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30일 금융위 보고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회사들에 대해 ‘공공재’라고 규정한 발언이 금융권에서는 계속 거론되고 있다. 발언 후 일주일 동안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관 출신의 임종룡 신임 회장이 임명됐고, 금융위원회는 윤 대통령이 지적한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governance)’ 관련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등 구체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기존 은행장·회장의 능력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상장사들이 대다수인 은행들의 주인은 ‘없는 것’이 아니라 주주들”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만 쏙 빼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금융위 업무보고를 받으며 “은행이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관치의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조명현 고려대 교수(전 한국지배구조원장)가 “KT, 금융지주 등 소위 소유분산 기업들은 현직 최고경영자(CEO) 임기 만료 시기가 올 때마다 연임 관련 잡음이 계속된다. 소유분산 기업에서 계속되는 현직 CEO의 ‘참호 구축’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비판에 윤 대통령이 공감하면서 한 발언이었다.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가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책임 있는 경영을 이끌어내는 의결권 행사 지침)와 관련해서도 “은행과 같이 주인이 없거나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정부의 경영 관여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게 한 것인데, 과거 정부 투자기업 내지는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발언을 빼더라도 이미 참석자 명단에서부터 윤석열 정부의 ‘지침’이 엿보였다. 연임 의사를 놓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아예 초대를 받지 못한 것.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 등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과 은행장들은 모두 초대를 받았는데 우리금융지주는 빠졌다. 당시 행사에 동행한 한 실무진은 “우리금융지주만 초대하지 않은 것은 누가 봐도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및 인사 추진 방향을 잘 보라는 경고 아니었겠냐”고 귀띔했다.
#“주인 없는 게 아니라 주주가 주인” 반발
윤 대통령이 거버넌스와 스튜어드십을 거론하자 금융위원회도 곧바로 조치에 나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세훈 사무처장을 중심으로 소유분산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 후속 대처 마련에 나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역시 이 사안에 문제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김 위원장은 금융 인사를 놓고 관치 논란이 제기되자 “내치는 주인도 없는데 CEO가 우호적인 세력만 주변에 세워놓고 계속해서 그들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해서 인사하는 건 맞느냐”고 반박했다.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겨냥해 ‘물러나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금융위 보고자리 사흘 뒤인 3일 임종룡 법무법인 율촌 고문이 신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임명되며 금융지주사 CEO 인사는 모두 물갈이가 확정됐다. 임 내정자는 회장 임명 후 “조직혁신과 신(新)기업문화를 정립하겠다”며 주인 없는 기업에서 ‘주인’ 노릇을 한 금융지주 회장의 전횡을 바로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반발 섞인 반응이 나온다. ‘주인이 없는 회사’가 아니라, ‘주주가 주인인 회사’라는 지적이다. 4대 금융지주의 한 관계자는 “다른 대기업처럼 오너 일가가 없을 뿐이지 우리금융지주부터 KB와 신한, 하나금융까지 다 상장사이므로 주주가 주인이다”며 “금융지주 회장을 임명하는 기존 시스템이 금융당국과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회장들의 전횡이 더 강해진 것도 있는데 왜 앞선 정부에서 임명한 회장들을 문제 삼기 위해 금융을 ‘공공재’라고 규정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발했다.
금융 공기업 관계자 역시 “이번 정부 들어 정부 행사에 금융권 인사들을 더 자주 부르고, 금융위나 금감원에서 나오는 발언들도 ‘불편한 기색’을 더 잘 내비친다”며 “앞선 정부에 비해 ‘관치’가 더 강해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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