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로 증권시장이 차갑게 얼어붙은 가운데, 올해 증권시장에서 퇴출된 기업은 28곳이다. 대부분은 회계 감사 과정에서 재무 투명성을 담보하지 못해 ‘감사의견 거절’ 통보를 받고 상장 폐지 수순에 올랐다. 안전한 투자 종목으로 각광받던 ‘스팩(SPAC)주’와 고배당 종목으로 인식되던 ‘우선주’ 일부도 시장이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 비자발적으로 증시를 떠나게 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유가증권(코스피)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당한 기업은 28곳이다. 각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4곳(폴루스바이오팜, 신원우, KG스틸우, 동양3우B)과 코스닥 상장사 24곳이 비자발적으로 시장을 떠났다. 기업 수명이 최대 3년으로 정해진 기업인수목적회사를 제외하면 이들 기업의 상장 기간은 평균 16.7년이었다. 지난 6월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 폐지된 모바일 부품업체 에이치엔티는 상장 기간이 5년여로 올해 증권시장에서 퇴출당한 기업 중 상장 기간이 가장 짧았다.
증권시장 퇴출 사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감사의견 거절이다. 총 10개 기업이 회계감사 결과 감사의견 거절 통보를 받고 증권시장을 떠났다. 감사의견은 재무제표가 실제 재무상태와 경영성과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를 공인회계사가 감사해 평가한 의견이다. 크게 적정의견, 한정의견, 부적정의견, 의견거절로 나뉜다. 의견거절이나 부적정의견을 받으면 기업은 상장 폐지 절차를 밟는다. 부적정의견은 회계 기준 위반으로 재무제표가 왜곡됐을 때, 의견거절은 감사에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의견 표명이 불가능하거나 기업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을 때 낸다.
올해 감사의견 거절로 증권시장에서 퇴출당한 기업은 폴루스바이오팜, 테라셈, 소리바다, 한프, 세영디앤씨, 현진소재, 지스마트글로벌, 뉴로스, 매직마이크로, 에스에이치엔엘이다. 통신장비와 바이오시밀러(동등생물의약품) 사업을 벌이는 폴루스바이오팜의 경우 2년 연속 감사의견 거절을 받으며 올해 2월 코스피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레드로버, 에이치엔티, 참존글로벌, 연이비앤티, 스포츠서울 등 5개 기업은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결과 ‘기업의 계속성 및 경영 투명성’을 이유로 증권시장에서 퇴출됐는데, 임직원 배임·횡령 등 세부 양상은 달랐지만 모두 상장 폐지 전 감사의견 거절 통보를 받았다.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9곳은 인수·합병할 회사를 찾지 못해 증권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스팩이란 비상장 우량 기업을 발굴해 인수·합병할 목적으로 설립한 서류상 회사를 말한다. 일반 기업처럼 주식이 증시에 상장돼 거래되지만 3년 내 인수·합병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자동으로 상장 폐지된다. 일반 기업과 달리 스팩은 상장 때 공모자금의 90% 이상을 외부에 위탁해 상장 폐지 시 투자자에게 공모자금과 예치 이자를 나눠준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처로 꼽히는 이유다.
올해 인수합병 기업을 찾지 못해 증권시장에서 퇴출당한 회사는 하나금융14호스팩, 하이제5호스팩, 케이비제19호스팩, 상상인이안제2호스팩, 이베스트이안스팩1호, 케이비제18호스팩, 케이프이에스제4호, SK6호스팩이다. 여기에 지난 13일 상장폐지 결정된 이베스트기업인수목적5호도 23일 정리매매를 마치고 오는 26일 최종 상장 폐지된다. 이로써 올해 상장 폐지되는 스팩은 지난해보다 2곳 증가한 9곳이 됐다.
코스피 시장에 상장된 우선주 종목 KG스틸우, 동양3우B, 신원우는 상장주식수가 2반기(1년) 이상 미달해 증권시장에서 퇴출당했다(관련기사 신원우·동양3우B·KG스틸우 상폐 기로 '롤러코스터 주가' 불안 증폭).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는 대신 기업 배당이나 해산 시 잔여재산 배분에서 우선적인 지위를 갖는 주식을 말한다. 이들 우선주는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0월 우선주 상장폐지 요건을 기존 상장주식 ‘5만 주 미만 또는 시가총액 5억 원 미만’에서 ‘상장주식 10만 주 미만 또는 시가총액 10억 원 미만’으로 강화하면서 상장폐지 사정권에 들어왔다. 올해 10월 이 요건은 ‘상장주식 20만 주 미만 또는 시가총액 20억 원’ 미만으로 재차 강화됐다.
이 밖에 코스닥 상장사 자안바이오는 발행한 어음이 부도 처리돼 올해 1월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IBK기업은행 역삼남지점에서 발행한 전자어음 12억 8681만 원을 갚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한편 금융감독원이 지난 11월 2017년 이후 상장 폐지된 75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상장 폐지된 기업들은 상장 폐지 전까지 영업손실 지속 등 ‘관리종목’ 지정 사유나 횡령·배임 혐의 등 ‘실질심사대상’ 지정 사유가 연쇄·복합적으로 발생했고, 관련 사유 최초 발생 후 3년 이내 상장 폐지에 이르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 폐지 직전에는 대규모 당기순손실이 확대돼 자본잠식이 심화하고, 이를 모면하기 위한 유상증자 등 자본확충도 수반됐다. 금융감독원 측은 “최근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상장기업들이 자금조달 등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투자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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