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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정부 공언 1년, 현장은 지금…

공정위·경찰청까지 합세, '사업자단체 논쟁' 본격화…"아직 변화 못 느껴"

2022.12.23(Fri) 15:46:38

[비즈한국] 정부가 건설현장에서 벌어지는 채용 강요와 점거 등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집중 단속을 벌인 후 1년이 지났다. 국무조정실과 고용노동부·경찰청·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 등 다수의 관계 기관이 연계 체계를 구축해 나섰다. 정부가 2020년부터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나섰지만 단일 기관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법적 조치로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경찰청이 총 103명을 검찰에 송치했으나 그중 1명만 구속됐고, 고용노동부는 현장 두 곳에 과태료 총 6000만 원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이후 공정위는 채용 강요 등이 발생한 20여 건의 사례에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위반 혐의를 적용할 방침을 시사했다.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작된 지 1년, 불법행위가 만연하던 건설현장은 달라졌을까.

 

건설노조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1년여 지속됐으나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두드러진 변화는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건설현장. 사진=비즈한국DB


#전국 18개 시·도에 지역 실무협의체 구성​

 

2022년 1월 윤창렬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태스크포스(TF) 추진 경과 브리핑에서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건설현장 불법행위가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과태료 부과, 경찰 수사 외에도 건설현장 채용질서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갈등이 심한 현장에는 지역별 실무협의체를 함께 구성하는 등 종합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현장에서는 일부 노조가 사업주에게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불법 점거, 공사진행 방해, 태업 등 관행적으로 불법행위를 자행해왔다. 그 수위가 갈수록 올라가고 소규모 현장에서까지 벌어지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 개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서울 구로구의 한 인력사무소 소장 A 씨는 “일자리를 얻고 싶은 평범한 노조원이 아니라 집회만 담당하는 인력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현장 사업주도 못 막는 규모인데 혼자 운영하거나 기껏해야 직원 한두 명을 쓰는 일반 사무소에서 어떻게 상대하겠나”라고 하소연했다.

 

건설기계 대여업 사업자이자 건설기계를 ​직접 ​운전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인 건설기계 임대사업자들도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건설노조들이 자기네 조합원 장비로 건설기계를 교체하라며 현장을 봉쇄하는 사례가 반복됐다.  

 

당시 윤 국무1차장은 “그간 정부도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처벌하려 했으나, 노조의 보복을 두려워한 사업주의 소극적 태도나 법을 이용해 사업주를 괴롭히는 노조의 행위 등으로 인해 현장을 개선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노조의 합법적 활동을 적극 보장할 것이지만 불법행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정부는 올 3월 채용강요 등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방안을 수립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국정과제에 반영, 전국 18개 시·도에 지역 실무협의체를 구성했다.

 

건설현장 규제개혁 민당정 협의회에서 발언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위)과 서울 시내에 위치한 인력사무소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박은숙, 강은경 기자


#강경 대응 나선 윤 정부, 현장 체감은 ​아직

 

2021년 말 물꼬를 튼 범정부적 대처는 노조의 불법 행위에 강경한 인식을 드러내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맞물려 구체화했다. 경찰은 국토부와 함께 내년 6월까지 200일간 특별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권은 최근 세종시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을 찾아 “(일부 노조가) 채용과 장비 사용을 강요하고 월례비 명목으로 금품을 뜯어가면 인력사무소나 중개 앱을 통해 정당하게 일자리를 얻고 대우 받아야 하는 대다수 서민 노동자들이 피해를 본다”며 “정부에서 더 이상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아직 없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노조가 점거해 그날 현장은 공치거나, 일감이 줄어드는 일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앞서의 A 씨도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고 밝힌 후 관련 뉴스를 계속 확인하고 있지만 당장 현장에서 크게 개선된 점은 없다”면서도 “수년간 손도 못 대던 문제였기에 하루아침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건설기계 업계는 조금 더 긍정적인 반응이다. 공정위는 최근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영종크레인지회를 사업자단체로 분류해 제재했다. 건설기계 특고 노조를 사업자단체로 판단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채용 강요나 불법 점거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행위의 수위가 다소 수그러든 상황”이며 “정부와 조정 중인 사안이다 보니 노조 쪽에서도 주의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21일에는 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 사건을 심의하는 공정위 전원회의가 열렸다. 전원회의는 법원의 재판 격이다. 쟁점 중 하나는 ‘건설기계노동자의 노동자성’이다. 부산건설기계지부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레미콘 운송 중단, 건설기계 운행 중단, 현장 집회 등 압력을 행사해 건설사에 비조합원과의 계약을 해지하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는다. 굴착기, 펌프카 등을 가지고 있는 임대사업자들은 노동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최근 지방 건설현장을 중심으로 건설기계 임대사업자로 구성된 노조의 ‘일자리 독식’ 사태가 심화하며 노조가 부적절하게 일감을 따낸다는 비판이 일었다. 

 

건설기계 임대사업자 노조는 대형 건설기계를 여러 대 소유해 운영하는 경우에도 노조원으로 활동하며 사업을 영위한다는 점, 소속 조합원에게만 배타적으로 개선된 노동 조건을 적용해 ‘노동조합’의 성격과 상충된다는 점 등이 문제로 거론된다. 심판회의에서는 △노조가 단체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기계를 활용해 불법 점거하거나 무력을 사용했는지 △비조합원을 현장에서 내보내는 등 비조합원의 자율적인 경제 활동을 제재한 사실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검증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정위는 대형 건설기계를 임대해 운영하는 건설기계 임대사업자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원회의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는 “노조는 조합원 모두가 기계를 한 대씩 가지고 있는 1인 차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인 차주임을 증명하는 가입 절차가 있다는 것은 입증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노조에는 기계를 소유하지 않은 순수 조종사가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노조 측은 “건설기계 임대료를 올려 조종사의 임금을 올린다”고 주장했지만 회의에서는 이 주장이 노조 활동 취지와 맞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노조 불법행위를 막는 대안으로 공정거래법이 본격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노동계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다. 이번 심의에 앞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건설노동자를 ‘사업자’로 판단했으니 화물노동자 역시 사업자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는데,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건설산업연맹은 이 발언이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원칙을 깨고 심판회의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공무상 기밀누설죄’에 해당한다고 고발했다.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커지는 만큼 건설노조를 사업자단체와 동일선상에 두고 제재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기계 임대사업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창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대사업자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단이 없어서 건설기계 노조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에도 건설기계를 실제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개인사업자를 대변하는 주체가 없다. 이와 관련해 건설기계개별연명사업자협의회 관계자는 “지역별 번호판에서 곧 전국 단위 시스템으로 전환되는데, 시행 전 대한건설협회 등 관련 단체가 실무 회의에 참여해 검증하는 등 미미하지만 변화가 있었다”며 “그동안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던 상황에 비하면 긍정적인 신호”라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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