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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상견니', 나는 왜 뒤늦게 '상친자'가 되었나

하나의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롤러코스터 전개…'펑난소대' 3인방의 빼어난 연기

2023.02.01(Wed) 16:59:30

[비즈한국] 망했다. 나는 이제서야 ‘상친자’가 되었다. ‘상친자’가 뭐냐고? ‘상견니에 미친 자들’이란 뜻으로, 대만 드라마 ‘상견니’에 홀딱 빠져 버린 사람들을 뜻한다. 더 거칠게는 ‘상친놈’이라고도 한다. ‘상견니’가 인기 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건 마치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인기 유튜브 채널 같은 느낌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도 자신들이 보는 인기 유튜브 채널이 다른 것처럼, 내게 대만 드라마는 몇 만 광년은 떨어진 세계였으니까.

 

지난 1월 26일, 영화 ‘상견니’ 개봉을 기념해 처음으로 펑난소대 삼인방 가가연, 허광한, 시백우가 내한했다. 예매창 오픈 1분 만에 전석 매진된 무대인사들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은 펑난소대와 제작진들. 사진=오드 제공

 

드라마 ‘상견니’가 방영된 건 2019년의 일이다. OTT를 통해 이미 전 세계 10억 뷰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이 흥행작을 이제서야 본 건 주변의 ‘상친자’, 정확히 말하자면 ‘허친자’인 지인 덕분이다. 이 지인은 ‘상견니’의 남자 주인공 허광한을 몇 년째 ‘덕질’ 중인데, ‘상견니’로 주연을 맡기 전부터 다른 작품에서 조연이던 그를 마주하고는 빠져버렸단다. 덕분에 허광한의 이름과 얼굴은 이전부터 익숙했다. 확실히 ‘현실 남친 재질’이랄까, ‘첫사랑 재질’ 같은 청량하고 장난끼 넘치는 소년의 분위기가 매력적이긴 했다. 지인을 따라 2021년에는 허광한의 영화 ‘여름날 우리’도 관람했다. 국내에서 4만 명이 조금 넘는 관객을 동원했던 이 영화를, 지인은 무려 21번이나 보았다. 야근에 지친 심신을 달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 허광한만한 비타민제가 없다던가.

 

영화 ‘상견니’의 캐릭터 포스터. 팬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10대 시절의 모습이다. 영화에선 드라마와 달리 성장한 천윈루와 황위쉬안, 리쯔웨이와 왕취안성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사진=오드 제공

 

지인의 덕질이 소수의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한 건 이번에 영화 ‘상견니’로 주연 삼인방이 내한하면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목격하면서다. ‘상견니’에서 주인공들이 다닌 펑난고등학교의 이름을 따 일명 ‘펑난소대’라 불리는 주연 삼인방 가가연, 허광한, 시백우의 내한 무대인사는 예매 오픈 1분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긴급으로 앙코르 편성이 되는 등 뜨거운 화제를 낳았다. 개봉 4일 만에 관객 10만 명을 동원하며 국내에 ‘상친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톡톡히 보여준 건 물론(1월 31일 기준 17만 713명 기록). 내 지인도 벌써 무대인사 포함 4번이나 영화를 관람했다. 무대인사를 따라다니는 구름 같은 인파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나니, 궁금증이 절로 치솟을 수밖에.

 

그래서 봤다. 원작은 13부작인데, OTT에선 편당 45분 분량 21부로 쪼개져 있다. 비행기 사고로 죽은 연인 왕취안성(허광한)을 2년째 잊지 못하던 황위쉬안(가가연). 어느 날 익명으로 온 택배에 담긴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 속 우바이의 ‘Last Dance’를 듣다가 황위쉬안은 1998년으로 타임슬립하는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얼굴의 여고생 천윈루(가가연)에 빙의하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천윈루의 주변엔 죽은 연인 왕취안성과 같은 얼굴을 한 리쯔웨이(허광한)와 그의 친구 모쥔제(시백우)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분명 리쯔웨이와 왕취안성은 다른 인물인데, 순간순간 내뱉는 리쯔웨이의 말과 행동은 황위쉬안이 사랑했던 왕취안성의 그것과 똑 닮아 있다. 설마, 같은 사람?

 

드라마 ‘상견니’에서 펑난고등학교 복도를 걷는 주인공 삼인방. 다양한 장르가 혼재돼 있지만, ‘상견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풋풋해서 아름다웠던 그 시절 청춘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것에 있다.

 

‘상견니’에 대한 정보가 1도 없이 시작했기에, 천윈루와 리쯔웨이, 모쥔제가 있는 1998년과 황위쉬안이 왕취안성을 그리워하는 2019년이 교차되며 나오는 드라마 초반에는 첫사랑과 같은 얼굴을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던 영화 ‘러브레터’나 알고 보니 부모 세대와 같은 사랑을 시작한 청춘을 보여준 영화 ‘클래식’ 같은 부류인가 생각했다. 그러니 타임슬립이 나왔을 때 얼마나 놀랐겠나. 그러나 ‘동공지진’은 타임슬립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멈추지 않는다.

 

‘상견니’는 하나의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드라마다. 매력적인 남학생 둘에 여학생 한 명이 삼각관계를 이루는 청량하지만 뻔한 청춘 학원물인가 싶다가 판타지물로 변하고, 천윈루를 공격하는 범인을 쫓는 미스터리 스릴러물이었다가, 한 몸 안에 깃든 천윈루와 황위쉬안의 심리 드라마였다가, 결국은 절절한 멜로이기도 하다. 여러 장르가 혼용돼 있지만 단단한 서사와 공감되는 감정으로 엄청난 몰입도를 보여주니, ‘상친자’가 될 수밖에.

 

꿈속에서 어린 황위쉬안이 어린 리쯔웨이를 만나는 모습과 현실에서 11살의 나이 차를 딛고 연인이 된 황위쉬안과 리쯔웨이. 드라마의 마지막에 아쉬움이 있을 팬들을 위한 답례 선물 같은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사진=오드 제공

 

‘시간을 달리는 소녀’ ‘말할 수 없는 비밀’ ‘나인’ ‘너의 이름은’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등 타임슬립이 주요 소재인 작품은 그간 숱하게 많았다. 최근에도 (비록 결말로 난타를 당했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이 타임슬립과 빙의를 보여주며 화제를 모은 바 있고. 그러나 ‘상견니’처럼 뫼비우스의 띠마냥 무수히 많은 시간선에서 운명을 거스르고 서로의 시간선을 오가며 운명을 만들어내는 작품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타임슬립을 하는 것도 한 명을 넘어 두 명, 세 명까지 늘어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수많은 변수와 사건들로 보는 시청자들의 머리는 아파올 뿐이고···. 그럼에도 드라마를 보는 눈은 끊임없이 화면을 향하고, 입은 나도 모르게 우바이의 ‘Last Dance’를 따라 부르게 된다.

 

무엇보다 주연배우들의 폼이 미쳤다. 20대 후반의 황위쉬안과 20대 초반의 황위쉬안, 그리고 전혀 다른 성격의 10대 천윈루와 황위쉬안인 척 하는 천윈루 등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가가연의 연기는 일품. 나중에는 눈빛이나 걸음걸이, 어깨의 각도만 봐도 가가연이 누구를 연기하는지 단숨에 알아챌 정도다. 아련하고 절절한 첫사랑의 정석을 보여주는 모쥔제 역의 시백우에 ‘짠내’를 느낄 사람도 많을 거다. 그리고 허광한. 처음엔 ‘3반 이쁜이’ 정도의 청량하고 귀여운 소년을 생각했는데, 왕취안성이 된 리쯔웨이와 왕취안성을 겪고 다시 리쯔웨이가 된 리쯔웨이를 연기하는 그를 보면, 와, 홀릴 수밖에 없는 인물이란 걸 절감하게 된다.

 

‘상견니’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주의하자. 당분간 당신의 시간은 ‘순삭’될 수 있다. ‘과몰입 덕후’가 될 수 있다. 무수히 많은 ‘상친자 짤’ ‘상친놈 짤’이 그를 예고한다.

 

‘상견니’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다른 신체에 다른 혼이 깃들고, 그것도 시간선에 따라 왔다 갔다 하니 차근차근 보지 않으면 이해가 쉽지 않다. 그래도 아직 ‘상견니’를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운이 좋다. 인생에 있어 격하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가. 과몰입을 대비하여 카세트 플레이어나 빨강, 파랑색 줄 이어폰을 준비할 수도 있고, 코로나를 뒤로하고 자유로워진 여행으로 대만 투어를 준비할 수도 있고, 팬들을 위한 답례 선물 같은 영화 ‘상견니’도 상영 중이다.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전주의 드럼 소리부터 떨리게 되는 우바이의 ‘Last Dance’를 소리없이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만족을 줄 것이다(쏘이쟌스 짱니옌징 비러치라이~).

 

드라마 ‘상견니’는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 여러 OTT 플랫폼에서 시청 가능하다. ‘허친자’가 되었다면 넷플릭스, 왓챠, 티빙에서 ‘해길랍’도 있고, 왓챠, 티빙, 웨이브의 ‘1006적방객’, 왓챠의 ‘무신지지불하우’에서도 허광한의 모습을 찾을 수 있으니 참고.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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