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팬데믹 이전의 규모로 돌아온 세계가전전시회(CES) 2023이 막을 내렸다. 한국에서는 600여 업체가 참여해 제품을 선보이는 동시에 미래 대응에 나섰다. 10만 관람객이 팬데믹 종식과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앞두고 혁신의 방향을 찾아 나섰지만, 눈에 띄는 신기술은 없었다는 평이다.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상황 속에 기업들이 도전보단 안정에 무게를 뒀다는 것. CES 2023 현장을 찾은 국내 대기업 임원진의 행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제시한 비전을 살펴봤다.
미국소비자기술협회가 주최하는 CES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월 45일부터 8일까지 열렸다. CES는 그해 IT·전자 업계의 동향을 볼 수 있는 세계 3대 ICT 박람회 중 하나다. 이번 CES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해 관심을 모았다.
CES 2023의 핵심 주제는 ‘모두를 위한 인간 안보(Human Security for All)’를 중심으로 △자동차·모빌리티 △디지털 헬스 △지속 가능성 △웹 3.0·메타버스 등이 있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기업은 3200개가 넘으며 한국 기업은 600개 가까이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삼성, LG, SK, HD현대, 롯데 등 대기업부터 참신한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까지 다양하게 모였다. 기업의 주요 경영진과 CEO는 신기술을 체험하며 새로운 먹거리를 찾거나 연설을 통해 기업 비전을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CES 개막 하루 전인 4일 ‘맞춤형 경험으로 열어가는 초연결 시대’를 주제로 프레스 콘퍼런스를 진행했다. 콘퍼런스는 탄소중립과 맞춤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삼성전자 DX(디바이스 경험) 부문장인 한종희 부회장이 이날 기조연설자로 나서 “연결 경험의 완성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기”라며 “연결을 통해 모두의 꿈과 바람이 담긴 기술을 구현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비전”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신환경경영전략에 따르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DX 부문은 2027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2030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속 가능한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에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하거나 신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높일 전망이다. 탄소 감축을 위한 스마트 인프라 솔루션 업체 지멘스,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 등 다양한 파트너사와의 협력 사례도 공개했다.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인 스마트싱스로는 기기 간의 연결성과 사용성을 극대화해 ‘초연결 시대’를 만든다는 목표다. 삼성전자는 이날 스마트싱스 허브인 ‘스마트싱스 스테이션’을 공개했는데,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구글, 애플 등 타 업체의 스마트홈 기기를 연동해주는 허브다. 더불어 연결된 기기를 향한 공격을 막는 블록체인 기반의 개인정보보호 플랫폼인 ‘녹스 매트릭스’도 소개했다. 이 밖에 스마트싱스를 기반으로 현실 세계를 정보로 디지털화해 기기에 제공하는 기술인 공간인지 AI와, 저시력자가 TV를 선명하게 인지하도록 돕는 ‘릴루미노 모드’도 선보였다.
LG전자는 미래 비전과 전략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자동차 전장 사업의 가속화를 내세웠다. 6일 현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불황의 장기화에도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체질 개선해 경쟁력 있는 사업 구조를 만들어가겠다”라며 “가장 큰 변화를 TV 사업으로 보고 플랫폼, 광고, 콘텐츠에서 성장 동력을 만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기존의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 영역을 플랫폼, 콘텐츠, 서비스, 솔루션 등 비하드웨어 분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LG 스마트 TV에는 LG 피트니스, LG 아트랩처럼 웹(web) OS 중심의 콘텐츠를 강화한다. 이용자 맞춤형 광고와 취향에 맞는 자동 콘텐츠 추천도 강화한다. 스마트홈 플랫폼인 LG 씽큐로 고객 데이터를 모아 맞춤형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
LG전자의 자동차 전장 사업은 사업 본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낼 것으로 점쳐진다. 전장 사업 수주 잔고는 2022년 말 기준 80조 원에 달한다. 조 사장은 이를 두고 “고속도로에 올랐으니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일만 남았다”라고 평했다. LG전자는 전기차 충전기 업체를 인수해 충전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한 데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는 전기차 구동부품의 양산 등으로 2023년부터 전장 사업은 본격적인 성장세에 들어설 전망이다.
SK그룹은 8개 계열사가 넷 제로(Net zero·탄소 순배출량 0)와 관련한 주제로 통합 전시관을 운영했다. 5대 그룹(삼성, SK, LG, 현대자동차, 롯데) 총수 중에서 유일하게 최태원 SK그룹 회장만 CES를 방문해 화제를 모았다. 최 회장은 SK 전시관을 보고 “늘 고민하는 주제인 탄소 감축을 잘 풀어서 전시해 뜻깊다”라고 평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CES 2023에는 최 회장 외에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등 SK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대거 참석했다. 계열사 중 SK하이닉스는 4일 박정호 부회장이 모바일 AP 업체 퀄컴사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와 만나 메모리 솔루션 공급 등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나섰고, SK이노베이션은 6일 CES에서 전략회의를 열고 탄소 감축, ESG 경영 내재화 등을 강조했다.
롯데정보통신과 자회사 칼리버스가 CES 2023에 설치한 메타버스 전시장 모습. 사진=롯데정보통신 제공
특히 SK텔레콤(SKT)은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의 가상 체험관을 운영해 눈길을 끌었다. 이동통신사 3사 중에서 수장이 유일하게 참석한 업체기도 하다. SKT는 친환경 모빌리티가 정착한 미래도시를 구현한 전시관을 운영했는데, 승객 4명이 실물 크기의 이착륙기에 탑승하면 VR 헤드셋으로 2030년 미래의 부산 풍경을 보는 식이다. 유영상 SKT 사장은 CES에서 AI 기업을 찾는 등 AI 기술 트렌드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SKT는 CES 전시관에서 선보였던 K-UAM의 본격적인 도입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12일 SKT는 UAM 기업 조비 에비에이션(Joby Aviation)과 K-UAM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SKT는 한국공항공사, 한화시스템, 한국기상산업기술원, 한국국토정보공사와 ‘K-UAM 드림팀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국토교통부 UAM 실증사업인 ‘K-UAM 그랜드 챌린지’ 1단계 사업에 참여한다.
롯데가 선택한 먹거리는 메타버스였다. 이번 CES 2023에선 역대 처음으로 메타버스와 웹3.0가 핵심 주제로 선정돼 별도의 공간이 마련됐다. 롯데정보통신은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센트럴홀에 자회사 칼리버스와 만든 초실감형 플랫폼 ‘롯데 메타버스’를 설치했다. 여의도 크기로 구현한 가상공간에 가상쇼핑, K팝 아이돌 공연, 테마파크 등이 들어섰다.
노준형 롯데정보통신 대표는 6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의 메타버스 플랫폼은 마케팅에 활용하는 수준이었으나 블록체인과 NFT로 수익을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겠다”라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CES는 연말에 공개하는 메타버스 라이프 플랫폼의 일부를 전 세계에 공개하는 시험 무대”라고 설명했다.
노 대표의 말처럼 롯데정보통신은 2023년 본격적으로 메타버스 사업 진행에 나선다. 상반기 중에 메타버스와 연동해 대체불가토큰(NFT) 시리즈를 론칭하고 NFT 마켓과 가상자산 지갑도 오픈할 계획이다. 롯데정보통신과 칼리버스는 CES 기간 중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텔레서스’를 개발한 업체 CRI 미들웨어와 기술 협약을 맺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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