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부동산 경기 침체로 대형 건설업체들은 신용경색에 중소·중견건설업체에는 줄도산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금리 급등에 금융사들이 돈줄을 죄면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발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고 미분양까지 급습하면서 건설업계의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 년간 건설업계를 강타한 쓰나미 상황과 판박이라는 우려가 업계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일부 대형 건설사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이달 들어 하향 조정에 나서고 있다. 핵심은 PF발 신용위기 우려가 커져 자금경색이 심화된 건설사들이다. 신용등급 하향은 이자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자금 경색을 더욱 악화시킨다. 업계에서는 신용평가사들의 건설사들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과 한국신용평가(한신평)은 지난 20일 시공능력평가순위 8위 롯데건설(A+)과 17위 태영건설(A), 25위 한신공영(BBB+) 등의 회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일제히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롯데건설의 부동산 PF 우발채무는 지난달 말 기준 5조 8000억 원으로 지난 5년간 4배 가까이 늘었다. 우발채무란 현 시점 재무제표에는 부채로 잡지 않지만 향후 우발 상황에 따라 부채로 바뀌게 되는 금액이다. 롯데건설은 내년 1분기까지 갚아야 할 PF 우발채무만 3조 4000억 원에 달하지만 PF 사업장 중 75%를 착공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다.
롯데건설은 최근 유상증자와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등 계열사를 통해 1조 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한 상황이다. 롯데건설은 1년 만기로 2500억 원 어치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회사채 발행은 계열사들로부터 조달한 단기차입금 이자 상환을 주목적으로 한다. 회사채에 대한 지급보증을 롯데케미칼이 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채권안정화펀드에서 건설경기 안정 명분으로 그 절반에 해당하는 1250억 원 어치를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을 보여 발행 성공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롯데건설의 회사채 발행 성공 여부는 향후 건설업계의 자금조달과 관련해 안팎에 시사하는 바가 커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신평사들은 태영건설에 대해 9월 말 기준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가 각각 441%, 46%로 재무건전성이 악화했다고 평가했다. 11월 말 기준 PF 우발채무는 2조 1000억 원 가량으로 일부 우발채무 위험이 현실화되며 실질적인 PF 우발채무 부담이 이전보다 늘어났다.
한신공영의 경우 지방 소재 자체사업을 다수 진행하면서 수익성 하락과 재무 부담 확대 추세가 지속되고 있어 위험 수준이 높다고 평가됐다. 한신공영은 단기간 내 재무구조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부정적으로 하향됐다.
앞서 지난 13일 한신평은 시공능력 23위 동부건설(신용등급 BBB)에 대한 등급전망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하향했다. 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른 원가 부담으로 수익성 저하가 예상된다는 게 조정이유였다.
미분양에 입주난까지 겹치면서 내년 상반기 중소·중견사가 연쇄 도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국토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2월 20일 기준 종합건설사의 폐업 신고는 180건으로 지난해 하반기 135건 대비 33.3% 이상 급증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현재까지 종합건설업체로 등록한 건설사 중 총 5곳이 부도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경남 2곳, 부산 3곳 등이다.
복수의 중견 건설사 관계자들은 “그나마 현금 및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그룹에 소속돼 있을 경우 계열사 지원, 상장사의 경우 증자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는 대형 건설사들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이런 마당에 단순 도급 위주의 사업을 주로 하는 중소·중견건설사들의 경우 현재와 같은 상황을 버틸 재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지난 19일 내년 주택시장 전망을 통해 “건설업체의 자금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내년 상반기 중 보유현금이 부족한 건설업체부터 부도가 속출하고, 이들 업체에 자금을 지원한 2금융권으로 부실이 전이될 수 있다”며 “외환위기 때는 주택담보대출과 건설사업에 PF 조달방식이 거의 없었고 금융위기 때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평균 38% 수준으로 낮았고 PF 조달비율도 높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재 상황이 더욱 리스크가 크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를 아우르는 공통의 공포 분모는 미분양 사태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4만 7217가구다. 지난해 말 1만 7710가구에 비해 10개월 만에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건설업계 자금난에 10월까지 주택 착공 실적은 33만 가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 급감했다.
고금리 현상 지속에도 건설사들은 이자 비용 절감과 생존을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상당 기간 분양을 쏟아낼 수밖에 없어 미분양이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팽배하다.
지금까지 미분양 사태가 가장 심각했던 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다. 2008년 지방 비인기 지역에 아파트가 쌓이면서 미분양 물량이 16만 5000가구를 넘어섰다. 그 여파가 수 년간 지속되면서 시공능력평가 100위 내 건설사 중 40개 이상 건설사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저축은행 3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정부는 부동산 PF 리스크와 관련해 21일 발표한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PF 부실사태 방지를 위해 내년 1월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부동산 PF 보증을 5조 원 확충하기로 했다. 또 5조 원 규모의 미분양 PF 보증과 단기 자금조달 수단인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장기 대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사업자 보증을 신설하기로 했다. 하지만 턱 없이 부족한 대책이라는 지적이 건설업계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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