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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카피 논란'에 멍드는 혁신 생태계

투자하겠다며 정보 빼내 유사 제품 출시…'내 아이디어가 보호받는다'는 기본적 안전망 있어야

2023.01.25(Wed) 11:10:58

[비즈한국] 독일인에게 빵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매일 아침 동네 빵집에 들러 갓 구운 빵을 사는 데에 정성을 들이는 이들을 보면 빵을 먹는 것이 매우 경건한 의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하철역마다 자리한 작은 빵집에서 나는 빵 냄새를 고향의 냄새라고 말하는 독일 친구도 있었다. 우리가 갓 지은 밥을 보면 ‘집’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베이크 인 스페이스는 2017년 독일항공우주연구소 DSL에서 운영하는 이노스페이스 마스터즈(INNOspace Masters)에서 혁신 스타트업 우승자로 선정되었다. 사진=innospace-masters.de

 

#​독일우주빵’이 ‘미국우주쿠키’로 둔갑

 

독일 브레멘의 창업가 세바스티안 마르쿠(Sebastian Marcu)는 지구를 떠나 먼 우주에서 연구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인들이 그곳을 ‘집’처럼 느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2017년 ‘베이크 인 스페이스(Bake in Space GmbH)’라는 회사를 설립해 우주에서 빵을 굽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조금 이상해 보일지 모르는 이 아이디어에 사람들은 흥미를 보였다. 특히 우주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마르쿠의 아이디어에 열광했다. 우주에서 빵을 구워내는 데 성공한다는 것은, 거기에 적용되는 많은 새로운 기술을 보유하게 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우주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빵부스러기가 날아다니다가 우주비행사의 눈에 들어가 건강 문제가 생기거나 우주선에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쿠는 ‘가장 중요한 것은 부스러기가 많이 생기지 않는 빵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우주에서 빵을 구울 수 있는 오븐 개발에 몰두했다. 동시에 일개 스타트업이 도전하기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우주산업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널리 알리고, 투자자를 모으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세계적으로 방영되는 테드(TED) 강연 프로그램에도 참여해서 열정적으로 그 아이디어를 알렸다. 

 

2019년 TED 강연에서 ‘우주에서 빵 굽기’에 관해 강연하는 세바스티안 마르쿠. 사진=ted.com

 

공동 창업자와 함께 특수 오븐 설계를 마친 마르쿠는 이를 국제 우주정거장 ISS에 보내 실험할 수 있도록 비용을 모았다. 약 100만 유로(13억 원)가 필요했지만 기존 국가 지원 프로그램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랐기에 독일 정부와 우주 산업계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도록 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독일을 넘어 미국까지 진출해 자기 아이디어를 알렸다. 

 

미국의 투자자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르쿠는 관심 있는 투자자들에게 열정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오븐의 스케치를 보여주고 상세한 3D 모델도 공개했다. 그러나 투자는 성사되지 않았다. 대신 아이디어는 빠르게 카피 되었고, 투자하겠다고 접근한 자들에 의해 신속하게 구현되었다. “독일 빵을 우주로!”라는 모토는 어느새 “우주에 쿠키를!(Cookies in Space)”로 둔갑해서 아메리칸 스타일 쿠키를 우주에서 구워내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영감을 받았을 뿐, 베끼지는 않았다?

 

이것은 독일 창업자가 미국의 투자자에게 당했다는 국가 간 경쟁 구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비슷한 사례는 독일 안에서도 있었다. 더욱 뻔뻔한 방식으로 말이다. 

 

베를린에서 모듈식 여행용 백팩을 개발한 스타트업 웨이크스(wayks)는 어느 날 단골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웨이크스랑 완전히 똑같은 디자인의 가방을 치보(Tschibo)에서 무려 3분의 1 가격으로 팔고 있어요!”

 

치보는 1949년 설립되어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독일 최대 소비재 생산 기업이다. 어떤 소비재를 생산하느냐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대부분을 생산한다. 가방에서부터 속옷, 수건, 가구, 심지어 여행·보험 상품도 판다. 독일에 약 550개의 매장, 해외에는 320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단독 매장뿐만 아니라 독일 대형 슈퍼마켓에 가면 치보 전용 코너를 쉽게 볼 수 있다. 전 세계에 1만 1230명의 직원을 두고, 2021년 매출만 32억 6000만 유로(4조 3000억 원)에 달하는 큰 회사다. 

 

치보는 갓 로스팅한 커피콩을 우편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도 커피로 유명하다. 그런 회사에서 작은 스타트업의 가방을 베꼈다고?

 

웨이크스가 자사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웨이크스(위)와 치보의 가방 사진. 사진=wayks.com

 

웨이크스는 사건을 찬찬히 되짚고 문제를 따져보기로 한다. 그동안의 주문 내역을 살펴보니, 1년 전에 치보의 본사 주소로 누군가가 웨이크스의 슬링백과 여행용 배낭을 주문한 것을 발견했다. 웨이크스는 당장 치보에 해명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대답을 받지 못했다. 

 

이에 웨이크스는 인스타그램에 관련 게시물을 올려 치보의 카피 사실을 알렸다. 즉시 많은 팔로어들이 이에 반응했다. 디자이너, 창업자, 타 백팩 브랜드, 언론인, 인플루언서가 이 소식을 공유했다. 그때서야 치보는 웨이크스의 이메일에 회신해 전화 통화를 요청했다. (메일에서 자세히 얘기하지 않고 전화로 이야기하자는 수법도 매우 치밀하다.)

 

웨이크스 창업자 레오니 슈타인(Leonie Stein)은 “전화 통화에서 치보의 관계자는 ‘우리는 시중에 나오는 다양한 제품과 트렌드에서 영감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는 그 영감에서 비롯된 우리의 디자인이다. 웨이크스가 가진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다시 연락하겠다’며 카피가 아닌 자신들이 다양한 제품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라고 해명했다”고 말했다.

 

이후 치보는 직접 자사의 가방을 웨이크스 사무실로 보내 비교할 것을 요청했다. 사과나 구체적인 제안은 없었다. 두 차례 메일을 보내 “가방을 봐서 알겠지만, 이것은 비슷하기만 할 뿐 명백히 다른 우리의 디자인”이라며 같은 해명을 반복했다. 치보의 이런 태도에 웨이크스는 앞으로 협력할 의사가 없으며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연이라기엔 모델이 찍은 화보마저 비슷하다. 사진=wayksberlin 인스타그램

 

독일 언론은 앞다투어 이 소식을 보도했다. 언론의 질의에 치보의 대변인은 “우리는 연간 5000종의 제품을 제공한다.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트렌드를 추적하고, 그로부터 영감을 얻어 자체 제품을 개발한다. 다른 회사의 제품과 유사한 점이 있을 수는 있으나, 다른 회사 제품을 베껴서 타사에 피해를 주는 것은 우리의 비즈니스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우주에서 빵을 굽는 오븐을 고안한 세바스티안 마르쿠는 어떻게 되었을까? 현재 그의 회사 베이크 인 스페이스는 폐업했다. 세바스티안 마르쿠는 여전히 우주 관련 미디어 및 콘텐츠 마케팅을 하는 회사의 이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간 투자회사와 어떠한 법적 공방을 펼쳤고 어떠한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억지로 나를 밀어내는 뻔뻔한 도둑에게 당한 기분”이라고 불쾌함을 드러냈을 뿐이다. 

 

웨이크스 창업자 레오니 슈타인은 “앞으로 법적으로 대응한다면 과정이 복잡할 거고, 수만 유로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법적으로 어떻게 결론이 나듯, 이것이 공정하고 윤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돕는 다양한 사람들과 커뮤니티의 힘을 모아서 대기업에 대항하겠다”라고 밝혔다. 

 

치보의 베끼기 관행의 피해자는 웨이크스뿐만이 아니었다. 웨이크스의 폭로 이후 자신도 당했다며 작은 기업 창업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라이프치히 완구 스타트업 틱토이스(TicToys)는 2022년 9월 치보가 출시한 ‘링 던지기 게임’ 완구가 자사 제품을 모방했음을 폭로했다. 

 

그러나 이들은 법정 공방을 벌일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디자인을 별도 등록하지 않아도 출시와 동시에 3년간 자동으로 보호가 된다. 그러나 치보가 카피 제품을 출시한 것은 웨이크스의 가방이 출시된 지 정확히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작은 기업과 스타트업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여러 조치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별도로 디자인을 등록하려면 최대 3500유로(470만 원)의 변호사 비용과 행정수수료가 필요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스타트업과 기업에 자문하고 있는 이재윤 법률사무소는 “독일과 유럽은 지적 재산에 대한 보호 제도가 매우 잘 갖추어져 있지만, 작은 회사들은 비용 때문에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해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업을 계획할 때 이러한 비용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이 변호사는 “스타트업은 투자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몰두해 자칫 자신을 너무 낮추고 핵심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데 소홀한 경우가 많은데, 아이디어야말로 보호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비즈니스”라며 “투자자와 비밀유지계약(NDA)를 반드시 체결하라. 비밀유지계약은 기본적인 비즈니스 매너와 같다. 이를 망설이거나 회피하는 투자자라면 협업하는 것을 재고하라”고 강조했다. 

 

대기업이나 투자자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기는 일이 단순히 창업자 개인이나 한 스타트업이 감내해야 할 불운에 불과할까? ‘나의 혁신적 아이디어가 보호받는다’는 기본적인 안전망이야말로 많은 창업자를 키워내고 좋은 스타트업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토양이다.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회에 큰 손실이다. 따라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은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다.

 

이런 사례는 유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롯데 헬스케어가 한국 스타트업 알고케어의 제품을 도용했다는 논란으로 시끄럽다. 카피 논란은 결국 오리지널이 ‘베끼고 싶을 만큼 탁월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어느 세계에나 기본적인 룰이 있다. 룰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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