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보통 우리 은하를 평범한 나선은하라고 이야기한다. 납작한 원반, 아름답게 휘감긴 나선팔. 얼핏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나선은하다. 하지만 우리 은하는 어떤 시뮬레이션으로도 어지간해선 재현할 수 없는 아주 독특한 모습을 갖고 있다.
1970년대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주변을 떠도는 작은 왜소은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남반구 하늘에서 보인 두 개의 크고 작은 마젤란은하를 비롯해 11개의 작은 왜소은하들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우리 은하 주변을 떠돈다고 해서 위성은하라고도 부른다. 놀라운 건 위성은하들이 모두 같은 평면에 놓인다는 점이다. 위성은하들은 아무렇게나 돌지 않는다.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들이 다 같은 평면에서 도는 것처럼, 위성은하들도 모두 같은 평면에 놓여 있다. 이것을 ‘위성은하 평면(Plane of satellite galaxies)’이라고 부른다.
위성은하 평면의 너비와 두께의 비율은 고작 0.18밖에 안 된다. 정말 얇은 평면 안에 위성은하들이 놓여 있다는 뜻이다. 특히 위성은하들은 우리 은하 원반에 거의 수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래서 이러한 분포를 VPOS(Vast polar structure)라고 부른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보통 우주의 진화를 구현한 시뮬레이션을 보면 우리 은하만큼 완벽하게 주변 위성은하들이 모두 한 평면에만 놓인 경우를 재현하기 어렵다.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주변에 위성은하를 11개 넘게 거느린 202개의 은하 중에서 우리 은하만큼 납작한 원반 안에만 있는 위성은하는 고작 2개였다. 확률로 따지면 겨우 1%다. 즉 우리 은하는 어지간해선 기존의 시뮬레이션으로는 재현하기 어려운 아주 독특한 은하에 해당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 은하가 왜 이렇게 독특한 위성은하 원반을 주변에 두르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이것을 ‘위성은하 평면 문제(Problem of satellite plane)’라고 부른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이를 암흑물질에 대한 기존 이론이 잘못되었을지 모른다는 근거로 제시한다. 그런데 최근 네이처에 이 골치 아픈 문제를 생각지 못한 허무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재밌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과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기존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할 수 없는 우리 은하 주변 독특한 구조의 비밀을 소개한다.
전통적으로 위성은하의 평면 문제를 설명하는 가설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필라멘트 부착(Filamentary accretion) 가설로, 우주 거대 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답을 찾는 가설이다. 거대 구조 자체가 만들어질 때 물질들이 기다란 필라멘트를 따라 유입된다. 우주 사방에 퍼져있던 암흑 물질과 가스 물질은 서서히 중력에 이끌려 모이기 시작한다. 중력이 강한 곳으로 물질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그 중심에서 은하가 반죽된다. 그리고 사방에서 흘러오는 물질의 흐름은 길게 이어진다. 그래서 우주 거대 구조를 보면 긴 필라멘트가 복잡하게 얽힌 그물 모양이다. 은하들은 그 그물이 모인 매듭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만들어진다.
이처럼 애초에 은하가 반죽될 때부터 은하를 중심으로 사방의 긴 필라멘트를 따라 물질이 유입된다. 하나의 긴 필라멘트 통로를 따라 계속 같은 방향으로 물질이 유입된다. 이렇게 유입된 물질이 은하 주변을 맴돌면서 조금씩 작은 왜소은하가 만들어졌다면 모두 비슷한 방향으로 배열될 수 있다. 그리고 그간 많은 시뮬레이션은 이러한 과정을 재현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 두께가 굉장히 두껍다는 것이다. 필라멘트를 따라 한 방향으로 물질이 유입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필라멘트 자체가 아주 두꺼운 스케일의 구조다. 그래서 이렇게 물질이 쭉 유입되더라도 꽤 두꺼운 범위에 걸쳐서 펑퍼짐하게 분포한다. 우리 은하 주변 위성은하들만큼 납작한 원반을 재현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실제 대부분의 경우에는 필라멘트가 꼭 하나가 아니라 두 개 이상이 함께 연결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은하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필라멘트를 따라 사방에서 물질이 유입된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뒤섞이면서 은하 주변 위성은하들은 더 펑퍼짐하고 둥근 분포를 갖게 된다. 시뮬레이션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우리 은하만큼 납작한 위성은하 원반을 갖는 경우는 보통 0.1%밖에 안 된다. 기준을 아무리 너그럽게 잡아도 1% 정도다. 이건 굉장히 어색하다.
두 번째 은하군 유입(Group infall) 가설은 작은 왜소은하들이 여러 개 모인 은하군이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말한다. 먼 과거에 작은 은하들이 모였던 무리 자체가 통째로 우리 은하 중력에 붙잡히면서 은하 무리는 파괴된다. 각각의 작은 은하들은 원래의 궤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우리 은하 곁을 맴돌게 된다. 이 가설은 우리 은하 주변 작은 은하들이 비슷한 궤도를 공유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궁수자리 왜소은하는 그 궤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 별의 꼬리를 흘리고 있다. 원래는 더 큰 은하였지만 우리 은하 중력에 붙잡혀 여러 번 궤도를 돌면서 으스러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뒤로 헨젤과 그레텔처럼 자신이 품고 있던 별들을 길게 흘리는 중이다.
남반구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대마젤란, 소마젤란 은하도 원래는 더 커다란 하나의 은하로 합쳐 있었다고 추정한다. 오래전 더 컸던 은하 하나가 우리 은하에 다가왔다가 우리 은하 중력에 의해 으스러졌다. 살아남은 가장 큰 조각이 지금의 대마젤란, 소마젤란 은하가 되었다. 그리고 더 작은 조각들은 이들과 함께 비슷한 궤도를 도는 또 다른 왜소은하가 되었다고 추정한다.
이 가설은 최근까지 주목 받았다. 하지만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왜소은하가 모인 은하 무리는 훨씬 펑퍼짐하다. 우리 은하 주변을 도는 위성은하 원반 두께에 비해 거의 10배 더 두껍다. 왜소은하 무리가 한꺼번에 유입되더라도 지금의 위성은하 원반처럼 얇은 구조를 만드는 건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
오래전 존재한 더 큰 원시 왜소은하가 우리 은하에 붙잡혀 지금의 마젤란은하를 만드는 과정을 많은 시뮬레이션이 최근 재현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결과는 비슷한 원반 위에서 궤도를 도는 위성은하가 많아야 4~5개 정도였다. 현재 우리 은하 주변 얇은 원반 위에 놓인 위성은하는 11개가 넘는다. 따라서 왜소은하 무리가 한꺼번에 유입되었더라도 지금의 우리 은하처럼 이렇게나 많은 위성은하들이 하나의 평면에 예쁘게 놓여 있는 모습은 설명하기 어렵다.
세 번째 조석 왜소은하(Tidal dwarf galaxy, TDG) 가설은 오래전 우리 은하 주변으로 다른 은하가 지나가면서 파괴된 조각들이 살아남아 지금의 위성은하가 되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우리 은하의 중력으로 인한 조석력으로 그 곁을 지나가던 다른 은하가 파괴된다. 파괴된 조각 일부는 살아남아 우리 은하 곁을 도는 왜소은하가 될 수 있다. 이를 조석 왜소은하(TDG, Tidal Dwarf Galaxy)라고 부른다. 현재 관측되는 우리 은하 주변 왜소은하들의 궤도와 위치를 가장 잘 설명해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가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가설 역시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이 가설이 맞다면 현재 우리 은하 곁을 떠도는 왜소은하들은 원래 다른 큰 은하의 일부였다. 파괴되기 전 원래 살고 있던 은하에서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별이 탄생하고 터지기를 반복하며 많은 금속 원소가 보충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흔적은 파괴된 이후 살아남은 왜소은하 조각에도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은하 곁을 도는 대부분의 왜소은하들은 금속 함량이 그리 높지 않다.
다른 문제도 있다. 보통 은하 두 개가 서로 스쳐지나가면서 으스러지고 파괴되면 중력에만 끌려가는 암흑물질은 더 큰 은하에 빠르게 끌려간다. 반면 가스 물질은 계속 그 주변을 떠돌게 된다. 이렇게 떠도는 물질이 그대로 살아남아 왜소은하 파편이 된다. 그래서 은하의 충돌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파편 은하는 평범한 은하에 비해 암흑물질 비중이 훨씬 적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은하 주변 왜소은하들은 정반대다. 전체 질량의 거의 80~90%가 암흑물질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이들이 정말 오래전 사라진 다른 큰 은하의 파편인지 의심이 든다.
이처럼 최근까지 우리 은하 원반에 수직으로 절묘하게 배열된 왜소은하들의 분포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가설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완전하게 설명은 하지 못했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위성은하 평면 문제 자체가 기존의 암흑물질 이론 자체를 부정하는 새로운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성은하 평면 문제는 현대 우주론의 가장 중요한 난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런데 어쩌면 이 난제가 전혀 생각지 않은 허무한 방향으로 해결될지도 모른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새롭게 완성된 가이아 탐사선의 데이터를 활용한 재밌는 결과를 발표했다. 가이아 탐사선은 우리 은하 별들과 주변 천체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측한다. 그 덕분에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주변 원반을 이루는 위성은하들이 어떤 방향과 속도로 돌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각 위성은하가 수백만 년 전부터 수백만 년 후까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궤적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함께 위성은하들의 배열이 시간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추적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재밌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성은하들이 같은 평면 위에 납작하게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저 우연이었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진 궤도를 돌던 위성은하들이 하필이면 우연히 딱 지금 시기에 일렬로 배열되었을 뿐이다. 위성은하들이 움직이면서 이들이 분포하는 평면도 계속 기울어진다. 특히 우리 은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자자리 I 은하와 사자자리 II 은하가 우리 은하 주변 위성은하 평면의 두께를 결정한다. 그런데 마침 이 두 위성은하가 딱 절묘한 위치를 지나는 탓에 위성은하 평면이 더 얇고 특별하게 보이는 착각을 일으킨 셈이다.
단순히 지금 각 위성은하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현재 위치만 고려했을 때는 우리 은하처럼 주변에 위성은하들이 일렬로 배열된 사례는 아주 드물었다. 시뮬레이션으로 재현된 은하들 중 겨우 1%도 안 된다. 우리 은하가 아주 특별해 보이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번 연구처럼 오랜 시간 움직이는 전체 궤적의 범위를 모두 고려하면 같은 사례가 5%까지 늘어난다. 이 정도면 그다지 드물다고 보기 어렵다. 훨씬 평범한 은하가 되어버린다.
결국 시뮬레이션과 관측이 어긋나면서 기존 암흑물질 이론까지 의심하게 만든 이 오래된 수수께끼, 우리 은하 주변의 위성은하 평면 문제는 우연히 지금 위성은하들이 일렬로 놓여 있어서 벌어진 착각으로 인한 해프닝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허무하게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오히려 암흑물질 이론을 위태롭게 하던 반박 증거 하나가 사라졌다.
네이처에 발표된 이번 흥미로운 논문을 보며 우리가 다시 한번 유념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는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우주를 관측한 지난 백여 년의 시간은 우주의 나이 138억 년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껏 느리게 변화하는 우주의 딱 한순간만 바라보는 셈이다. 긴 세월 천천히 이동하는 천체의 움직임을 모두 고려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 보이는 모습으로 우주가 한결같이 쭉 존재했을 거라고 착각하게 된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위성은하들이 우연히 일렬로 놓인 걸 보고 위성은하들이 왜 평면에만 나란히 놓여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논문의 결과를 통해 위성은하 평면의 오래된 비밀은 허무하게 끝나는 걸까? 가이아 탐사선의 새로운 데이터로 완성한 이번 결과는 흥미롭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미스터리에 종지부를 찍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최근 더 깊은 관측을 통해 재밌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 은하뿐 아니라 다른 은하들 주변에도 위성은하들이 한 평면에 놓인 것처럼 분포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안드로메다은하, 센타우르스 A 은하도 그렇다. 이곳도 제멋대로 돌던 위성은하들이 하필이면 딱 지금 한 평면에 있는 것처럼 우연히 배열된 것일까? 다른 은하에서도 이런 배열이 있는 걸 보면 이들 모두에서 비슷한 우연이 벌어진다고 봐도 될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만약 비슷한 우연이 마침 딱 비슷한 시기에 벌어지고 있는 거라면 참 재밌지 않은가. 만약 인류가 우리 은하에서 조금 더 일찍 또는 조금 더 늦게 탄생했다면 밤하늘에 보이는 위성은하들의 배열은 지금과 전혀 달랐을 것이다. 위성은하 평면 미스터리 같은 것도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우주 역사에서 어느 시점에 탄생했는지에 따라 천문학의 방향 자체가 달라지는 셈이다. 우리는 우주를 연구하기에 최적의 시기를 살고 있을까, 아니면 중요한 순간을 놓쳤거나 너무 일찍 탄생한 걸까.
참고
https://www.aanda.org/articles/aa/full_html/2018/11/aa33343-18/aa33343-18.html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453/1/1047/1749113?login=false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423/2/1109/960824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04/1/1379/6217428?login=false
https://www.worldscientific.com/doi/abs/10.1142/S0217732318300045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2-01856-z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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