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 ‘다트(DART)’는 상장법인들이 제출한 공시서류를 즉시 조회할 수 있는 종합적 기업 공시 시스템이다. 투자자 등 이용자는 이를 통해 기업의 재무정보와 주요 경영상황, 지배구조, 투자위험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다트 홈페이지에서는 ‘많이 본 문서’를 통해 최근 3영업일 기준 가장 많이 본 공시를 보여준다. 시장이 현재 어떤 기업의 어느 정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인 셈이다. 비즈한국은 ‘지금 이 공시’를 통해 독자와 함께 공시를 읽어나가며 현재 시장이 주목하는 기업의 이슈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내고자 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6일 파키스탄 자회사 ‘롯데케미칼파키스탄(LCPL)’ 지분 75.01% 전량을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타법인 주식 및 출자증권 처분결정’ 공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사업 포트폴리오 최적화를 목적으로 이달 중 LCPL 지분을 처분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다. 예상 처분금액은 약 1924억 원이다. 매각은 파키스탄 당국의 기업결합신고 심사 등을 거쳐 올해 안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 공시만 가지고는 매각 대상인 LCPL이 어떤 회사인지, 롯데케미칼이 언급한 ‘사업 포트폴리오 최적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려면 17일 공시한 ‘[기재정정]투자설명서’를 살펴야 한다. 투자설명서에는 롯데케미칼이 본격적인 해외 생산설비 확보를 위해 2009년 9월 LCPL을 147억 원에 인수했고, LCPL에서 PTA(고순도 테레프탈산)를 연간 50만 톤 생산했다고 명시됐다. 결과적으로 이번 LCPL 매각으로 롯데케미칼이 PTA 생산을 축소하거나 중단한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은 LCPL 매각을 끝으로 PTA를 생산하지 않을 계획이다. 대신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기존 석유화학 제품인 PE, PPE, PET 등의 고부가화를 추진하고 스페셜티 사업 확대 및 친환경 소재 사업군에 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2030년 매출 50조 원 계획에서 고부가 스페셜티와 친환경 소재사업으로 전체 매출의 60%에 해당하는 약 30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롯데케미칼 2030 비전·성장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LCPL 매각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라는 대형 M&A를 앞두고 롯데건설 유동성 악화 문제로 재무적 부담을 떠안고 있던 롯데케미칼의 묘수로 보인다. 사업재편과 재무안정성 확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셈이다. 물론 롯데건설이 대여금을 갚지 못한 상황이었더라면 높은 매각 차익에도 불구, ‘울며 겨자 먹기’로 평가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지난 6일 롯데건설이 5000억 원을 상환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롯데건설은 메리츠증권의 도움으로 자금 조달에 숨통이 트였다. 양 사가 1조 5000억 원 규모의 투자 협약을 맺으면서 롯데건설은 계열사에서 대여한 자금을 모두 상환했다.
롯데케미칼은 일단 LCPL 매각 대금을 지난해 2조 7000억 원에 인수한 일진머티리얼즈(지분 53.5%) 잔금 납부에 사용할 전망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조 2155억 원의 유상증자도 단행한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11월 18일 ‘주요사항보고서(유상증자 결정)’ 공시를 통해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형태로 1조 1050억 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공시서류 정정에서는 총 1조 2155억 원을 조달해 6105억 원은 운영자금으로, 6050억 원은 타 법인 증권 취득자금으로 사용하겠다고 명시했다.
롯데케미칼의 유상증자에 시장의 관심이 쏠렸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7일 ‘유상증자신주발행가액(안내공시)’에서 신주 발행가액을 주당 14만 3000원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16일 종가 18만 2500원 대비 21%, 17일 종가 18만 7000원 대비 23.5% 낮은 가격이다. 19일과 20일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청약이 진행되고, 실권주(인수되지 않거나 납입기일이 지나 권리를 상실한 잔여주식) 발생 시 일반 공모 청약은 26일과 27일 진행된다.
롯데건설의 대여금 조기상환과 롯데케미칼의 자회사 매각 등이 순조롭게 이어지면서 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종가 기준 17만 3500원이던 롯데케미칼 주가는 지난 17일 18만 7000원까지 치솟았다. 유상증자까지 순조롭게 마무리될 경우 롯데케미칼은 그간 시장에 번졌던 유동성 우려를 불식하고 그룹 핵심 계열사로 자리를 굳힐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2021년 롯데쇼핑 매출액을 앞지른 롯데케미칼은 지난해인 2022년 매출액 역시 롯데쇼핑을 뛰어넘을 것으로 점쳐진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상무가 롯데케미칼에 몸담고 있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신 상무는 2020년 일본 롯데홀딩스 부장으로 합류해 2022년 5월 롯데케미칼 일본 도쿄지사 상무보에 취임하며 후계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어 2022년 12월 단행된 임원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해 현재 해외 신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 상무는 지난 5~8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 현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향후 본격적으로 경영 보폭을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여다정 기자
yeop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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