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는 스타 작가 탄생에 초점을 맞춘 다른 공모전과 달리 민주적으로 작가를 발굴해 미술계의 텃밭을 기름지게 하려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특정 경향이나 장르 혹은 미술 활동 경력, 나이에 상관없이 대상 작가의 스펙트럼이 넓다. 일곱 번의 시즌을 통해 180여 명의 작가를 발굴했다. 이 중에는 미술계에 첫발을 내딛은 작가가 있는가 하면, 활동 경력이 풍부한 작가도 있었다.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작가도 나왔고, 작품 활동의 모멘트가 된 작가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프로젝트 출신 작가들이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협회’를 만들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결실이다.
#분홍색 토끼와 하얀 고양이, 선글래스를 쓴 노랑머리 소녀가 애드벌룬을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 숲과 강을 지나 먼 여행을 떠나는 중이다.
#미식축구 경기를 하는 토끼가 사자의 강력한 태클을 피해 터치다운에 성공했다. 뒤에서는 금발머리 소녀가 치어리더 복장으로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고양이와 토끼, 소녀가 록 밴드를 결성해 공연 중이다. 여러 동물들이 환호한다.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는 동화적 발상의 그림이다. 환상적이며 코믹한 설정이 최근 회화의 흐름과 맞닿아 있어 주목받고 있는 안정모의 작품들이다.
만화책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유쾌한 상상력이다. 그런데 단순히 유쾌한 상상력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웃음을 머금게 하는 가벼운 상황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의외로 묵직하다.
안정모가 토끼 캐릭터를 만들어 작품의 주인공으로 출연시키면서 붙여준 이름은 ‘매드 토(Mad toe)-미친 발가락’이다. 토끼의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작명이다.
작가는 “토끼가 못된 동물들에게 괴롭힘 당하다 죽은 후 빌런으로 환생하여 강한 동물들을 응징할 때 발길질을 잘해서 붙은 별명”이라고 설명한다. 스토리를 연속적으로 작품화하는 안정모의 그림에서 매드 토는 슈퍼 히어로 역할을 담당하는 주인공이다. 약하고 온순한 토끼에게 영웅 대접을 하다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이쯤에서 우리는 안정모가 일종의 블랙 유머를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를 서슴없이 소화해내는 안정모의 토끼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인간상임을 짐작케 한다.
어떤 인물일까. 별 볼 일 없는 인간상일 게다. 특별한 재능이나 출중한 외모와는 거리가 먼 보통 사람. 어쩌면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외 계층에 가까운 사람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현실을 살아가는 데 힘겨운 사람들. 이들은 슈퍼 히어로를 꿈꾼다. 버거운 현실을 살아내기 위한 자기 최면 같은 심리다.
영웅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소설이 인기 있는 이유다. 현실에서는 늘 패배하지만, 그것을 만회해주는 존재를 마음속에 심는 것으로 우리는 힘든 현실을 이겨낼 수 있다. 대리 만족인 셈이다.
작가가 약한 토끼를 의적과도 같은 악당 히어로로 만든 이유도 같은 심정이다. 안정모 작품이 주는 위안도 같은 맥락이다. 토끼처럼 취급되는 현실이 역전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통쾌함을 주는 인생 역전 드라마가 펼쳐지는 그림이다.
위로나 격려를 넘어 통쾌함까지 주는 그림에는 힘이 있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힘이다. 그래서 안정모의 동화 같은 그림이 인기가 있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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