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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텅 빈 우주공간이 '완전한 암흑'이 아니라고?

미지의 빛을 통해 '암흑물질'이란 거대한 어둠을 추적하다

2023.01.24(Tue) 14:55:18

[비즈한국] 태양계 바깥 별과 별 사이. 드넓은 우주 속 은하와 은하 사이. 멀찍이 떨어진 천체 사이 텅 빈 우주 공간은 아무것도 없이 깜깜할 것 같다. 그런데 칠흑같이 깜깜할 것만 같은 이 텅 빈 공간이 예상보다 훨씬 밝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예상치 못한 ‘밝음’이 오래된 ‘어둠’의 미스터리, 바로 암흑물질을 추적하는 새로운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상보다 더 밝은 우주 공간에 암흑물질에 대한 놀라운 단서가 숨어 있다.

 

많은 수의 은하들이 무리 지어 거대한 은하단을 이룬다. 그런데 은하단에는 은하들만 있지 않다. 개별 은하의 중력에 붙잡히지 않은 채 홀로 은하단 공간 자체를 떠도는 떠돌이 별들이 있다. 떠돌이 별들은 은하와 은하 사이 빈 공간에서 빛난다. 그래서 실제 관측된 은하단의 이미지에서 은하의 이미지를 모두 빼더라도 빛이 전부 사라지지 않는다. 은하와 은하 사이 빈 공간에 퍼져 있는 떠돌이 별들의 별빛이 남기 때문이다. 이것을 은하단 공간 속의 빛 ‘은하단내광(Intracluster light, ICL)’이라고 부른다.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은하단 MACS J0416. 사진 속 푸른 빛이 은하단내광 ICL이다. 사진=NASA, ESA, and M. Montes(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은 은하들이 서로 부딪치고 충돌하면서 떠돌이 별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은하의 충돌 과정에서 궤도가 흐트러진 별 일부가 은하의 중력을 벗어나 빠져나간 것이라고.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먼 거리에 떨어진 과거의 은하단과 가까운 거리에 떨어진 최근의 은하단에선 ICL이 다르게 측정되어야 한다. 

 

먼 과거 은하들이 하나둘 탄생하고 은하단이 만들어진 직후에는 아직 은하들끼리 과격한 충돌이 벌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과거에는 은하의 중력을 벗어나 쫓겨난 떠돌이 별들이 거의 없었을 것이고 ICL도 적어야 한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은하단 속 은하들이 서로 스쳐지나가고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떠돌이 별도 점점 많이 빠져나오고 ICL도 밝아져야 한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천문학자들은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은하단 10개를 분석했다. 이 은하단들은 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억 년 전부터 80억 년 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천문학자들은 은하단 전체에 퍼져 있는 빛 분포에서 은하들의 빛을 모두 제거한 뒤 남아 있는 잔광, ICL의 세기를 파악했다. 만약 떠돌이 별들이 은하의 충돌과 상호작용 과정에서 흘러나왔다는 기존의 가설이 맞다면 이 머나먼 은하단의 ICL은 훨씬 가까운 은하단에 비해 약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 분석한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은하단 10개 속 ICL의 분포.


기존 연구에서 분석한 가까운 은하단부터 이번 연구에서 새로 분석한 먼 은하단까지 ICL의 비율을 비교한 그래프.

 

이 그래프는 앞서 관측된 비교적 가까운 최근의 은하단과 이번에 새로 분석한 훨씬 먼 10개의 은하단 속 ICL의 세기를 비교한 것이다. 회색으로 표현되어 있듯이 오랫동안 많은 천문학자들은 현재에서 과거로 갈수록 은하단 속 ICL의 세기가 점차 감소할 것이라 생각했다. 과거에는 아직 은하들이 덜 흐트러졌고 떠돌이 별도 덜 만들어졌을 거라 추측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래프에서 빨간색 점으로 표현된 이번 새 관측 결과를 보면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이런 먼 과거의 은하단들도 훨씬 가까운 은하단 못지않게 ICL이 밝다. 은하단 전체 밝기의 17%에 달한다. 적어도 100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은하단의 전체 밝기를 함께 채우는 떠돌이 별들의 별빛의 세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먼 과거에도 지금도 떠돌이 별은 여전히 비슷하게 존재했다. 

 

충돌하는 두 은하 Arp 248을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모습.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은하 간 상호작용, 충돌이 떠돌이 별을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라 추정했다. 사진=ESA/Hubble & NASA, Dark Energy Survey/DOE/FNAL/DECam/CTIO/NOIRLab/NSF/AURA, J.

 

이것은 기존의 가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간에 따라 떠돌이 별의 비율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떠돌이 별들이 단순히 은하들의 충돌, 상호작용으로 흘러나온 별들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반대로 은하단이 처음 탄생할 때부터 이미 떠돌이 별들이 충분히 존재하는 상태로 출발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사실은 은하단 속 떠돌이 별들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떠돌이 별은 개별 은하의 중력에 붙잡혀 있진 않지만 거대한 은하단 전체의 중력에는 붙잡혀 있다. 즉 떠돌이 별의 움직임은 은하단 전체의 중력, 그 전체 질량에 지배를 받는다. 은하단에는 단순히 밝게 빛나는 은하만 존재하지 않는다. 은하와 은하 사이의 텅 빈 공간을 채운 암흑물질을 가득 머금고 있다. 그런데 떠돌이 별들이 은하들의 충돌을 통해 최근에서야 튀어나온 별이 아니라 은하단 자체의 시작과 함께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이라면 떠돌이 별들은 더욱 은하단 속 암흑물질의 분포와 양을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빛을 내지 않아 볼 수 없는 존재인 암흑물질 대신 은하단 속 텅 빈 공간에서 빛나는 떠돌이 별들의 별빛으로 추적하는 셈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이 떠돌이 별을 보이지 않는 존재를 추적하는 ‘보이는 추적자(Visible tracer)’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미지의 빛의 미스터리는 단순히 먼 은하단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훨씬 가까운 우리 태양계 주변 우주 공간에서도 비슷한 미스터리가 벌어지고 있다. 

 

2015년 뉴호라이즌스 탐사선은 9년을 날아간 끝에 역사상 처음 태양계 끝자락 명왕성을 스쳐지나갔다. 2019년에는 다시 한번 최초로 명왕성보다도 더 멀리 떨어진 카이퍼벨트 천체 아로코스를 지나갔다. 뉴호라이즌스는 지금도 태양계 바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보이저 탐사선 선배의 뒤를 따라가는 셈이다. 태양계를 벗어나며 뉴호라이즌스는 태양빛이 거의 들지 않는 깜깜한 성간 우주에 다다랐다. 사방에는 멀리서 빛나고 있는 배경 별빛, 은하들의 빛 정도가 뉴호라이즌스의 센서를 희미하게 비출 뿐이다. 사방의 배경 우주에서 빛나는 가시광 빛을 우주 배경 가시광(Cosmic Optical Background, COB)이라고 부른다. 

 

명왕성 궤도 너머 태양계 외곽을 떠도는 뉴호라이즌스 탐사선은 태양계 외곽에서 수상한 빛의 흔적을 포착했다. 사진=NASA


그런데 최근 천문학자들은 여기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명왕성 궤도를 한참 벗어나 태양으로부터 51AU 떨어진 지점을 항해하던 뉴호라이즌스는 태양계 외곽 우주 공간의 배경 빛의 세기를 측정했다. 그런데 뉴호라이즌스에 탑재된 LORRI(Long Range Reconnaissance Imager) 장비로 측정한 배경 빛의 세기가 예상보다 약 2배 가까이 더 밝았다. 기존의 허블 딥필드와 서베이 관측을 통해 파악된 태양계 바깥 배경 은하들, 배경 별빛만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대체 왜 태양계 외곽 우주 공간은 예상보다 더 많은 빛으로 채워져 있는 걸까? 

 

뉴호라이즌스 탐사선에 탑재된 다양한 장비. 사진=NASA/New Horizons

 

아직 발견되지 않은 우리 은하 주변 왜소은하들이나 떠돌이 별들의 별빛 때문일 수 있다. 또는 현재까지 알려진 것에 비해 거의 두 배까지 더 많은 배경 은하들이 먼 우주에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더 재밌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것이 그토록 찾아해맨 암흑물질의 후보 입자 액시온(Axion)이 남긴 흔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암흑물질은 중력을 통해 그 존재를 암시하긴 하지만 빛, 전자기파와 거의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관측해 파악하는 건 어렵다. 설령 암흑물질이 실제 존재하더라도 정확히 어떤 재료로 구성된 것인지 그 정체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암흑물질의 정체로 거론되는 다양한 후보 입자들이 있다. 그 중에는 빅뱅 직후부터 탄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액시온이라는 가상의 가벼운 소립자가 있다. 그런데 액시온 암흑물질은 빛과 일체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입자는 아니다.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서 액시온이 광자, 즉 빛으로 붕괴할 수 있다. 

 

액시온이 광자로 붕괴하는 이론적인 모델을 적용했더니 놀랍게도 최근 뉴호라이즌스가 태양계 외곽에서 포착한 배경 우주의 초과된 빛을 잘 설명한다. 즉 뉴호라이즌스는 태양계 외곽을 벗어나면서 우연히 암흑물질 입자들이 아주 가끔씩 붕괴하며 방출하는 빛의 흔적을 포착했을지 모른다. 

 

이 새로운 주장이 사실이라면 드디어 인류는 암흑물질이 실제 입자로 존재하고 게다가 그 정체가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된 액시온이라는 사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발견해낸 셈이다. 이를 통해 천문학자들은 뉴호라이즌스와 같은 태양계 외곽 탐사선들을 성간 우주에 숨어 있는 암흑물질 입자를 찾는 탐사선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델을 근거로 태양계 외곽뿐 아니라, 훨씬 먼 은하단 공간 속 초과된 빛 ICL 역시 단순히 떠돌이 별의 별빛이 아니라 은하단 자체가 품고 있는 암흑물질 입자의 빛의 흔적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부터 현재까지 우주 속 암흑물질이 중력에 의해 모이고 반죽되는 과정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사진=CXC/MPE/V. Springel

 

이름 그대로 보이지 않는 우주의 유령, 암흑물질. 인류는 그 유령이 남긴 희미한 흔적들을 하나하나 좇고 있다. 암흑물질이란 거대한 ‘어둠'을 쫓기 위해서 떠돌이 별들의 별빛, 소립자가 붕괴하면서 남기는 배경 우주의 빛, ‘밝음'을 추적한다. 화가 파울 클레는 진정한 예술이란 단순히 원래 보이는 것을 옮길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이도록 만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점에서 우주의 유령 암흑물질을 좇는 현대 천문학은 과학을 넘어 인류가 즐길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스케일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2-05396-4

https://www.nasa.gov/feature/goddard/2023/hubble-finds-that-ghost-light-among-galaxies-stretches-far-back-in-time

https://hubblesite.org/contents/media/images/2023/003/01GGTCHKJ06NXTKKT1M0C8D985?news=true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573d

https://journals.aps.org/prl/abstract/10.1103/PhysRevLett.129.231301

https://www.nature.com/articles/ncomms15003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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