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해외에선 대기업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시장 조사를 하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이 경우 벤처기업의 창업자는 회사를 매각해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을 받아 새로운 사업을 준비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고, 대기업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혁신의 기회를 창출하면서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얻는다. 유명한 일론 머스크도 사업 초기에 회사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했고, 매각한 회사 중 하나는 상호를 ‘페이팔’로 변경한 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간편 결제 서비스가 됐다.
필자가 견문이 적은 것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미담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부정적인 사례를 찾기가 쉽다. 대기업이 인력을 빼내거나 아이디어를 탈취했다는 둥 중소기업의 원망만 도처에 널렸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다른 사업자의 인력을 부당하게 유인·채용해 다른 사업자의 사업 활동을 상당히 곤란하게 할 정도로 방해하는 행위’를 사업 활동 방해 행위 중 하나로 명시한다. 이 조항은 과거부터 기업 간의 인력 빼내기 문제가 심각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할까? 필자 생각에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선 아이디어 탈취에 대한 법적 제재가 경미해, 굳이 대가를 주고 아이디어를 매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례를 하나 가정해보자. 아래 나올 내용은 예시로 든 것이며, 실제 사례가 아니다. 만약 현실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우연의 일치다. 먼저 대기업이 시장 조사 과정에서 사업성이 유망해 보이는 기술이나 사업모델, 비즈니스 방식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접촉한다. 이때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 등은 시장 초기 단계에 있는 것으로 대체로 인지도가 높지 않고, 특허 등 권리보호 조치도 미비한 상태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미팅하면서 투자, 거래 등을 암시하며 프레젠테이션과 기술자료 등을 요구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간택’에 감격해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의 사업모델을 설명하고, 대기업 현업 관계자의 ‘밀고 당기기’에 넘어가 자발적으로 영업 비밀을 제공한다.
아이디어는 처음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내용을 파악한 후 실현하려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늘 아래 진실로 새로운 것은 없다. 과거에 있었던 것은 후에도 다시 있을 것이고, 일이라는 건 대부분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시 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아이디어 내용을 들어보니, 자신이 직접 실현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비해 인력, 자본, 마케팅 등 여러 방면에서 월등히 우월하다. 그러자 대기업은 중소기업과의 협상을 중단하고 아이디어를 활용한 사업을 개시한다. 대기업은 불여튼튼의 차원에서 아이디어에 관한 중소기업의 특허권이 존재하는지 조사하고, 특허권이 존재한다면 회피 설계를 하거나 특허권을 무효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아이디어는 대외적으로 공개하면 그 순간부터 가치가 반감되고 사후에 원상회복 등의 구제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소기업이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대기업으로부터 아이디어를 탈취당했다고 여긴다면 어떤 논리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먼저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쉽지 않다.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는 저작물이란 사람의 정신적 아이디어나 사상, 또는 감정의 창작적 표현물을 말한다. 외부에 드러난 창작적 표현물의 형식만 보호되고 표현의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나 기초, 이론은 ‘창작성’을 인정하지 않아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위 표현 이분법이라고 해서 아이디어는 저작물로 보호하지 않고 표현만 저작물로 보호한다는 법리적 결론이기도 하다.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보호를 주장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지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기술상·경영상 정보를 말하는데,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거래를 기대하고 자발적으로 기술정보와 경영정보를 건넸다면 영업비밀의 요건인 ‘비공지성’ ‘비밀관리성’ 등이 부정될 가능성이 높다.
특허권으로 보호받는다는 주장도 공허하다.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여건상 특허권을 출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애초에 경영상 정보는 특허권의 보호 대상인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서 고도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특허소송을 벌이는 건 무모한 일이다. 오히려 분쟁 과정에서 신규성이 부정돼 중소기업의 특허가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지적재산권법으로 보호받기 어렵다면 민사법상 일반 원리로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을 주장해 볼 여지가 있다. ‘어느 일방이 교섭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해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했음에도, 타당한 이유 없이 계약의 체결을 거부해 손해를 입혔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춰볼 때 계약자유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것이 판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사소송에서 불법행위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고, 천신만고 끝에 불법행위를 입증했다고 하더라도, 실무상 불법행위에 대해 인정하는 손해배상 금액은 실제 손해에 비해 상당히 미흡하다는 점이다. 법리적으로 교섭의 일방 파기에 대한 손해배상은 계약체결을 신뢰한 것에 대한 배상, 즉 신뢰이익에 대한 배상에 그치기 때문이다. 신뢰이익의 배상이란 계약체결을 준비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만을 배상해 주는 식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대기업 측에서도 주장할 내용이 많을 것이다. 중소기업이 주장하는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것이거나 대기업이 과거부터 독자적인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개발한 사안일 수도 있다.
따라서 아이디어 탈취 관련 사건에서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 없이 시시비비를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다만 현재 제도에서 아이디어를 보호받는 것은 쉽지 않고, 이 때문에 서로 간에 신뢰가 없다 보니 아이디어 거래가 제한돼 상호 불이익을 얻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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