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사랑의 이해’의 시청률 숫자는 갑갑하다. 3.1%로 시작한 시청률은 10회에 이르기까지 2%와 3% 사이를 오가고 있다. ‘사랑의 이해’의 인물들의 감정선도, 보기에 따라 갑갑한 감이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의 감정선이 갑갑하게 진행되는 것을 십분 이해하는 나도 갑갑하고, 갑갑하지만 애틋한 이 드라마가 이토록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도 갑갑하다.
‘사랑의 이해’의 주인공 안수영(문가영)과 하상수(유연석)와 박미경(금새록), 그리고 정종현(정가람)은 KCU은행 영포점에서 근무한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니 동료겠지? 그런데 ‘사랑의 이해’는 그것에 갸웃하는 어떤 시선을 들여다본다. 그 어떤 시선에서는 정종현은 함께 간식을 나누고 가끔 회식에도 참여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경조사인 결혼식 청첩장은 그에게 줘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인물이다. 이유는 정종현이 ‘청경’이라 불리는 은행경비원이기 때문. 은행 고객들을 안내하고, 쓰레기도 치우고, 종종 지점장의 차도 세차하는 처지인 데다 은행 소속도 아니고 용역업체 소속이다.
그렇다면 은행원인 안수영, 하상수, 박미경은 동등한 동료이냐? 그것도 갸웃하게 된다. 안수영의 사원증 줄 색깔은 노랑색이다. 하상수와 박미경의 줄 색깔은 하늘색이다. 하상수와 박미경은 대졸 출신 공채 행원이고, 안수영은 고졸 출신에 계약직인 서비스직군 행원이기 때문이다. 안수영은 은행에서 가장 일을 잘한다는 평가지만, 그럼에도 예금창구 업무만 맡는다. 박미경이 바쁠 때 그를 대신해 VIP를 상대하는 PB업무를 맡아 무척 잘 해내기도 했으나 그 역시 한시적일 뿐이다. ‘다이아몬드 수저’쯤으로 표현되는 박미경은 안수영과 친해지며 취미를 공유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필요에 의해서는 자신의 값비싼 옷들을 적선하는 것마냥 수영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것은 결코 동등한 동료도, 친구도 아니다.
‘사랑의 이해’는 모든 것에 이해관계(利害關係)를 따지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돈으로 사람들의 ‘계급’을 선명하게 표출되는 은행이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돈과 권력, 명예로 구분되는 암암리의 계급 차로 절절한 사랑이 반대에 부딪치는 이야기는 대중문화에서 숱하게 다뤄왔다. 달콤한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물은 물론, 막장 드라마에서도 가장 흔한 소재일 거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사랑의 감정을 안고 있는 사람들은 멜로 드라마나 막장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로 보는 이의 공감을 산다.
이를 테면, 서로에게 호감이 있지만 그 호감을 드러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남녀 주인공 사이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컸지만 강남에서 자라고 명문대를 나온 공채 출신 하상수와 굴국밥집을 운영하는 소상공인 부모를 둔 고졸 출신 서비스직군 안수영이라는 한눈에 보이는 계급 차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 초반, “난 안수영 좋아하면 안 되냐?”고 묻는 상수에게 상수의 동료 소경필(문태유)은 “끝까지 생각할 정도야? 결혼까지 생각할 상대냐고”라고 되묻는다. 이구일 팀장(박형수)이나 마두식 대리(이시훈)처럼 대놓고 차별주의를 말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순수하고 순진하지도 않은 소경필은 그저 호감 있다고 고백하고 사귀기에는 이 직장이 지극히 보수적인 사회란 점을 꼬집는다. “얼굴 반반한 텔러 하나 꼬셔서 사귀다 버렸다, 이 꼬리표 달릴 자신까지 있는 거냐고”라는 경필의 질문에 상수가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을 보라.
나 혼자 먹고 살기도 각박한 세상에서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함에 있어 실익을 따지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KCU은행 영포점에서 하상수와 소경필의 동기인 양석현(오동민)이 대표적. 가난한 집 장녀와 4년이나 사랑으로 연애했던 그도, 막상 결혼을 결심하고 연인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화장실이 푸세식 화장실인 것을 보고 절망한다. ‘이제 내가 버는 내 돈이 내 돈이 아니겠구나. 내 돈이 줄줄 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석현에게 동기들이 “그건 사귀기 전에 했어야 될 고민이지”라고 퉁박을 주자 하는 말은 또 얼마나 한심하지만 동시에 인간적인가. “누가 알았냐? 내 사랑이 이렇게 옹졸할 줄! 나만 쓰레기야, 지금?”
청춘남녀들 간의 감정과 사랑이, 계급의 벽에 부딪쳐 진전되지 못하는 모습은 짠하고 안쓰럽다. 그러나 마냥 하상수와 안수영의 사랑에 열렬한 응원을 던지지도 못하고 있다. 현실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랑을 얼마나 우위에 둬야 할지 사람마다 가치관이 달라서이기도 하다. 안수영이 하상수의 미묘한 망설임을 알아채고 돌아선 마음도, 그 이후 자기와 같거나 혹은 더 낮은 처지의 정종현과 연애를 시작하는 마음도 이해가 가기 때문. 사랑의 설렘과 떨림도 중요하지만,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가냘픈 사랑보다 같이 비를 맞으며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도 쉬이 만날 수 없기 때문이란 걸 아는 나이라서 그런가. 물론 수영과 종현의 동상이몽식 사랑도 현실의 굴레에 부딪치며 자꾸 상처를 입지만.
10회에서 하상수와 안수영은 결국 입을 맞춘다. 그 모든 이해관계를 뒤로 할 만큼 서로의 감정과 사랑을 이해(理解)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랑이 해피엔딩, 흔히 말하는 결혼과 같은 결실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동명의 원작소설이 있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은 건, 그 어떤 결론이 나든 그 결론이 중요한 건 아닐 거란 걸 드라마를 보면서 깨달아서다. 차분하고 느릿한 진행과 갑갑해 보이는 감정선을 조금만 견디고 시청해 보길. 어느덧 ‘과몰입’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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