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어렵사리 코로나19를 버텨온 목욕탕 업계가 공공요금 인상에 또 다시 위기를 맞았다. 생존을 위해서는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손님이 끊길까 속앓이만 하는 중이다. 운영을 해도 남는 것이 없으니 문을 닫을까도 고민하지만 ‘억대’의 폐업 비용을 생각하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
#코로나 직격탄 맞았던 2021년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30일. 전남 지역의 A 목욕탕을 찾은 손님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마스크를 쓰고 목욕탕, 헬스장을 이용하는 데 갑갑함을 느낀 고객이 많았던 만큼,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지면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목욕탕 주인 김 아무개 씨는 실망한 모습이 역력했다.
“달라진 게 없더라고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는데도 목욕탕을 찾은 고객의 절반 이상이 마스크를 써요. 신규 고객의 유입도 전혀 없고, 고정 고객만 이용 중이죠. 아직도 목욕탕에 가는 것을 불안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고, 코로나19 장기화로 목욕탕을 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40대 초반인 김 씨는 2019년 부모님과 함께 목욕탕 사업을 시작했다. 40억 원을 들여 연면적 약 2000㎡(600평) 규모의 4층짜리 대형 목욕탕 건물을 지었다. 첫해만 해도 하루 평균 400명 이상의 손님이 목욕탕을 찾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며 상황은 달라졌다. 목욕탕을 찾는 고객 수는 절반으로 줄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견딘 시간이 3년. 운영비 적자를 메우기 위해 타던 차까지 팔며 버텼다.
지난해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상황이 조금 나아졌던 터라 희망이 생기는가 했는데, 해가 바뀌니 절망감은 더욱 커졌다. 그는 “코로나19 직격타를 맞았던 2021년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때보다 더 버티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금리 인상으로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진 데다 공공요금까지 올라 적자가 더 악화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자영업자 대부분이 대출을 받고 있을 텐데 금리가 너무 많이 올랐다. 게다가 이달에는 공공요금 고지서를 보고 암담했다”며 “목욕탕은 공공요금의 영향이 매우 큰 업종이다. 하루에 사용하는 평균 물의 양이 3000톤가량이고,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계속 난방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 가스, 난방비 등 겨울철 운영비가 월 평균 1000만 원씩 들었는데, 이달에는 1500만 원으로 훌쩍 뛰었다. 다음 달에는 더 많이 나올 텐데 정말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선불 회원권에 영업시간 단축도 어려워…대형 목욕탕 운영난 극심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3년 약 1만 곳에 육박했던 목욕탕은 지난해 연말 기준 6012개로 줄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사라진 목욕탕이 1375개다. 어렵사리 살아남은 곳들 상당수는 운영주가 목욕탕 건물을 소유한 곳이다. 임대료 부담이 없기 때문에 손님이 줄어도 근근이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곳들도 공공요금 인상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영업시간 내내 온수와 난방을 가동해야 하는 만큼 운영비 부담이 커지는 데다 줄어든 손님 수가 회복되지 않아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
대형 목욕탕은 운영난이 더욱 심각하다. 소형 시설에 비해 운영비 부담이 큰 데다 영업시간을 단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의 김 씨는 “대형 목욕탕은 대부분 회원제로 운영된다. 미리 선불을 지급한 회원들이 있으니 손님이 없다고 해서 마음대로 문을 닫을 수는 없다”며 “근처의 작은 목욕탕은 요즘 손님이 없어 오후 1시에 문을 닫는다. (우리 목욕탕은) 손님이 없어도 계속 난방을 해야 하니 영업을 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폐업도 쉽지 않다. 목욕탕은 식당이나 카페 등과 시설·구조가 크게 달라 폐업에 들어가는 돈이 상당하다. 김 씨도 최근 폐업을 고민했지만 처리 비용을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그는 “목욕탕 시설의 대부분은 돌과 시멘트다. 돌을 깨고 철거해 치우는 금액이 만만치 않다”며 “중장비를 동원해야 하고 폐기물 처리 비용도 상당하다. 식당, 카페처럼 팔 수 있는 집기도 거의 없다. 폐업하는 데만 3억 원가량이 들다 보니 폐업 결정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목욕탕 건물은 잘 팔리지도 않아 헐값에 내놔야 한다. 싸게 내놔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부동산 시장에서 목욕탕 매물은 가장 인기 없는 매물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입장료 인상밖에 없다. 하지만 목욕탕 요금을 올렸다가 그나마 오던 손님까지 끊길까봐 마음대로 가격을 올리기도 힘들다. 김수철 한국목욕업중앙회 사무총장은 “코로나 후유증이 누적된 데다 공공요금 인상으로 부담이 크다 보니 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원가 인상을 고려하면 현재 8000원 선인 요금을 1만 2000원으로 올려야 하는데, 가격을 올리면 고객이 줄 것 같아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목욕탕은 단순한 목욕시설 이상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취약계층에 일종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행정적 지원 등을 통해서라도 ‘생존권’을 지켜달라는 호소다. 김 사무총장은 “목욕탕은 일용직 노동자가 늦은 밤 찾아와 언 몸을 녹이고 쉬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며 “요즘은 업주들이 점점 목욕탕 운영을 포기하고 있다. 난방비 부담으로 집에서 목욕을 못하는 취약계층은 목욕탕이 사라지면 어디로 가야 하나. 심야운영 제한 등의 규제를 풀어 목욕탕 이용객을 확대하는 등 목욕업계 활성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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