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경기 침체로 전체 가전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삼성전자가 오히려 생활가전 사업 강화에 나서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는 최근 생활가전 사업 인력을 충원하고 연구 개발 조직도 확충했다. 생활가전을 디바이스 경험(DX) 부문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다만 가전 사업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품질 논란 해소와 소비자 신뢰 회복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삼성전자는 생활가전사업부 개발팀과 개발팀 산하 소프트웨어 개발그룹을 냉장고, 식기세척기, 의류케어기, 조리기기, 청소기 등 제품군별로 팀을 나눠 개편했다. 이에 앞서 2022년 11~12월 생활가전사업부의 영업·디자인·연구개발 등 각 분야 경력 사원을 모집한 데 이어, 사내에선 DX 부문 임직원을 대상으로 인센티브 2000만 원 등의 조건까지 걸며 인력 충원에 나섰다. 또 선행연구개발 조직인 삼성리서치 내에 ‘차세대가전연구팀’을 신설하면서 신제품 개발 역량을 강화했다.
현재 가전 시장의 업황은 좋지 않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집콕 확산으로 인해 가전 시장이 반사이익을 얻었지만,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 단계로 진입하는 가운데 경기 침체가 더해져 수요가 크게 줄었다. 글로벌 시장 분석 기업 GfK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국내 가전 시장의 매출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대형가전(TV,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등) 성장률은 -8.7%, 생활가전(가습기, 헤어드라이어 등)은 -7.2%를 기록했다. 통계청 자료에서도 2022년 3분기 국내 가전제품 판매액은 7조 8238억 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8조 1899억 원) 대비 4.5% 감소했다. 고금리 기조에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어 가전의 소비 부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수요 감소는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삼성전자 4분기 잠정실적은 매출 70조 원, 영업이익 4조 3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6%, -69.0% 줄었다. 증권가는 4분기 가전·영상 디스플레이(VD) 사업의 영업이익을 2600억 원대(한화투자증권)로 추산했다. 삼성전자는 공시를 통해 “가전 사업은 시장 수요 부진과 원가 부담이 지속돼 수익성이 악화했다”라고 설명했다. 어려운 건 경쟁사도 마찬가지다. LG전자 4분기 잠정실적은 매출 21조 8597억 원, 영업이익 655억 원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1.2% 감소했다. 주요 사업인 가전과 TV 매출이 줄고 마케팅 비용은 늘어 수익성이 악화했다.
이런 상황에 삼성전자가 생활가전 사업을 DX 부문의 성장동력으로 제시해 시장의 관심이 모였다. 생활가전사업부장을 겸직한 한종희 DX 부문장 부회장은 2023 CES에서 “글로벌 가전 시장은 3400억 달러(약 419조 원)가 넘는 큰 시장”이라며 “비스포크의 핵심 가치(디자인·지속가능성·연결성)를 기반으로 신규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활가전 사업이 삼성전자의 ‘아픈 손가락’이라는 평을 받는다는 점에서도 행보가 주목된다. 업계 선두주자로 꼽히는 반도체, 모바일 등 타 사업에 비해 생활가전 사업이 수익성이 좋지 않고 매출 비중이 작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가전은 LG’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도 고민거리다. 2019년 개인화 디자인 콘셉트의 프리미엄 브랜드 ‘비스포크’가 히트하면서 가전 사업이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경기 악화로 소비자가 지갑을 닫으면서 호조를 이어가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생활가전의 키로 삼은 건 인공지능(AI)이다. 19일 삼성전자는 국내 최초로 한국표준협회가 주관하는 ‘AI 신뢰성 인증’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제품에 적용된 AI 기술의 투명성·안전성·책임성·다양성 등을 검증하는 인증이다. 상황에 맞게 알아서 최적화하는 ‘똑똑한 가전’으로 고객 편의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제품 출시도 이어졌다. 1월에 14인용 비스포크 식기세척기, 2023년형 비스포크 무풍에어컨·큐브 에어 공기청정기 등 AI 기능을 포함한 가전 신제품이 잇따라 나왔고, 25일엔 IoT 제품 간 연결을 위한 ‘스마트싱스 스테이션’을 선보였다. 스마트싱스 스테이션은 가전, 가구 등을 한 번에 제어할 수 있는 제품으로 삼성뿐만 아니라 타 사 제품도 지원한다. 다만 삼성전자 측은 “에어컨은 매년 1월에 신제품을 내놓기에 올해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라며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생활가전 사업을 키우고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면 ‘신뢰도 회복’이라는 과제부터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세탁기 리콜 문제로 인해 안전성을 둘러싼 우려가 적잖다. 2022년 8월 최신 제품인 비스포크 그랑데 AI 드럼세탁기 중 일부 제품의 강화유리가 이탈·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 삼성전자는 폭발 원인을 도어 커버와 유리의 접착 불량이라고 밝히고 무상 도어 교환 서비스를 실시했다. 12월에는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삼성전자의 일부 통돌이 세탁기 모델에 “화재 위험이 있다”며 리콜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내렸다.
온라인에서 “프리미엄 라인인 비스포크까지 ODM(제조자 개발생산)으로 만들어 품질이 의심된다”라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넘어야 할 부분이다. 일부 제품의 제조사가 중국 기업 등으로 나오면서 소비자의 의심이 이어지는 것. 실제로 비스포크 라인 제품 중에는 제조사가 삼성전자가 아닌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비스포크 인덕션 빌트인(NZ63B6527XG)의 제조사는 메이디(Guangdong Midea Consumer Electric Manufacturing), 제조국가는 중국으로 표기돼 있다. 공기청정기인 비스포크 큐브 에어(AX053B810HND)의 제조사는 국내 중소기업 두영실업이다.
ODM 논란에 관해 삼성전자 측은 “악의적인 루머에 가깝다”라고 반박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OEM(주문자 위탁 생산)이나 자체 생산하는 제품이 다수이며 ODM은 제습기 정도로 거의 없다”라며 “제품 개발과 생산에서 최적의 방법을 택하고 있으며 위탁 생산하는 업체가 충분한 역량이 있다면 생산을 맡길 수 있다”라고 답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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