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크리스마스는 유럽 최대의 명절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26일까지 연휴이고, 새해가 시작되는 1월 전까지 보통 휴가를 낸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대목인 업종은 드디어 큰 이벤트를 마치고 긴 휴식에 들어갈 것이다. 가전과 최신 디지털 제품 관련 스타트업은 1월 5일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박람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24일~26일은 누구도 연락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전화기를 꺼두어도 되는 그런 날숨의 기간이다.
이 기간 창업자들과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무엇을 할까.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한다. 평소 소홀했던 가족을 챙기고, 읽지 못한 책을 읽는다. 링크드인 뉴스피드를 통해 연결된 유럽 스타트업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휴가에 어떤 책을 읽는지 살펴보았다. 대부분 실리콘밸리나 미국에서 발행된 책을 소개하는데, 이번 칼럼에는 유럽 출신 작가 세 명의 책을 소개한다.
#아내의 아이디어로 남편이 창업한 뒤 벌어지는 일 ‘스타트업 와이프’
소설 ‘스타트업 와이프(The Startup Wife)’는 파리에서 다양한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마리옹 샵살 드 모르기(Marion Chapsal de Mourgues)의 추천 도서다. 영국 작가이자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타흐미마 아남(Tahmima Anam)의 2021년 작으로 스타트업계뿐만 아니라 산업계에 만연한 ‘여성이 배제되는 상황’에 대한 일종의 풍자 소설이다.
아내가 앱의 아이디어를 구상해서 만들었는데, 남편 이름으로 스타트업을 설립해 돈을 벌면 어떻게 될까? 타흐미마 아남이 소설 ‘스타트업 와이프’에서 답하고자 했던 질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내 아샤(Asha), 남편 사이러스(Cyrus)다. 아샤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직접 코딩해 앱을 만든다. 그녀가 만든 SNS는 종교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 대체용 커뮤니티’ 와이(WAI, We Are Infinite). 조직화된 종교는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의식을 치르고 어딘가 소속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플랫폼 ‘와이’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유색인종 여성인 아샤보다 백인 남성인 사이러스의 말과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를 원한다. 아샤도 쉽사리 자신은 ‘뒤에 있기’를 바라며, 사이러스를 일종의 메시아이자 위대한 스타트업 CEO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소설은 작가의 경험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타흐미마 아남은 남편이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나서 이사회에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 유럽에서 자랐지만 방글라데시 출생의 유색인종이자 여성인 타흐미마 아남은 스타트업에 만연한 차별적 상황과 언어를 맞닥뜨리게 된다. 자기 말이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될 때마다 이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였다.
많은 스타트업 관계자가 이 책을 보고 “실제 스타트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 내부를 너무도 생생하게 잘 묘사했다”고 평하는 것은 그녀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다. 때로는 소설이 현실에 더욱 가까울 때가 있다. 창업의 A부터 Z까지 알려주는 실질 이론서보다 더욱 큰 인사이트를 주는 소설이다.
#예술, 창의성이 스타트업에 필요한 이유 ‘창의적 사고의 기술’
로스 주드킨스(Rod Judkins)의 ‘창의적 사고의 기술(The Art of Creative Thinking)’은 영국의 브랜드 크리에이팅 스타트업 플라잇 스튜디오(Flight Studio)의 CEO 스티븐 바틀렛(Steven Bartlett)의 추천 도서다.
로드 주드킨스는 영국의 화가이자 작가다. 독창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유명한 영국의 예술대학 센트럴 세인트마틴(Central St. Martins)에서 ‘창의적 사고’에 대해 강의하며 애플, 구글, 삼성, 영국 왕립병원 등 전 세계 수많은 기업과 기관에서 워크숍과 강연을 해왔다. 한국에도 ‘천재들의 창의력’,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돼라’ 등의 책이 출판됐다.
로드 주드킨스는 ‘창의적 사고의 기술’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87가지 창의적인 솔루션을 제안한다. 자신이 고안한 방법이 아니라 그동안 성공한 창업가, 혁신가의 습관을 꾸준히 관찰한 결과다.
“상어가 들끓는 바람에 스쿠버 다이빙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로드 주드킨스는 “세계 최초의 익스트림 다이빙 스쿨을 연다”고 답한다. 이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들 다양한 창의적 해결책을 탐구한다.
이 책에는 목차나 색인이 없다. 각 장이 나뉘어 있지만, 저자는 순서대로 읽을 것을 권하지 않는다. 제목이나 짧은 주제, 필요한 인용문을 살펴서 그때그때 필요한 영감을 얻으라고 권한다.
특히 전문가, 학자, 사업가 등 모든 영역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을 추천한 스티븐 바틀렛은 특히 마음에 드는 구절로 다음을 꼽았다. “다른 이의 견해 때문에 산만해지지 말 것. (중략)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혁명적 사상가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에 의해 움직인다(Don't be distracted by the views of others. (중략) Revolutionary thinkers who create totally new ideas are driven by their interests, not whether or not others are interested too)”.
#나를 지키며 일잘러 되기 ‘열심히 일하면서도 거의 일하지 않기’
‘열심히 일하면서도 거의 일하지 않기(Working hard, hardly working)’는 요즘 유럽 스타트업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인플루언서 그레이스 비벌리(Grace Beverley)의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레이스 비벌리가 올해 6월부터 시작한 동명의 팟캐스트와 유튜브에 열광한다.
그레이스 비벌리는 1997년생으로 영국의 대표적인 MZ세대 창업자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운동, 채식 생활에 중점을 둔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만드는 인플루언서로 이름을 알린 뒤 피트니스 의류 회사 짐샤크(Gymshark)와 협력하면서 비즈니스 세계로 들어왔다. 이후 인플루언서들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플랫폼 젠플로우(Genflow)의 도움을 받아 슈레디(Shreddy)와 탈라(TALA)를 창업했다.
슈레디는 피트니스 관련 용품을 만들고 운동 일정을 짜주는 앱을 운영한다. 탈라는 업사이클링된 플라스틱 병으로 의류를 만든다. 그레이스는 회사 운영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은 많은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면서도 거의 일하지 않기’를 집필했다.
인플루언서이자 창업자인 그레이스가 소셜미디어와 메신저를 통해 계속 사람들과 연결되고 켜져(ON)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번아웃 되지 않고 개인적 삶과 균형을 이루는 다양한 팁을 제공한다.
그레이스 비벌리는 스스로를 ‘게으른 일 중독자’라고 부른다. 그녀의 책, 그리고 다양한 창업자들을 인터뷰하는 동명의 유튜브 채널·팟캐스트는, 일을 잘하고 싶지만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일하고 싶은 요즘 MZ세대 창업자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스타트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인생의 창업가다. 그렇기에 새해가 다가오는 이때, 모두에게 창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 필요하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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