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따라 유효한 수단이 다르므로 어느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디스커버리 제도(미국·영국 등에서 재판 개시 전 당사자 양측이 가진 증거와 서류를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하는 제도) 등이 없어 소송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방법이 한정적이다.
사적 구제로서 민사소송은 공정거래법 위반을 예방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법 위반으로 일어난 손해를 사후에 회복한다는 점에서 법을 집행할 때 보충적이고 예외적인 수단이 된다. 사적 집행을 활성화하고자 법정 손해배상 제도, 3배 손해배상 제도, 금지 청구권 등을 도입하지만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엔 갈 길이 멀다. 따라서 공정거래법을 집행할 땐 공적 집행을 위주로 하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이를 전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공정위는 신고나 직권인지 등으로 사건을 발굴하고, 이를 조사해 법 위반자에게 시정명령, 행정제재, 검찰 고발 등 제재를 가한다.
전국에서 일어나는 공정거래 관련 사건을 공정위가 맡자 위원회의 업무 부담이 가중됐고, 사건이 적체돼 위원회와 민원인 양측 모두 불만인 상태에 이르렀다. 최근 들어 공정위는 방문판매법·대리점법·가맹사업법 등 일부 규제 업무를 지자체에 위임하거나, 하도급법·불공정거래행위 등의 영역은 공정거래조정원의 조정절차를 거치도록 적극 권유하고 있다. 여전히 공정위 규제가 공정거래법 집행의 핵심임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논의하고 있지만, 실현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따라서 공정거래법을 어떻게 실현할지 예측한다는 건 공정위가 어떤 영역을 규제 대상으로 선정해 법을 집행할지 파악하는 것과 같다. 공정위의 신년사·업무보고·간담회 등을 참고하면 이를 예측할 수 있다.
2022년 12월 말 발표된 ‘새 정부 공정거래 정책 방향’ 자료를 보면 정책의 기본 방향은 ‘법의 테두리를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설정하며,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반칙행위는 엄중히 제재해, 납득하고 신뢰할 수 있는 법 집행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있다’고 한다. 핵심 추진 과제로는 온라인 플랫폼 분야 독과점 문제 대응, 부당내부거래 등 엄정 대응,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 기만행위 차단, 납품단가 연동 및 기술 탈취 근절, 가맹 필수품목 지침, 용역 하도급 거래 관행 개선 등이 있다.
2023년 1월 공정위 위원장 신년사에는 ‘납품단가 연동제, 기술 탈취행위, 과도한 필수품목 지정, 단가 인상, SNS 뒷광고, 이용 후기 조작 등 기만행위, 중고 거래·리셀·플랫폼을 통한 개인 간 거래(C2C)에서 시장 자율과 법질서 조화’ 등이 업무 추진 사항으로 포함됐다.
정리하면 공정위는 △하도급법상 납품단가 연동제, 기술 탈취행위 근절 △가맹사업법상 과도한 필수품목 지정, 단가 인상 제재 △표시광고법상 SNS 뒷광고, 이용 후기 조작 제재 △공정거래법상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등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중 납품단가 연동제란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또는 위탁기업과 수탁기업의 계약 기간 동안 원자재 가격이 변할 경우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하게 하는 조정 제도를 말한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을 때 협상력이 약한 수급사업자는 원사업자로부터 인상분을 보전받지 못해 경영 여건이 악화하는 반면, 원사업자는 발주자로부터 보전받는 관행이 부당하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논의된 제도다. 공정위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하도급법상 기술 유용(탈취)이란 ① 기술 자료를 요구하면서 서면을 교부하지 않거나 ② 정당한 이유 없이 기술 자료를 요구하거나 ③ 기술 자료를 당초 취득한 목적 또는 합의된 사용 범위를 벗어나 자기 또는 제삼자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법에서 정한 서면 교부 없이 기술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법하다. 절차적 요건을 준수했더라도 특허출원, 공동 기술개발 약정, 하도급대금 인상 협의, 하자보수 등 정당한 사유 없이 기술 자료를 요구하는 건 실체적 적법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어서 위법하다. 지난 몇 년간 공정위는 기술 탈취 행위를 적극적으로 조사했지만 제재 수위가 낮고 제재 유형이 절차 위반에 국한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앞으로는 현장을 집중 점검하고 제재 수위도 상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또한 필수품목 인정요건에 관한 지침을 구체화한다고 밝혔다. 가맹 사업상 ‘필수품목’이란 상품의 통일성 유지 등을 위해 가맹점주에게 본부나 본부가 지정한 특정 업체에서 공급하는 제품만 쓰도록 제한하는 품목을 말한다. 가맹본부가 사업과 무관한 품목까지 필수품목으로 지정하거나 필수품목 단가를 시가보다 높여 점주 사이에선 가맹본부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곤 한다. 공정위는 이런 분쟁을 방지하고자 판례와 해외사례 등을 반영한 필수품목 인정요건에 관한 지침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이상과 같이 공정위의 업무 추진 계획을 살펴봤다. 올해 계획에는 ‘갑을관계를 적극 시정하겠다’, ‘온라인 플랫폼법을 제정하겠다’ 등 확실한 방향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하지만 계획이란 시장 상황이나 경제 여건 등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는 것이니, 지금의 계획을 앞으로 어떻게 실현할지 지켜봐야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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