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라임자산운용(라임) 자금으로 기업사냥을 당했던 에스모머티리얼즈(현 이엠네트웍스)에 이른바 ‘OEM펀드’를 판매한 메리츠증권이 에스모머티리얼즈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2심 모두 승소했다. 에스모머티리얼즈는 1심에서 메리츠증권이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고, 2심에서는 횡령을 방조했다고 주장했다. 에스모머티리얼즈는 메리츠증권이 판매한 펀드에 400억 원을 투자했다가 약 99.5%의 손실을 봤다. 펀드에 투자한 돈이 횡령에 의해 고스란히 기업사냥꾼의 주머니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2심에서 에스모머티리얼즈는 “메리츠증권이 OEM펀드를 설정해 기업사냥꾼들의 횡령이 가능하도록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횡령이 에스모머티리얼즈 경영진에 의해 이뤄졌고, 메리츠증권과 운용사들이 횡령이 발생할 것임을 알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메리츠증권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은 2022년 12월 22일 에스모머티리얼즈의 항소를 기각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1년 12월 28일 에스모머티리얼즈에 대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다트(DART)에 따르면 에스모머티리얼즈는 2018년 4분기 메리츠증권의 집합투자증권에 400억 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2021년 사업보고서에서 이 집합투자증권의 장부금액은 2억 2338만 원으로 내려앉았다. 투자원금 대비 약 99.5%의 손실이 발생한 셈이다. 이같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 까닭은 펀드가 당시 에스모머티리얼즈를 장악한 기업사냥꾼이 실소유하고 있던 다른 기업이 발행하는 전환사채에 투자하도록 설정됐기 때문이다.
판결문을 통해 살펴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에스모머티리얼즈를 장악한 기업사냥꾼들은 리드 임직원 A 씨를 통해 메리츠증권에 근무하던 B 씨에게 ‘주식회사 경은’의 전환사채에 투자할 자산운용회사를 찾아달라고 했다. ‘주식회사 경은’은 기업사냥꾼 가운데 한 명인 박 아무개 전 리드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자동차 부품 회사다. 이에 B 씨는 코너스톤자산운용과 코어자산운용에 펀드 설정 의사를 타진했고, 운용사들은 펀드의 투자신탁재산 전부를 (주)경은에 투자하는 펀드를 설정했다.
이후 기업사냥꾼들은 에스모머티리얼즈가 해당 펀드에 400억 원을 투자하도록 했고, 에스모머티리얼즈는 2018년 9월~10월 메리츠증권과 펀드 가입계약을 체결했다. 기업사냥꾼들은 (주)경은에 전환사채 매입대금 명목으로 400억 원이 지급되자 이를 전부 인출해 횡령했다. 이후 라임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하며 라임 자금을 활용해 코스닥 상장사를 기업사냥한 이들의 범죄행위도 수면위로 떠올랐다. 에스모머티리얼즈는 기업사냥꾼들이 재판에 넘겨진 2020년 5월 28일 횡령 혐의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기업사냥꾼들은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에스모머티리얼즈는 메리츠증권에 대해 펀드 가입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리츠증권이 확정적 또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공동불법행위이거나 과실 혹은 고의에 의한 방조로 인한 공동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 에스모머티리얼즈 측은 “메리츠증권 직원 B 씨가 기업사냥꾼들과 횡령 범행을 공모해 횡령이 가능하도록 했거나, 공모하지 않았더라도 펀드를 이용해 횡령 범행이 이뤄질 것을 알면서도 이를 용이하게 해주기 위해 펀드를 설정·운용해줬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원은 △B 씨가 횡령 범행과 관련해 공범으로도 종범으로도 기소되지 않은 점 △B 씨가 가입계약을 체결할 때에야 에스모머티리얼즈가 펀드의 투자자임을 알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B 씨에게 펀드 설정을 요청했던 A 씨도 에스모머티리얼즈 횡령 범행과 관련해 기소되지 않았다는 점 △B 씨가 펀드 설정·운용과 관련해 취득한 경제적 이득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어 에스모머티리얼즈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에스모머티리얼즈 회사 자금이 기업사냥꾼들의 계획대로 손쉽게 (주)경은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에스모머티리얼즈이 메리츠증권을 통해 가입한 펀드가 (주)경은의 전환사채에 투자하도록 설정된 OEM펀드였기 때문이다.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펀드’란 자산운용사가 은행·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의 지시·요청을 받아 만들어 운용하는 펀드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OEM펀드는 금지돼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수사기관에서 “B 씨에게 펀드가입자는 정해져 있고, 펀드에 가입해 경은이라는 회사에 투자할 것이니, 관심 있는 운용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코너스톤자산운용과 코어자산운용의 임원 역시 수사기관에서 B 씨가 투자자와 운용처가 정해진 펀드 설정을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판매사인 메리츠증권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OEM펀드라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 에스모머티리얼즈 관련 형사사건 재판에서도 법원은 메리츠증권이 판매한 펀드가 OEM펀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라임 사태와 관련, 라움자산운용의 경우 라임자산운용 측 요청에 따라 OEM펀드를 운용했다. 라임 사태 이후 이들 펀드가 부실펀드로 드러나면서 라움자산운용은 ‘라임 아바타’로 불렸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2020년 12월 라움자산운용에 업무 일부정지 6개월과 과태로 4억 5000만 원의 징계를 내렸다. 과거에는 운용사 위주의 제재만 규정돼 있었지만, 금융당국의 규제가 강화된 뒤 2020년 6월 농협은행에 과징금이 부과되며 OEM펀드 판매사에 첫 제재가 내려졌다.
그러나 법원은 메리츠증권에 OEM펀드 판매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OEM펀드는 현행 자본시장법상 금지돼 있지만, 펀드가 설정될 당시에는 금지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OEM펀드 운용과 관련해 판매사를 제재할 근거가 담긴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2021년 2월부터 시행했다. 법원은 개정안 시행일 전 해당 펀드가 설정됐고, 시행일 이후에는 메리츠증권이 자산운용사들에게 펀드 운용에 관한 명령·지시·요청 등을 했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해당 펀드가 결성된 것은 2018년이다. 메리츠증권은 그 당시에 증권업계에서 통용되던 방식으로 단순 판매사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며 “투자자들도 (주)경은에 투자된다는 사실을 미리 다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OEM펀드란 용어 자체가 당시에는 없었고, 관련 규정이 생긴 것도 2021년이었다”며 “(해당 펀드 판매와 관련해) 다른 목적은 전혀 없었고, 소송에서도 승소했다”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eop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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