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긴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이 끝나고 상점들은 겨울 세일기간에 돌입했다. 예년에 비해 다소 따뜻한 겨울 날씨 덕분에 거리에도 생기가 돌았다. 베를린 스타트업에도 활기가 가득하다. 스타트업이 모여 있는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새해맞이 다양한 밋업(Meetup)이 열렸다.
베를린 스타트업신 밋업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 알레가 첫 포문을 열었다. 실리콘 알레(Silicon Allee)는 2011년 설립된 커뮤니티로 창업자, 투자자, 멘토 등 베를린에서 스타트업과 관련한 사람들이 매월 모이는 월간 밋업에서 탄생했다. 이후 실리콘 알레 캠퍼스가 생기면서 창업자들에게 사무실과 거주 공간을 빌려주고, 베를린 창업자 펀드(Berlin Founder Fund, BFF)를 통해 금전적으로도 지원하고 있다.
매월 첫째 주 화요일 오전 9시에 실리콘 알레의 월간 밋업이 열린다. 장소는 항상 같다. 베를린 중심가의 로젠탈러플라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카페 세인트 오버홀츠다.
#베를린 최초의 코워킹 스페이스 ‘세인트 오버홀츠’
세인트 오버홀츠(St. Oberholz) 카페는 겉에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베를린 스타트업의 탄생지’로 불리는 특별한 공간이다. 2005년 베를린 중심 미테 지구에 ‘커피와 코워킹(Coffe & Coworking)’을 모토로 문을 열었다.
한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를 제외하면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일하거나 공부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카페는 말 그대로 커피 한 잔 마시고 케이크 한 조각 먹으며 잠시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다. 그래서 보통 저녁 6시면 문을 닫는다. 지금이야 유럽 카페도 손님에게 개방형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지만, 세인트 오버홀츠가 문을 열었을 당시엔 손님들에게 개방형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베를린을 오가는 전 세계의 디지털 노마드들이 이 카페로 모였다. 카페 오버홀츠는 공유 사무실, 사무실, 별도의 이벤트룸을 제공해, 일하는 사람과 창업자를 위한 공간인 코워킹 스페이스 오버홀츠로 통했다. 사운드 클라우드, 잘란도 등 이제는 세계적인 기업이 된 스타트업의 창업자들도 세인트 오버홀츠를 거쳐 갔다.
2022년 기준으로 세인트 오버홀츠는 베를린에 11개의 지점이 있다. 베를린 근교 도시인 포츠담과 프랑크푸르트 오더에도 1개씩 지점을 두어 총 13개의 공간을 운영한다. 지난 1월에는 베를린 북쪽으로 약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라이첸이라는 마을에서 오래된 호텔을 인수해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워케이션(workation) 공간을 오픈했다. 그야말로 ‘일의 미래’를 고민하며 스타트업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실리콘 알레 커뮤니티도 세인트 오버홀츠에서 탄생했다. 아직은 모임뿐이던 시절, 실리콘 알레에게 둥지가 되어준 곳이 세인트 오버홀츠 카페다. 2011년에 시작된 월간 밋업이 12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곳에서 지속되는 이유다.
#실리콘 알레 월간 밋업에서 만난 사람들
코로나 이후 마스크 없이 실내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생각에 조금 들뜨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고 있는 독감 바이러스가 다소 걱정스럽기도 했다. 2023년 들어 첫 밋업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지, 또 어떤 사람이 올지도 궁금했다. 화면이 아닌 밖에서 이런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기분 좋은 긴장감이 생겼다.
9시 정각에 카페에 도착했는데, 대여섯 명의 사람이 와 있었다. 입구에서 받은 스티커에 매직으로 내 이름을 쓰고 입장했다. 항상 이럴 때면 고민에 빠진다. 보통 독일 사람들이 있는 모임에서는 나를 ‘오인제오’(Eunseo의 독일식 발음)로 소개한다.
그런데 스타트업 관련 모임에서는 영어가 주로 쓰이기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독일식으로 소개하기도, 그렇다고 한국어로 ‘은서’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알파벳과 매치가 안 되어 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영어식 별명을 쓰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진짜 한국 이름’을 묻고 그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서양식 이름을 순순히 버렸다.
가끔은 내 이름을 곧바로 따라 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난처해하며 사과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Enso’라고 발음기호 비슷한 것을 써놓기도 한다.
어쨌든 한국 이름을 불러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이 모두 ‘BTS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정국, 지민뿐만 아니라 별도의 활동명을 쓰는 뷔도 본명 ‘태형’이라고 부르는 외국인들이 많이 늘었다. 한국 이름이 서양 이름과 달리 발음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무언가 ‘힙’ 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BTS가 인기가 높아질수록, 내 이름을 불러주려는 사람을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결국 밋업에서도 내 이름 그대로 알파벳을 적기로 결심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나섰다. 사람이 너무 많은 가운데 누구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걸어야 할지,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할지 누군가 다가오기를 기다려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다행히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치고 자리에 합류하며 첫인사를 나눈 노엘(Noel)과 얘기를 시작했다.
노엘은 스타트업 창업자를 지원하고 투자자 등과 연결해주는 에이전시이자 인큐베이터인 ‘스타트업 컬러스(Startup Colors)’에서 이노베이션 매니저(Innovation Manager)로 일한다. 공교롭게도 우리 회사와 같은 건물에 사무실이 있는데, 실리콘 알레의 밋업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노엘은 베를린과 아시아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아시아베를린 서밋(AsiaBerlin)에서 프로젝트·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어딘가 낯이 익다 했더니 아시아베를린에서 만난 여러 아시아 관련 인사들을 둘 다 알고 있었다. 링크드인을 연결하니 바로 수십 명의 공동 인맥이 생겨서 서로 매우 반가워했다.
노엘이 일하는 스타트업 컬러스는 2018년 설립되었다. 인텔 등의 대기업과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주로 디지털 헬스 관련 스타트업을 양성한다. 그 밖에 다양한 해커톤을 개최해서 창업 생태계의 창의성을 발굴해 새로운 솔루션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실리콘 알레의 운영이사 플로린(Florin)이 우리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플로린은 이전에도 다른 곳에서 만났다. 작년에는 실리콘 알레가 한국에서 온 6개 스타트업을 액셀러레이팅 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그 프로그램을 플로린이 이끌었기 때문에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오랜만에 밋업에서 다시 만나 올해의 계획을 서로 물으며 시너지를 낼 방법이 없을지 함께 고민했다.
자연스럽게 노엘과 플로린을 소개해주면서 졸지에 커넥터 역할도 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전주에 미국에서 왔다는 개발자 댄(Dan), 브라질 출신의 이벤트 매니저 비토리아(Vitoria)와도 짧게 인사를 나눴다.
노엘은 헝가리인, 플로린은 루마니아인, 나는 한국인이다. 실리콘 알레의 월간 밋업은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스타트업 사람들이 아주 편안하게 특별한 주제 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참석 전 다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세계 어디서나 처음 사람 사귀는 모습은 비슷했다. 대부분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 대화를 오랫동안 이어갔다. 개발자들은 개발자들대로, 창업자들은 창업자들대로, 관심사뿐만 아니라 베를린 스타트업계의 꿀팁을 주고받은 뒤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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