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관측 가능한 우주 끝자락의 은하를 찾고 있다. 그리고 가장 먼 은하의 기록을 매번 새롭게 갱신하는 중이다. 120억 년 전, 130억 년 전, 감도 오지 않을 만큼 멀리 있는 희미한 은하를 계속 포착하고 있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그 은하가 정말 이렇게 먼 거리에 있다는 걸 어떻게 확인할까? 이 값을 믿을 수 있을까?
원리는 간단하다. 우주는 138억 년째 꾸준히 팽창 중이다. 시공간 자체가 팽창하면서 먼 거리에서 날아온 빛의 파장은 함께 늘어난다. 먼 은하에서 출발한 빛은 지구로 도착할 때쯤 훨씬 긴 파장으로 늘어지게 된다. 이를 우주론적 적색편이라고 부른다. 천문학자들은 지구에서 관측되는 은하의 빛의 파장이 원래 파장에 비해 얼마나 길게 늘어졌는지만 비교하면 그 빛이 얼마나 긴 세월을 날아오며 늘어졌는지, 얼마나 먼 거리에서 날아왔는지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우주 팽창으로 늘어진 빛의 파장을 활용해 거리를 잰다는 원리는 알겠는데, 망원경으로 관측한 은하의 빛이 원래의 파장에 비해 얼마나 더 늘어졌는지를 알려면 애초에 늘어지기 전의 원래 파장을 알아야 한다.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빛은 이미 다 늘어진 이후의 빛일 뿐이다. 그렇다면 빛이 늘어지기 전, 원래 파장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기에 아주 놀랍고 재밌는 천문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오늘 이야기는 조금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제임스 웹의 발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이야기다. 평소 가벼운 겉핥기 이야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본질적인 천문학자들의 이야기를 원한 사람들을 위해 이번 이야기를 준비했다. 다른 곳에선 접하지 못했을, 먼 우주의 거리를 재는 진짜 원리를 소개한다.
머나먼 우주 끝자락 은하들의 거리를 잴 때 사용하는 기발한 방법, 라이먼 브레이크를 소개한다.
우리가 관측하는 은하의 스펙트럼은 그 은하가 품고 있는 다양한 화학 성분들이 흡수하거나 방출한 빛의 흔적이다. 각 원자의 전자가 더 높은 궤도로 올라가며 빛을 흡수한다. 또는 높은 궤도를 돌던 전자가 더 낮은 궤도로 떨어지며 빛을 방출하기도 한다. 특히 우주의 75%는 수소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간단하게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수소를 생각해보자.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원자핵 주변을 맴도는 전자의 궤도가 아무데나 놓일 수 없고 원자핵으로부터 특정한 거리를 둔 궤도 위에서만 놓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물리학자들은 가장 안쪽 궤도부터 바깥까지 순서대로 번호를 붙였다. 가장 안쪽 궤도는 n=1이다. 더 바깥 궤도로 가면서 n=2, 3, 4… 이런 식으로 숫자가 커진다. 전자가 아예 원자핵의 속박을 벗어나 탈출하면서 이온화가 되면 n=∞로 표현하기도 한다. 전자가 궤도를 오르내릴 때 각 궤도의 에너지 레벨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의 에너지의 빛을 흡수/방출한다. 특히 전자가 돌 수 있는 궤도는 딱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각 궤도를 오르내리며 흡수/방출할 수 있는 빛의 에너지(파장)도 특정된다.
전자가 원래 어디에 있었든 가장 안쪽의 n=1 궤도까지 떨어지면 가장 큰 에너지 낙차를 겪게 된다. 그만큼 가장 에너지가 큰(파장이 짧은) 빛을 방출한다. 그에 비해 전자가 더 바깥을 돌다가 n=2 궤도까지만 떨어진다면 조금 더 적은 에너지 낙차를 겪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작은(파장이 좀 더 긴) 빛을 방출한다. 이처럼 물리학자들은 전자가 몇 번째 궤도까지 떨어질 때 방출되는 빛인지를 기준으로 종류를 구분한다. 전자가 가장 안쪽의 n=1 궤도까지 떨어지면서 방출하는 빛들은 라이먼 계열, n=2 궤도까지 떨어질 때 방출하는 빛들은 발머 계열, n=3 궤도까지 떨어지는 빛들은 파센 계열, n=4 궤도까지 떨어지는 빛들은 브래킷 계열 이런 식으로 부른다. (관련 빛을 연구한 물리학자들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라이먼 계열의 빛은 전자가 경험하는 에너지 낙차가 가장 크다. 그만큼 가장 에너지가 크고 파장이 짧은 자외선 영역에서 빛을 방출한다. 반면 발머 계열은 n=2 궤도까지만 떨어지기 때문에 전자가 겪는 에너지 낙차가 좀 더 적다. 그리고 좀 더 에너지가 적고 파장이 긴 가시광 영역에서 빛을 방출한다. 그래서 이 빛은 사람 눈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발머 계열은 650nm 정도의 붉은 빛을 많이 방출한다. 그래서 한창 어린 별들이 태어나며 뜨겁게 달궈진 수소 원자로 가득한 별 탄생 지역 대부분이 붉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가 궤도를 이동하며 방출할 수 있는 가장 에너지가 높은(파장이 짧은) 빛은 무엇일까? 가장 낙차가 크게 궤도를 이동할 때일 것이다. 바로 n=∞ 아예 원자 바깥에 있다가 순식간에 n=1 가장 안쪽의 궤도로 떨어질 때 방출하는 빛이다. 이때 방출되는 빛의 파장은 약 91.2nm 정도다. 아주 파장이 짧은 자외선에 해당한다. 당연히 이보다 더 파장이 짧은 빛은 낼 수 없다. n=1 궤도가 전자가 놓일 수 있는 가장 밑바닥 궤도이기 때문이다. 더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강한 빛을 방출하려면 전자가 더 아래까지 내려가야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더 내려갈 곳이 없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아주 놀라운 현상이 벌어진다.
파장이 91.2nm보다 더 짧은 강한 빛은 대부분 수소 원자가 흡수한다. 전자가 아예 수소 원자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는 이온화에 쓰인다. 그렇게 홀로 떠돌던 전자가 다시 시간이 지나고 수소 원자핵 주변 궤도로 떨어질 때 라이먼 계열, 발머 계열, 파센 계열 등 다양한 계열의 빛을 방출한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이 전자가 아래 궤도로 떨어질 때 방출할 수 있는 가장 파장이 짧은 빛은 91.2nm가 한계다. 더 파장이 짧은 빛은 방출하지 못한다. 그 결과 수소 원자들이 흡수하고 방출하는 모든 빛의 분포를 모아보면 아주 재밌는 모양이 만들어진다. 91.2nm보다 긴 파장에선 다양한 빛이 존재하다가 딱 그보다 짧은 파장 쪽으로 가면 순식간에 그 어떤 빛도 보이지 않는다. 스펙트럼의 모양은 91.2nm 파장을 기점으로 절벽이 뚝 주저앉는 것처럼 보인다. 라이먼 계열의 파장이 가장 짧은 한계에서 스펙트럼이 뚝 끊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를 ‘라이먼 브레이크(Lyman break)’라고 부른다.
라이먼 브레이크는 우주 끝자락 먼 은하까지 거리를 잴 때 정말 유용하다.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선 라이먼 브레이크는 알아보기 아주 쉽다. 더 파장이 긴 평범한 범위의 스펙트럼은 다양한 흡수선과 방출선이 뒤엉켜 지글지글하고 복잡하다. 중간중간 움푹 들어간 흡수선이 정확히 어떤 화학 성분에 의한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라이먼 브레이크는 아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단순히 스펙트럼 분포가 갑자기 푹 내려앉는 곳만 찾으면 된다. 스펙트럼 모양이 갑자기 주저앉는 절벽을 발견하면 그곳이 라이먼 브레이크이고 원래는 파장이 91.2nm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실제 관측된 스펙트럼에서는 그 절벽이 어느 정도 긴 파장에서 보이는지와 비교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곧바로 그 은하의 스펙트럼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길게 늘어졌는지 적색편이의 양을 알 수 있고, 은하까지의 거리도 구할 수 있다.
라이먼 브레이크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 번째, 스펙트럼이 아주 급격하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파장에서 빛의 세기가 어떻게 분포하는지 완벽한 스펙트럼을 그리지 않아도 대강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장이 다른 세 가지 빛을 찍는 필터로 동일한 은하의 사진을 찍었다고 해보자. 가장 파장이 짧은 빛을 보는 첫 번째 필터는 라이먼 브레이크보다 더 짧은 파장을 본다. 그런데 이 범위에선 은하에서 나오는 빛이 거의 없다. 그래서 첫 번째 필터로 찍은 사진에선 은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라이먼 브레이크보다 더 파장이 긴 영역을 보는 두 번째, 세 번째 필터로 찍은 사진에선 은하가 더 잘 보인다. 이 영역에선 은하에서 방출되는 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파장만 조금씩 다르게 해서 한 은하를 찍는다면 단 세 장의 사진만으로도 라이먼 브레이크 절벽이 대강 어느 파장 근처에 존재할지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장점이다. 모든 파장의 완벽한 스펙트럼을 찍는 분광 관측을 하지 않아도, 단순히 조금씩 다른 파장에서 은하의 사진만 찍는 측광 관측만으로도 라이먼 브레이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주 머나먼 거리에 떨어진 은하의 희미한 빛으로는 가까운 별만큼 예쁜 스펙트럼을 담기 어렵다. 은하 자체도 너무 어둡게 보이고 배경 우주의 노이즈가 잔뜩 섞인다. 그런 와중에도 라이먼 브레이크는 아주 급격하게 스펙트럼이 뚝 끊기는 구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분이 쉽다. 게다가 비용이 더 저렴한 측광 관측만으로도 그 위치를 유추할 수 있다.
라이먼 브레이크의 두 번째 장점은 애초에 파장이 아주 짧은 곳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라이먼 브레이크는 원래 파장이 짧은 자외선 범위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빛의 파장이 조금 늘어지면 자외선보다 살짝 더 파장이 긴 가시광선 영역으로 이동한다. 사람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범위다. 그래서 적당히 거리가 먼 은하들의 라이먼 브레이크는 굳이 우주 망원경을 쏘지 않아도 가시광을 보는 지상 망원경 관측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애초에 파장이 짧은 라이먼 브레이크가 가시광도 아니고 훨씬 더 파장이 긴 적외선 영역에서 보인다? 이건 빛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아주 길게 늘어졌다는 뜻이다. 제임스 웹처럼 적외선을 보는 망원경으로 라이먼 브레이크의 뚝 끊기는 스펙트럼 모양이 발견되었다면 자외선을 적외선까지 늘어뜨릴 만큼 극단적인 적색편이를 당한 우주 끝자락의 은하를 봤다는 증거다.
이처럼 라이먼 브레이크는 우주 끝자락의 머나먼 은하의 존재와 그 거리를 유추하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단서다. 최근 제임스 웹을 통해 연이어 발견, 갱신되는 먼 은하들을 보면 전부 다 라이먼 브레이크를 활용했다.
2015년 허블 망원경은 큰곰자리 방향에서 적색편이가 11에 해당하는 아주 먼 은하 GN-z11을 발견해 기록을 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보다 좀 더 먼 적색편이 13의 은하 HD1이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제임스 웹이 우주에 올라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기존 기록을 모두 갈아엎는 중이다. 제임스 웹이 발견한 가장 먼 은하의 적색편이 값도 13을 넘어 14, 15, 16 계속 커지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말 놀라운 기록이 나왔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 데이터에서 적색편이가 무려 20으로 의심되는 새로운 은하를 발견했다. 이건 정말 엄청난 기록이다. 적색편이 20을 넘었다는 것은, 100m 달리기에서 절대 깰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9초 60의 벽을 우사인 볼트가 깨뜨린 것에 버금가는 충격이다. 이 정도면 이 은하의 빛은 지금으로부터 최대 137억 5000만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인데, 우주가 태어난 지 1억 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절의 은하가 발견된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오늘은 좀 어려운 이야기를 했지만, 이걸 통해 천문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먼 은하, 먼 우주의 거리가 이제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먼 우주 끝자락에서 계속 이어질 제임스 웹의 새로운 발견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c53a9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a80c/meta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0-01275-y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18/4/6011/6849970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