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도 딱 한 주 남았다. 가는 해를 돌아보며 한 해를 마무리할 때다. 이럴 때 아이와 함께 망우역사문화공원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망우리공동묘지’에서 시작한 공원의 역사도 살펴보고, 그곳에 묻힌 독립운동가와 문화인의 삶도 생각하면서 말이다.
#파리엔 페르 라세즈, 서울은 망우역사문화공원
파리의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다. 이곳에는 음악가 쇼팽을 비롯해 소설가 발자크, 화가 들라크루아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인물 조각상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공원으로 꾸며져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서울을 대표하는 공동묘지인 망우리공동묘지가 지난해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울창한 숲 사이로 운치 있는 산책로를 조성하고 ‘사색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보다 먼저 이 땅을 살아간 이들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의 삶을 생각한다는 뜻을 담았다. 7000여 기의 묘지가 자리한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유관순과 안창호, 이중섭, 박인환 등 우리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다 간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이곳에 공동묘지가 조성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의 일이다. 1920년대 전후로 서울의 동서남북에 조성된 공동묘지들이 가득 차면서 새로운 공동묘지가 문을 연 것. 이후 한국전쟁 기간에 시내 곳곳에 가매장되었던 시신들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망우리는 서울을 대표하는 공동묘지가 되었다. 1973년 4만 7700여 기의 무덤이 묘지 공간을 가득 채우면서 더 이상 여유 공간이 없어져 공동묘지로서의 역할이 끝났다.
망우리에 묻혀 있던 위인들이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1997년 독립운동가와 문학인 등 15명의 위인 무덤에 추모비가 세워졌고, 이듬해에는 ‘망우리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추모비가 점차 늘어나면서 2013년에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2016년에는 망우리 인문학길 사잇길 2개 코스가 조성되었고, 2021년 공원화 작업을 마친 뒤에는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여기에 올 4월 문을 연 ‘중랑망우공간’이 더해지면서 서울의 대표 역사문화공원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에서 방정환 선생까지 숨은 묘지 찾기
망우역사문화공원 정류장에서 내려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유관순과 지석영, 계용묵 등 이곳에 묻힌 인물들의 사진과 약력이 적힌 배너가 이어진다. 조금 더 올라가면 배너가 끝나는 곳에 전시와 홍보, 교육 공간인 중랑망우공간이 방문자들을 맞는다. 전시관과 전망대, 카페 등을 갖춘 중랑망우공간은 방문자 센터를 겸하고 있다. 이곳에서 관련 전시를 본 후, 근현대사 인물들의 묘역 위치가 표시된 망우역사문화공원 팸플릿을 받아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중랑망우공간을 나와 조금 더 올라가면 공원에 안장된 주요 인물의 사진과 이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인물광장이 있다. 이곳에서 왼쪽 길로 조금만 가면 유관순 열사가 잠든 ‘이태원 합장 분묘’가 나온다. 3·1운동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난 유관순 열사는 일본 경찰의 감시 속에 비석도 없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1935년 이태원 일대가 개발되면서 무연고 묘지 2만 8000여 기가 망우리 묘지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시신은 모두 화장해서 한꺼번에 묻었다. 비석이 없던 유관순 열사의 묘지 또한 무연고로 처리되어 이곳에 묻혔다.
다시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우리나라 최초로 종두법을 전파한 지석영과 근대 최고의 서양화가로 꼽히는 이인서의 묘를 지나 도산 안창호의 무덤이 나온다. 초창기 임시정부를 이끈 안창호는 일제에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유언에 따라 자신이 아끼던 수행비서 유상규 곁에 묻혔으나, 1973년 강남구 신사동에 도산공원을 조성하면서 이장되었다. 현재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사망 당시 세웠던 비석만이 남아 있다.
다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소파 방정환, 만해 한용운, 죽산 조봉암 등의 묘지가 줄줄이 이어진다. 묘지 곁의 안내판만 읽어도 근현대사 공부가 저절로 되는 셈이다.
<여행정보>
망우역사문화공원
△위치: 서울시 중랑구 망우로91길 2△문의: 02-2094-6800
△운영시간: 상시, 연중무휴(중랑망우공간은 09:00~18:00, 주말/공휴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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