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SK에코플랜트 자회사인 환경시설관리주식회사(EMC)가 노동자 사망 후 급여와 위로금 지급을 빌미로 유족과 노동조합에 ‘언론에 사건을 일체 언급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비즈한국 취재 결과 확인됐다. 마포 소각장에서 13년 간 근무한 노동자 A 씨는 2019년 소뇌위축증 판정을 받고 병가신청을 했지만, 사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출근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3월 A 씨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후 EMC는 유족들에 합의금으로 2300만 원의 급여와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합의서 작성을 요구했다. 이 합의서에는 A 씨에 관해 언론 등에 언급하는 경우 노동조합 대표가 2300만 원을 배상하고, 모든 손해를 감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마포 소각장서 13년 근무…소뇌위축증 판정에도 출근 종용
A 씨가 소뇌위축증 판정을 받은 건 2019년이다. 소뇌위축증은 파킨슨병형으로 서서히 전신 근육이 서서히 사라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A 씨는 강남 소각장에서 4년, 이후 마포 소각장에서 13년간 근무했는데, 2017년 즈음부터 이석증 증상으로 괴로워했고, 이후 병가를 내 치료를 받았다. 유족들에 따르면 A 씨는 평소 지병이나 가족력이 없었다.
서울시는 통상 3년마다 소각장 민간위탁 수탁기관을 재선정하는데, 2018년 6월부터 마포 소각장은 삼중환경기술주식회사와 환경시설관리주식회사(EMC)가 공동 수탁기관으로 선정됐다. 고용승계 과정에서 A 씨는 EMC 소속이 됐다.
문제는 이 이후다. 몸이 굳는 등 증상이 악화되자 A 씨는 업무 지속이 어렵다는 판단으로 계속 병가를 신청했지만, 사측에서 출근을 종용한 것. 2019년에는 소뇌위축증 판정까지 받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동료들에 따르면 A 씨는 제대로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는 상황에서 출근을 이어갔다.
마포 소각장에서 함께 일한 노동자 B 씨는 “굉장히 밝은 사람이었는데 점점 우울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스스로 걷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업무를 하기 힘든 상황이 되니 동료들에게도 굉장히 미안해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혼자 힘으로 걷고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 사측에서 문자나 전화로 출근할 것을 요구했다. 그 이후 굉장히 힘들어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결국 A 씨는 2020년 3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노동조합 관계자는 “사측은 병가를 냈더라도 출근을 아예 하지 않으면 월급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노사 합의로 A 씨에게 월 120만 원, 이후에는 19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사망 후에야 알게 됐다. A 씨가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병을 진단 받은 후 건강이 악화됐지만, 이후에도 1년여 동안 출근을 계속했다”고 설명했다.
#노조에 ‘언론에 알리면 벌금 2300만 원’ 요구
비즈한국 취재에 따르면 EMC는 A 씨 사망 이후인 2021년 초 노조에 합의서를 제시했다. 이 합의서에 따르면 A 씨 사망과 관련해 언론 등에 언급하는 경우 노조 대표는 사측에 벌금 23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사측이 제시한 노동조합 합의서는 “고 ○○○과 관련해 언론, 미디어, 게시물, 배포자료 등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회사 및 회사와 관계된 자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을 합의하고 향후 위 사항에 대한 매체에서의 언급을 방지한다”고 명시했다.
위약금 등 불이익 사항도 명시했다. 합의서는 “위 합의 사항을 위반하는 경우 노동조합 및 노동조합의 대표자인 ○○○은 위약에 대한 벌로 금 2300만 원을 상속인들과 연대해 회사에 각 지급할 것과 합의사항 위반으로 회사가 입게 되는 모든 손해에 대한 어떠한 민·형사상 불이익도 감수할 것을 합의한다”고 명시했다.
사측이 유족들에게 제시한 합의서에는 급여 2062만 8500원과 위로금 237만 1500원을 유족들에게 지급하는 대신 “본 합의서가 사용자의 과실 등 귀책 사유를 인정하는 취지가 아님을 인정한다”, “합의서 작성 이후 사용자에 대하여 본 건과 관련된 일체의 사항에 대하여 민사상손해배상청구 및 형사상, 행정상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으며,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회사 및 회사와 관계된 자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을 합의한다”는 내용 등이 명시됐다.
유가족에 2300만 원의 합의금을 지급하는 대신 언론 등에 알리지 말 것을 조건으로 삼은 셈이다. 노조는 A 씨 사망에 대해 사측에 항의하자 이 같은 합의서를 제시했다며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노동조합 관계자는 “언론에 알렸을 때 그 배상을 노조 대표에게 하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당연히 지급해야 할 급여를 주면서 어디에도 이 사건을 말하지 말라고 협박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들은 비즈한국에 “고인이 사망한 지 2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어제 일 같다. 지금도 보내주지 못하고 붙잡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괴로웠을지 상상도 안 간다. 사망 후 단 한 번도 사측에서 직접 연락한 적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일이 해결되길 원한다”고 전했다.
#노조 “산재 신청·단협위반 신고하겠다”
전국환경시설노동조합은 A 씨의 소뇌위축증 발병 등을 산재로 보고, 올해 3월 이내에 산재 신청과 단협위반 신고 등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김태헌 전국환경시설노동조합 위원장은 “사측에서 언론에 알리면 2300만 원을 내라는 합의서를 제시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단 1원도 지급한 적 없다. 2022년 11월 13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도 위로금 지급 등에 대해 합의하라고 조정안을 냈지만, 사측은 강제조항이 아니니 협의할 의무가 없다고 한다”고 밝혔다.
전국환경시설노동조합 마포지부 관계자는 “2021년 안전보건공단에서 소각장 노동자들을 조사했는데, 다이옥신이 검출됐다. 평생 소각장에서 일한 분이 갑자기 그런 병에 걸렸으면 당연히 사측에서 최소한의 조치라도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하소연했다.
비즈한국은 이 사안에 대해 EMC에 문의했으나, 일주일 넘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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