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패션 산업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산업’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지만, 한국에서 이 같은 상황을 바꿀 논의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기후 위기 시대가 도래해 세계 각국과 글로벌 기업이 경영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데도 말이다. ‘패션피플(패피)’은 ‘최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은 패스트 패션을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비치지만, 이제는 환경과 기후위기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기반해 소비하는 ‘그린 패피’로 달라지고 있다. ‘그린 패피 탐사대’는 새로운 패피의 눈으로 패션 산업의 문제를 파헤치고 그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2022년 3월 EU(유럽연합)는 ‘패스트패션’ 규제를 예고했다. 옷을 일회용품과 같이 소비하고 버리는 것을 중단하라는 내용이다. EU는 2030년까지 △재활용 섬유 일정 비율 이상 사용 의무화 △재고품 대량 폐기 금지 규정 △일정 수준 이상의 내구성 등을 구체적으로 정한다는 방침이다. 미세 플라스틱 방출을 억제하고, 글로벌 의류 산업의 열악한 노동 조건 역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패션 브랜드도 규제 대상이다.
프란스 팀머만스(Frans Timmermans)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모든 직물은 내구성을 갖추고, 재활용이 가능해야 하며, 재활용 섬유로 만들어지고, 유해 물질이 없어야 한다(All textiles should be long lasting, recyclable, made of recycled fibres and free of dangerous substances)”고 밝혔다.
이에 발맞춰 프랑스와 영국 등은 2025년부터 세탁기에 미세플라스틱 합성섬유 필터 장착 등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EU에 따르면 소비자 1인당 평균 11kg의 섬유가 버려진다. 일회용품처럼 잠깐 쓰고 금방 버려지는 의류가 많고, 의류 재질 규정도 없어 폐기 시 유해 물질이 나오는 문제를 직면하고 규제하겠다는 의지다. 최근 기후 위기가 대두되면서 많은 탄소중립 정책이 나왔지만, ‘패션 산업’이 중점이 된 건 이례적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안타깝지만 국내에서는 패션, 의류와 관련한 이 같은 규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관련 논의조차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가 쓰고 버린 옷은 어디로 갈까, 태우거나 묻거나
의류산업에 종사하던 A 씨가 의류 폐기 문제에 의문을 품게 된 건 10여 년 전 개성공단 관리자로 있었을 때다. “개성공단에서는 쓰레기를 처리할 일이 없었어요. 옷을 제작하고 남은 자투리 원단들을 모아서 버리면 북측 사람들이 전부 가져갔거든요. 버리려고 가져간 게 아니라 그걸 기워서 사용하려고요. 그래서 버리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어요. 이때 처음으로 의문이 생긴 거죠. 한국에서는 어땠지? 폐기되는 의류와 원단이 정말 많은데 그게 다 어디로 가지? 그 전에는 관심도 없었죠. 충격이었던 건 의류는 제작할 때도 폐기할 때도 별다른 규정이 없다는 거였어요”.
우리가 입고 버린 옷은 어디로 갈까? 한국에서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처리할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일반쓰레기로 배출해 소각·매립하거나, 의류수거함에 넣거나. 그러나 의류를 재사용할 거라 기대하는 의류수거함 역시 문제가 많다. 관련 규정이 없어 관리가 제각각이고, 재사용에 대한 기준도 없다(관련기사 [현장] 사라지는 의류수거함…재활용 가능한 옷도 그냥 버리라고?).
일반쓰레기로 배출하는 건 더 문제다. 배출 원단에 대한 규정조차 없다. 합성섬유로 이루어진 의류가 많은데, 이런 옷들은 매립과 소각과정에서 유독가스를 배출한다. 소각장 관계자 B 씨는 “옷은 전부 태운다. 일반쓰레기와 마찬가지로 소각한다. 일반 가정에서는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고, 동대문 등 의류업체가 많은 특정 지역에는 지자체와 협약을 맺어 의류 폐기물만 따로 소각장으로 가져오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의류 재질이나 유독가스 배출 가능성 등을 따지지 않고 그냥 태운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의류라고 광고하는 제품들도 재활용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친환경에 대한 규정도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여러 원단이 섞여 일일이 분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페트병 등을 활용해 ‘재활용 섬유’로 만들어진 의류라도 다시 재활용할 수는 없다. 의류업계 관계자 C 씨는 “보통 재고가 남으면 2년 정도 아웃렛까지 가서 판매를 한다. 그 이후 남는 재고들은 보통 전부 소각한다. 최근에는 환경을 고려해 폐타이어로 활용하거나 기부하는 브랜드도 있다. 다만 관련 법규가 없기 때문에 브랜드마다 처리 방식이 상이하고, 섬유 혼용률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통계는 불분명, 규제는 부재, 환경보다 성장에 치중한 환경부
환경부 환경통계포털에 따르면 2020년 생활폐기물로 배출된 섬유류는 37만 664톤이다. 이 중 재활용은 단 2만 1433톤, 5.8%에 불과하다. 반면 소각은 26만 5154톤, 매립은 8만 606톤 규모에 달한다. 일반 종량제 쓰레기와 섞여 파악되지 않는 경우를 고려하면 실제로 소각, 매립되는 규모는 더 클 가능성이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의류에도 재활용 의무 등 관련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제도를 운영한다. 제품 생산자나 포장재를 이용한 제품의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부여한 것인데, 음식물, 화장품, 종이, 타이어, 각종 포장재 등이 여기에 포함되지만 의류는 빠졌다. 의류 재활용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다.
2022년 12월 여러 언론 매체가 환경부에서 의류와 섬유에 ‘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 적용을 검토한다고 보도했다. EU 흐름에 맞춰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인 결과, 환경부가 이 같은 방안의 도입을 검토하는 단계는 아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럽에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동향 파악 목적으로 의류도 포함된 것이다. 국내에까지 도입할 계획은 없다. 우리나라가 당장 그렇게까지 할 단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에서 발주한 ‘품목별 재활용제도 개선방안 연구’ 용역의 내용을 실제 살펴보니 의류에 대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도입 타당성 연구뿐 아니라 형광등, 전지 등 다른 항목도 포함됐다. 2023년 1월 3일 공개한 환경부 업무보고에도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폐기물 대책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부는 올해 업무보고에 탄소중립이나 폐기물 대책 등 환경 보호적인 측면보다 신산업 창출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 임기 동안 수출 100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담았다.
의류업계 관계자 D 씨는 “정부에서 손 놓고 있는데, 업계에서 자발적으로 친환경을 외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소비자가 이를 선호하기에 브랜드에서 소비자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린워싱(친환경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위장환경주의) 문제도 나타난다. 애초에 규제가 없는데 어떻게 이걸 비판하겠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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