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퇴사시대(the Great Regression)’에 걸맞게 지난 한 해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사직서를 받았다. 직종과 직급(연령), 부서와 직무를 막론하고 한 달 평균 20명 이상이 자발적으로 퇴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감으로는 팬데믹 이전에 비해 약 1.5에서 2배 정도 늘어난 듯 하다. 물론 그만큼 쉴 새 없이 신규직원을 채용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원 대비 현원은 과부족 상태이고, 현장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다며 울상이다.
사직서에는 사직사유를 적게 마련인데, 통상 일신상의 사유 혹은 이직이라고 적지만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출퇴근 거리, 직장내괴롭힘 등 특정사유를 적어 제출하는 경우도 있어 사직자 면담은 필수다. 면담을 하다보면 표면적으로는 ‘일신상의 사유’였던 것이 업무량의 불균형, 조직(부서) 분위기, 업무부적응, 상사나 동료와의 불화, 심지어 ‘일은 내가 죽어라 하는데 돈은 사장이 다 버는 것 같아서’ 같은 구체적인 속내를 드러낸다. 그나마 면담을 할 시간적 여유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문자로 당일 통보하고 잠수를 타는 경우도 간혹 있다. 딴에는 아쉬울 것이 없어 과감하게 행동한 것이라 착각할지 모르겠으나, 본인이 스스로 오너가 되거나 어느 직장에도 얽매임 없이 자유로운 인생을 살 계획이 아니라면 회사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도 가장 최악의 마무리이다.
이런 저런 사직사유들은 곧 경력직 입사지원서의 실제 입사동기가 된다. 때문에 ‘나의 경력개발과 발전을 위해’ 라고 쓰여진 입사동기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면 채용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이 사람의 이직사유와 업무역량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그래서 최근 급부상한 것이 ‘평판조회’ 시장이다. 개인정보 침해의 우려 때문에 지원자에게 평판조회 실시 동의서를 반드시 징구해야 하고, 블라인드(비지정) 평판조회 보다는 지원자가 적어 낸 레퍼런스를 참고하여 전문업체에 지정 평판조회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지원자가 직접 적어 내면 당연히 긍정적인 답변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다양한 의견이 수집된다.
업무추진력이 좋고 성과를 많이 낸다던 사람에 대해서는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해서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평판이 돌아오기도 하고, 대인관계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출중하다던 지원자에 대해서는 사내정치나 편가르기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직이 너무 잦은 것 같아서 일부 경력을 빼고 제출했던 지원자의 누락 경력을 확인하기도 하고 재직기간이나 참여 프로젝트가 정정되기도 한다. 직급이 높고 중요한 포지션일 수록 평판조회의 중요도는 더욱 높아진다. 단순하게 경력조회부터 시작해서 업무능력과 성과는 물론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 능력, 그리고 인성에 대해 복합적으로 확인한다. 어찌보면 꽤나 번거로운 절차일 수 있으나 최근들어 높은 이직율로 조직내 인적자원이 불안정하게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3~5년차 실무자급 경력직에 대해서까지 평판조회를 진행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2년여 전에 높은 연봉과 임원급 대우를 받고 이직한 B에게서 연락이 왔다. B는 필자와 같은 회사에서 10년의 경력을 채우고 세번째 회사로 이직했는데, 덕분에 채용시장에 ‘평판조회 전문 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B는 재직 당시 출중한 업무능력과 유연한 대인관계로 부서와 직무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B는 마지막 출근일에 자기 부서의 직원 뿐 아니라, 업무를 하면서 마주친 여러 유관부서 직원들, 사무실 청소와 경비를 담당하는 용역직원들까지 직접 찾아가 자신의 이직을 알리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부서장으로서 업무 공백을 최소화 하기 위해 퇴직 2달 전에 사직의사를 미리 알리고 자신의 후임을 직접 추천하여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등 마지막 날까지도 회사에 해를 끼치지 않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기에 그의 이직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험담을 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 B가 새로운 회사에 안착하는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그가 이직한 회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급성장한 곳이었는데, 조직규모가 갑자기 커지면서 외부에서 영입한 임원의 수가 많았고 구 세력과 신진 세력 간 사내정치가 극심하다는 이야기였다. ‘일’만 잘하면 그만일줄 알았는데 임원으로 이직하고 그만큼 관리직원의 수도 늘어나니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모양이었다. B는 혹여 모 기업에서 레퍼런스 체크 전화가 올 수 있으니 경력 확인 및 답변을 잘 부탁한다며 다시 한번의 이직을 시사했다.
이제 회사는 더 이상 평생직장이 아닌,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어디든 일할 곳은 많기에 회사입장에서는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 일, 그리고 그들을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게 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도 수시채용, 경력직 채용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정형화된 채용과정에 평판조회라는 제3의 면접과정을 추가해 옥석을 가려내고자 애쓰고 있다. 아무리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지만, 생각보다 더 좁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얼마를 받고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 어느 곳에서 어떤 업무를 하더라도 ‘나 자신’이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회사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22년의 인사평가와 2023년 연봉협상에서 자신의 기대와 다른 결과로 불만을 갖고 실망한 당신. 혹여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면, 현재든 과거의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누구에게나 ‘좋은 평판’을 갖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부터 짚어보길 바란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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