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아젠다

[사이언스] 우주의 크기를 재는 기발한 방법 '라이먼 브레이크'

수소 원자가 방출하는 가장 파장 짧은 빛이 주저앉는 지점 활용, 은하까지의 거리 구해

2023.01.09(Mon) 10:15:15

[비즈한국]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관측 가능한 우주 끝자락의 은하를 찾고 있다. 그리고 가장 먼 은하의 기록을 매번 새롭게 갱신하는 중이다. 120억 년 전, 130억 년 전, 감도 오지 않을 만큼 멀리 있는 희미한 은하를 계속 포착하고 있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그 은하가 정말 이렇게 먼 거리에 있다는 걸 어떻게 확인할까? 이 값을 믿을 수 있을까? 

 

원리는 간단하다. 우주는 138억 년째 꾸준히 팽창 중이다. 시공간 자체가 팽창하면서 먼 거리에서 날아온 빛의 파장은 함께 늘어난다. 먼 은하에서 출발한 빛은 지구로 도착할 때쯤 훨씬 긴 파장으로 늘어지게 된다. 이를 우주론적 적색편이라고 부른다. 천문학자들은 지구에서 관측되는 은하의 빛의 파장이 원래 파장에 비해 얼마나 길게 늘어졌는지만 비교하면 그 빛이 얼마나 긴 세월을 날아오며 늘어졌는지, 얼마나 먼 거리에서 날아왔는지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만 알고 있을 것이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은하단 Abell 2744 방향을 관측한 사진. 은하단의 강력한 중력렌즈를 통해 먼 우주의 은하를 희미한 모습으로 포착했다. 사진=ESA, NASA, CSA, STScI


그런데 잠깐. 우주 팽창으로 늘어진 빛의 파장을 활용해 거리를 잰다는 원리는 알겠는데, 망원경으로 관측한 은하의 빛이 원래의 파장에 비해 얼마나 더 늘어졌는지를 알려면 애초에 늘어지기 전의 원래 파장을 알아야 한다.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빛은 이미 다 늘어진 이후의 빛일 뿐이다. 그렇다면 빛이 늘어지기 전, 원래 파장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기에 아주 놀랍고 재밌는 천문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오늘 이야기는 조금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제임스 웹의 발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이야기다. 평소 가벼운 겉핥기 이야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본질적인 천문학자들의 이야기를 원한 사람들을 위해 이번 이야기를 준비했다. 다른 곳에선 접하지 못했을, 먼 우주의 거리를 재는 진짜 원리를 소개한다. 

 

머나먼 우주 끝자락 은하들의 거리를 잴 때 사용하는 기발한 방법, 라이먼 브레이크를 소개한다.

 

우리가 관측하는 은하의 스펙트럼은 그 은하가 품고 있는 다양한 화학 성분들이 흡수하거나 방출한 빛의 흔적이다. 각 원자의 전자가 더 높은 궤도로 올라가며 빛을 흡수한다. 또는 높은 궤도를 돌던 전자가 더 낮은 궤도로 떨어지며 빛을 방출하기도 한다. 특히 우주의 75%는 수소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간단하게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수소를 생각해보자.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원자핵 주변을 맴도는 전자의 궤도가 아무데나 놓일 수 없고 원자핵으로부터 특정한 거리를 둔 궤도 위에서만 놓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물리학자들은 가장 안쪽 궤도부터 바깥까지 순서대로 번호를 붙였다. 가장 안쪽 궤도는 n=1이다. 더 바깥 궤도로 가면서 n=2, 3, 4… 이런 식으로 숫자가 커진다. 전자가 아예 원자핵의 속박을 벗어나 탈출하면서 이온화가 되면 n=∞로 표현하기도 한다. 전자가 궤도를 오르내릴 때 각 궤도의 에너지 레벨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의 에너지의 빛을 흡수/방출한다. 특히 전자가 돌 수 있는 궤도는 딱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각 궤도를 오르내리며 흡수/방출할 수 있는 빛의 에너지(파장)도 특정된다. 

 

전자가 원래 어디에 있었든 가장 안쪽의 n=1 궤도까지 떨어지면 가장 큰 에너지 낙차를 겪게 된다. 그만큼 가장 에너지가 큰(파장이 짧은) 빛을 방출한다. 그에 비해 전자가 더 바깥을 돌다가 n=2 궤도까지만 떨어진다면 조금 더 적은 에너지 낙차를 겪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작은(파장이 좀 더 긴) 빛을 방출한다. 이처럼 물리학자들은 전자가 몇 번째 궤도까지 떨어질 때 방출되는 빛인지를 기준으로 종류를 구분한다. 전자가 가장 안쪽의 n=1 궤도까지 떨어지면서 방출하는 빛들은 라이먼 계열, n=2 궤도까지 떨어질 때 방출하는 빛들은 발머 계열, n=3 궤도까지 떨어지는 빛들은 파센 계열, n=4 궤도까지 떨어지는 빛들은 브래킷 계열 이런 식으로 부른다. (관련 빛을 연구한 물리학자들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원자핵 주변 전자가 어느 에너지 준위까지 떨어질 때 방출되는 빛인지를 기준으로 빛의 종류를 구분한다. 사진=위키피디아

 

라이먼 계열의 빛은 전자가 경험하는 에너지 낙차가 가장 크다. 그만큼 가장 에너지가 크고 파장이 짧은 자외선 영역에서 빛을 방출한다. 반면 발머 계열은 n=2 궤도까지만 떨어지기 때문에 전자가 겪는 에너지 낙차가 좀 더 적다. 그리고 좀 더 에너지가 적고 파장이 긴 가시광 영역에서 빛을 방출한다. 그래서 이 빛은 사람 눈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발머 계열은 650nm 정도의 붉은 빛을 많이 방출한다. 그래서 한창 어린 별들이 태어나며 뜨겁게 달궈진 수소 원자로 가득한 별 탄생 지역 대부분이 붉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가 궤도를 이동하며 방출할 수 있는 가장 에너지가 높은(파장이 짧은) 빛은 무엇일까? 가장 낙차가 크게 궤도를 이동할 때일 것이다. 바로 n=∞ 아예 원자 바깥에 있다가 순식간에 n=1 가장 안쪽의 궤도로 떨어질 때 방출하는 빛이다. 이때 방출되는 빛의 파장은 약 91.2nm 정도다. 아주 파장이 짧은 자외선에 해당한다. 당연히 이보다 더 파장이 짧은 빛은 낼 수 없다. n=1 궤도가 전자가 놓일 수 있는 가장 밑바닥 궤도이기 때문이다. 더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강한 빛을 방출하려면 전자가 더 아래까지 내려가야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더 내려갈 곳이 없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아주 놀라운 현상이 벌어진다. 

 

파장이 91.2nm보다 더 짧은 강한 빛은 대부분 수소 원자가 흡수한다. 전자가 아예 수소 원자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는 이온화에 쓰인다. 그렇게 홀로 떠돌던 전자가 다시 시간이 지나고 수소 원자핵 주변 궤도로 떨어질 때 라이먼 계열, 발머 계열, 파센 계열 등 다양한 계열의 빛을 방출한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이 전자가 아래 궤도로 떨어질 때 방출할 수 있는 가장 파장이 짧은 빛은 91.2nm가 한계다. 더 파장이 짧은 빛은 방출하지 못한다. 그 결과 수소 원자들이 흡수하고 방출하는 모든 빛의 분포를 모아보면 아주 재밌는 모양이 만들어진다. 91.2nm보다 긴 파장에선 다양한 빛이 존재하다가 딱 그보다 짧은 파장 쪽으로 가면 순식간에 그 어떤 빛도 보이지 않는다. 스펙트럼의 모양은 91.2nm 파장을 기점으로 절벽이 뚝 주저앉는 것처럼 보인다. 라이먼 계열의 파장이 가장 짧은 한계에서 스펙트럼이 뚝 끊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를 ‘라이먼 브레이크(Lyman break)’라고 부른다. 

 

실제 관측한 먼 은하의 스펙트럼이다. 파장이 짧은 왼쪽에서 갑자기 스펙트럼이 급락하는 구간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라이먼 브레이크’다.


라이먼 브레이크는 우주 끝자락 먼 은하까지 거리를 잴 때 정말 유용하다.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선 라이먼 브레이크는 알아보기 아주 쉽다. 더 파장이 긴 평범한 범위의 스펙트럼은 다양한 흡수선과 방출선이 뒤엉켜 지글지글하고 복잡하다. 중간중간 움푹 들어간 흡수선이 정확히 어떤 화학 성분에 의한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라이먼 브레이크는 아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단순히 스펙트럼 분포가 갑자기 푹 내려앉는 곳만 찾으면 된다. 스펙트럼 모양이 갑자기 주저앉는 절벽을 발견하면 그곳이 라이먼 브레이크이고 원래는 파장이 91.2nm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실제 관측된 스펙트럼에서는 그 절벽이 어느 정도 긴 파장에서 보이는지와 비교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곧바로 그 은하의 스펙트럼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길게 늘어졌는지 적색편이의 양을 알 수 있고, 은하까지의 거리도 구할 수 있다. 

 

라이먼 브레이크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 번째, 스펙트럼이 아주 급격하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파장에서 빛의 세기가 어떻게 분포하는지 완벽한 스펙트럼을 그리지 않아도 대강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장이 다른 세 가지 빛을 찍는 필터로 동일한 은하의 사진을 찍었다고 해보자. 가장 파장이 짧은 빛을 보는 첫 번째 필터는 라이먼 브레이크보다 더 짧은 파장을 본다. 그런데 이 범위에선 은하에서 나오는 빛이 거의 없다. 그래서 첫 번째 필터로 찍은 사진에선 은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라이먼 브레이크보다 더 파장이 긴 영역을 보는 두 번째, 세 번째 필터로 찍은 사진에선 은하가 더 잘 보인다. 이 영역에선 은하에서 방출되는 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파장만 조금씩 다르게 해서 한 은하를 찍는다면 단 세 장의 사진만으로도 라이먼 브레이크 절벽이 대강 어느 파장 근처에 존재할지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장점이다. 모든 파장의 완벽한 스펙트럼을 찍는 분광 관측을 하지 않아도, 단순히 조금씩 다른 파장에서 은하의 사진만 찍는 측광 관측만으로도 라이먼 브레이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주 머나먼 거리에 떨어진 은하의 희미한 빛으로는 가까운 별만큼 예쁜 스펙트럼을 담기 어렵다. 은하 자체도 너무 어둡게 보이고 배경 우주의 노이즈가 잔뜩 섞인다. 그런 와중에도 라이먼 브레이크는 아주 급격하게 스펙트럼이 뚝 끊기는 구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분이 쉽다. 게다가 비용이 더 저렴한 측광 관측만으로도 그 위치를 유추할 수 있다. 

 

라이먼 브레이크의 두 번째 장점은 애초에 파장이 아주 짧은 곳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라이먼 브레이크는 원래 파장이 짧은 자외선 범위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빛의 파장이 조금 늘어지면 자외선보다 살짝 더 파장이 긴 가시광선 영역으로 이동한다. 사람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범위다. 그래서 적당히 거리가 먼 은하들의 라이먼 브레이크는 굳이 우주 망원경을 쏘지 않아도 가시광을 보는 지상 망원경 관측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애초에 파장이 짧은 라이먼 브레이크가 가시광도 아니고 훨씬 더 파장이 긴 적외선 영역에서 보인다? 이건 빛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아주 길게 늘어졌다는 뜻이다. 제임스 웹처럼 적외선을 보는 망원경으로 라이먼 브레이크의 뚝 끊기는 스펙트럼 모양이 발견되었다면 자외선을 적외선까지 늘어뜨릴 만큼 극단적인 적색편이를 당한 우주 끝자락의 은하를 봤다는 증거다.

 

파장이 아주 짧은 자외선에서 형성되는 라이먼 브레이크가 훨씬 파장이 긴 적외선에서 확인된다면 아주 극단적으로 파장이 늘어나는 적색편이를 겪었다는 증거다. 사진=NASA/ESA/C.Christian/Z.Levay(STScI)

 

이처럼 라이먼 브레이크는 우주 끝자락의 머나먼 은하의 존재와 그 거리를 유추하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단서다. 최근 제임스 웹을 통해 연이어 발견, 갱신되는 먼 은하들을 보면 전부 다 라이먼 브레이크를 활용했다. 

 

최근 제임스 웹으로 새롭게 포착한 먼 은하들의 결과를 보여주는 사진. 각 은하의 스펙트럼이 오른쪽에 함께 표현됐는데, 파장이 짧은 왼쪽에 스펙트럼이 급락하는 라이먼 브레이크도 표시됐다. 사진=NASA, ESA, CSA, STScI, M. Zamani(ESA/Webb), and L. Hustak(STScI). SCIENCE: B. Robertson(UCSC), S. Tacchella(Cambridge), E. Curtis-Lake(Hertfordshire), S. Carniani(Scuola Normale Superiore), and the JADES Collaboration

 

2015년 허블 망원경은 큰곰자리 방향에서 적색편이가 11에 해당하는 아주 먼 은하 GN-z11을 발견해 기록을 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보다 좀 더 먼 적색편이 13의 은하 HD1이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제임스 웹이 우주에 올라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기존 기록을 모두 갈아엎는 중이다. 제임스 웹이 발견한 가장 먼 은하의 적색편이 값도 13을 넘어 14, 15, 16 계속 커지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말 놀라운 기록이 나왔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 데이터에서 적색편이가 무려 20으로 의심되는 새로운 은하를 발견했다. 이건 정말 엄청난 기록이다. 적색편이 20을 넘었다는 것은, 100m 달리기에서 절대 깰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9초 60의 벽을 우사인 볼트가 깨뜨린 것에 버금가는 충격이다. 이 정도면 이 은하의 빛은 지금으로부터 최대 137억 5000만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인데, 우주가 태어난 지 1억 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절의 은하가 발견된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오늘은 좀 어려운 이야기를 했지만, 이걸 통해 천문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먼 은하, 먼 우주의 거리가 이제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먼 우주 끝자락에서 계속 이어질 제임스 웹의 새로운 발견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c53a9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a80c/meta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0-01275-y

https://webbtelescope.org/contents/early-highlights/nasas-webb-reaches-new-milestone-in-quest-for-distant-galaxies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18/4/6011/6849970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