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주말을 앞둔 지난 2월 3일 금요일 저녁 즈음,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졌다. 노르웨이 최대 신문사 중 하나인 VG에서 노르웨이 차세대 전차 사업으로 독일의 레오파드 2A7이 선택되었으며, 한국산 K2전차가 탈락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 이번 사업에서 승리한 독일은 노르웨이가 향후 54대의 레오파드2 A7 전차를 구매하고, 옵션으로 18대를 추가 구매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당 사업의 예산은 최대 196억 크로네(약 2조 3000억) 이내에서 집행될 예정이라는데, 아마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계약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작년 한 해, 한국 방위산업은 그야말로 ‘초대박 행진’의 연속이었고, 그 대박의 중심에는 K2 흑표전차가 있었기에 이번 노르웨이 전차 사업 수주 실패는 유난히 뼈아플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국방부는 공식 보도자료 및 SNS를 통해 ‘실패해서 아쉽지만, 높은 기준을 가진 노르웨이 정부의 요구사항을 우리 흑표전차가 통과했고, 성능 면에서 독일제와 동등 이상이라는 것이 이번 입찰에 증명되었다’라며, 이번 노르웨이 입찰 실패에 대해 좋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애쓰고 있다.
일단 냉정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수출 역사는 성공의 기쁨보다 실패의 좌절을 훨씬 더 많이 겪은 고난의 역사였다. 솔직히 말해서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수출 성공을 위해 일선에서 고생하던 실무자들 처지에서는 작년이 너무 이상하게 대박이 많아서 마치 꿈을 꾸는 느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도 ‘방산 대박’을 많이 이야기해서 몇몇 사람들이 오해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쟁쟁한 방위산업 선진국과 힘겹게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번 노르웨이 전차 사업 패배를 보면 이 격차는 분명하다. 이번 노르웨이 전차 사업의 결과 발표에서 노르웨이 총리 요나스 가르 스퇴레(Jonas Gahr Støre)는 ‘독일과 노르웨이의 협력이 긴밀하므로 공급업체로 선정했고, 이로써 노르웨이는 주변 북유럽 국가들과 같은 종류의 탱크를 가지게 되었다”라고 밝혔는데, 이것이 우리 방위산업이 넘지 못한 첫 번째 벽, ‘오래된 협력의 벽’이라고 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이미 독일과 수십 년간 깊은 방위산업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 유산(Legacy)의 위력은 보수적인 무기체계 도입 사업에서 엄청난 경쟁력을 발휘한다. 노르웨이 최대의 방위산업체 콩스버그(Kongsberg)사는 잠수함, 함정, 유도무기, 지상 장비 분야에서 독일과 아주 오랜 협력관계로 많은 무기체계가 공동 개발 중이며, 특히 수십조 원 규모의 독일-노르웨이 차세대 잠수함 계획인 212CD(Common Design)사업을 같이 추진 중이다. 또한, 전차와 장갑차 부분에서도 독일제 전차와 장갑차에 노르웨이산 부품이 이미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고, 무엇보다 이미 노르웨이 육군의 주력전차가 레오파드 2NO이다. 노르웨이군 입장에서는 기존에 쓰던 전차의 성능 개량된 버전을 도입하는 것이 훨씬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셈이다.
그럼 또 다른 장벽이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 또 다른 장벽은 ‘미래전에 대한 고민의 장벽’이 있다. 이것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번 노르웨이 전차 사업의 논란과 고민을 살펴봐야 한다.
우선 노르웨이 전차 사업의 결정이 상당히 지연되었는데, 이미 노르웨이는 지난 2월 초 독일과 한국 양측에 시험평가를 위해 전차를 실제로 노르웨이까지 수송해서 기동, 사격 등 대규모 시험평가를 이미 진행했으나 거의 일 년 가까이 결정이 늦춰졌다. 일부에서는 시험평가 결과에서 K2 흑표전차가 너무 우수해서 노르웨이가 당황하지 않았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는데, 사실은 이보다는 노르웨이 안에서 ‘전차가 정말 필요한가’에 대한 논쟁 때문에 늦어진 것이다.
노르웨이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그 폭이 아주 좁고 북극권에 인접해 있어서 대규모 전차전이 일어날 일이 적다. 이 때문에 노르웨이 군 총사령관 에이리크 크리스토페르센(Eirik Kristoffersen)는 정부에 전차 도입을 연기하고 그 대신 대공 방어 시스템, 장거리 정밀유도 미사일, 헬리콥터를 도입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었고, 정부는 고민 끝에 사령관의 제안을 기각하고 전차를 구매한 것이다. 노르웨이 언론에 따르면 독일 측이 사업 결정이 지연되면 2026년 이전에는 노르웨이에 전차를 공급할 수 없고, 가격 협상도 다시 해야 한다고 노르웨이 국방부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즉, 한국 전차가 수출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상대는 당장은 같은 전차지만, 더 큰 적은 전차와 같은 재래식 무기를 위협하는 신개념 미래 무기체계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장벽은 ‘선진국 제품들의 풍부한 확장성’이다. 대한민국 방위산업 베스트셀러 제품들은 경쟁 제품 대비 성능은 동등 이상이지만, 확장성과 성능개량 측면에서 선발 주자들을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업에서 경쟁했던 독일의 레오파드2A7 전차의 경우 기본 베이스가 40년 전에 완성되어 우리 K2 흑표 전차보다 구형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동안 수십 개 국가에서, 십여 개 이상의 각종 성능개량 개조 키트나 새로운 부품들이 엄청나게 많이 개발되었고, 제작사인 KMW와 라인메탈도 꾸준히 성능개량을 추진해 왔다.
그러므로, 구매자 관점에서 레오파드2는 독일, 스위스, 이스라엘, 심지어는 터키에서 만든 개량 키트를 가져다가 사용할 수 있으니 그 선택의 폭이 아주 넓고, 제작사 입장에서도 수입국이 새로운 추가 기능을 요구해도 대부분 이미 발매된 다른 제작사의 레오파드2 개조키트나 솔루션으로 대응할 수 있으니, 오랫동안 잘 팔린 선진국 무기는 그야말로 ‘개방된 플랫폼’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국산무기 수출을 막는 세 가지 장벽’에 대응할 방안은 있을까? 사실 이미 국내 방위산업은 필자보다 이런 문제를 더욱 잘 알고 있고, 이미 몇몇 국가의 사업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시험하고 있다.
우선 우리 방위산업은 수출 목표 국가에 따른 ‘맞춤형 세일즈 전략’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번 노르웨이와 같이 국가의 규모는 작으나 기술이 뛰어난 ‘방산 강소국’에는 노르웨이 콩스버그사의 프로텍터(Protector)를 국산 장갑차와 전차에 장착하기로 하는 등 공동 개발 형식으로 해당 국가의 방위산업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터키와 같이 기술 자립과 국산 개발에 열성적인 나라에는 포탑, 장갑, 현수장치 그리고 파워팩의 부품을 수출하여 터키 국산 전차 알타이(Altay)의 개발을 도왔다.
이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이집트 방위산업 협력이다. 이집트는 아랍의 방위산업 선두 주자 터키를 따라잡기 위해 방위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현재 도입이 확정된 K9EGY 자주포의 50%를 이집트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기술이전과 공장 생산이 진행 중이다. 현재는 K2전차와 FA-50 역시 현지생산 및 이집트 수출형 버전 개발을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인데, 이집트의 경우 수천 대의 탱크와 수백 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어 사업이 성사되면 폴란드 수준의 ‘방산 대박’을 기대해 볼 만하다.
‘미래전에 대한 고민의 장벽’ 역시 노력 중이다. 특히 전차의 경우 K2 흑표전차의 로템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대량의 전차가 드론과 미사일에 격파되기 전부터 일명 ‘XK3’로 불리는 미래형 차기 전차를 연구 중이다. 차기 전차의 경우 130mm 활강포로 K2전차보다 1.5배 이상의 공격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원거리 공격용 미사일, 정찰 드론, 그리고 무인 포탑과 캡슐형 승무원 구역으로 K2전차와 비교할 수 없는 미래형 전차로 선보일 예정이다.
마지막 약점인 부족한 확장성 역시 최근 국내 방위산업체 간, 그리고 국내와 해외 방위산업체 간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장갑차와 고기동 전술 차량을 중심으로 기아자동차의 고기동 전술 차에 SNT의 120mm 자주 박격포를 탑재하거나, 국산 장갑차 AS21에 호주-이스라엘 합작기업 EOS 사의 포탑을 장착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는데, 특히 미국의 차세대 장갑차 사업 OMFV에서 한화와 미국 오시코시(Oshkosh)사가 협력하여 공동 개발 중인데, 이 사례는 국내 지상 장비 최초 미국 방위산업체와 한국 방위산업체의 업체주도 공동 개발 사례로 특기할 만하다.
다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올해가 한국 방위산업에 더 어려운 환경인 것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방산 선진국들이 부족한 생산역량으로 한국이 상대적인 이득을 얻고 있지만, 이제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들이 재무장을 추진하면서 생산 가능 물량을 늘려가고 있다. 또한 노르웨이처럼 2026년에나 도입이 필요한 느긋한 고객들은 우리 방산의 장점인 빠른 납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방위산업이 추가로 노력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는 정치 문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방위산업의 특성을 고려해서, 집단안보를 갖추지 않은 나라들을 향해 ‘부담 없는 군사협력’을 한국과 추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 외교관계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적과 아군이 구분된 대외정책을 펴는데, 실제로는 명확한 적과 명확한 동맹을 만드는 것을 꺼리는 국가들이 훨씬 많다. 이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 없지만, 신뢰성 있는 무기를 공급하는 안보 파트너로서 한국 방위산업을 어필해야 한다.
새로운 전장 환경, 즉 ‘다 영역 전장(Multidomain Battlefield)’에 맞는 무기체계 개량과 신개념 무기체계를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독일 라인메탈(Rheinmetall)사는 KF51, 미국 GDLS사는 에이브럼스 X(AbramsX)라는 차세대 전차 개념을 내놓았는데, 이 전차들은 당장 전투에 투입할 수는 없지만, 전장에서 전차가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개념을 보여준다. 우리 역시 K2 흑표전차에 드론 운영, 장거리 미사일 장착, 정밀 센서 등 차세대 전차에 사용하는 기술 일부를 적용한 일명 ‘K2PIP’, 혹은 ‘K2.5’를 국제시장에 선보일 필요가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전에서 효과를 본 신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넘어, 여러 무기체계에 활용해서 군의 전투력과 수출경쟁력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가령,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약 중인 자폭 드론을 모방한 한국형 자폭 드론을 현재 개발 중인 공중 발사형 드론(ALE)과 연계하는 것을 생각해 볼 만하다. 다연장 로켓, 헬기, 전차, 장갑차 등에서 같은 종류의 공중발사 드론으로 정찰과 공격 임무를 수행한다면 한국 방위산업의 장점인 규모의 경제를 신개념 미래무기에도 적용, 가격 대 성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째 계속되는 지금, 올해 역시 국제 방위산업 시장은 작년만큼 뜨거울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수출금지 조치가 계속되는 만큼 기존에 러시아제 무기를 주문했던 이집트, 인도, 터키 등 여러 국가가 새로운 무기 수입처를 찾고 있는 상황을 우리가 잘 이용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건투를 빈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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