산정되면 어피니티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결국 IPO에 대한 주요 주주들과 이해관계인들의 주장이 엇갈린 상황에서 한국거래소가 상장을 허락하기 어렵다고 밝힘에 따라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 한 교보생명의 IPO는 무기한 미뤄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교보생명은 신창재 회장(33.78%)과 여동생들(신경애 1.71%·신영애 1.41%)이 지분 36.9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어피니티는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1주당 24만 5000원(1조 2000억 원)에 교보생명 지분 24.01%를 사들여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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