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22년 유럽 스타트업과 테크신에는 다소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투자 위축, IPO 시장 축소, 대규모 해고뿐만 아니라 여성 창업자들에게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럼에도 새해를 준비하는 스타트업들이 주목해야 할 긍정적인 데이터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번 칼럼에서는 유럽 VC 아토미코(Atomico)가 발간한 ‘유럽 테크신 연간 보고서(The State of European Tech 2022)’를 바탕으로 2023년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살펴보겠다.
#그럼에도 나아지고 있다: 여성 창업자들의 지분 거래율 증가
여성 창업자들의 지분 거래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소 고무적이다.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창업팀 중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서 지분 거래가 2021년에 비해 증가했다. 여성과 남성이 섞인 창업팀은 반대로 2021년에 비해 지분 거래가 감소했다.
#외부 환경은 나쁘지만 낙관론 많아
좋지 않은 환경이었음에도 유럽 테크신에서는 이 위기를 극복할 ‘회복력(resilience)’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인 의견이 앞선다. 설문 응답자의 77%는 앞으로 상황이 낙관적일 것이며, 1년 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좀 더 나아질 것을 기대했다. 응답자의 23%만이 ‘2021년 대비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는 테크신 관계자들이 대부분 현재의 경기 침체가 중단기적 상황으로 장기 전망과는 구분 지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응답자들은 유럽 기술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창업자, 투자자, 정책가, 테크회사 직원 등 2100명의 현직자들이다.
스타트업 아바큠(Abacum)의 창업자 훌리오 마르티네스(Julio Martinez)는 이번 설문에서 “지금의 위기를 액셀러레이팅 기회로 만드는 회사가 ‘적자’로서 ‘생존’한다. 현재의 경제 상황은 고객이 당면한 실제 문제에 집중할 완벽한 기회다. 어려운 시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아바큠은 202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설립해 미국에 진출한 스타트업으로 재무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탄탄하고 풍성해진 유럽의 스타트업 생태계
또 하나 내년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의 규모와 깊이가 이제 궤도에 오를 정도로 단단해졌다는 점이다. 이는 막 시작하는 프리 시드나 시드 단계의 초기 스타트업 수가 급속하게 늘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2021년 말까지 프리 시드와 시드 단계의 투자 라운드는 10년 만에 8배, 2010년 대비 17배 이상 증가했다. 지금의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는 10년 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의미다.
2022년 프리 시드와 시드 단계의 투자 라운드는 2021년 대비 감소했지만, 전반적인 파이프라인은 강해졌다. 스타트업 문화의 탄생지이자 전 세계 테크신을 이끄는 미국과 동등한 수준이다. 전 세계 프리 시드와 시드 투자금의 31%가 유럽 스타트업에, 33%가 미국 스타트업에 유입됐다.
유럽 테크 생태계의 성숙도가 높아졌다는 또 다른 지표 중 하나는 ‘한 세대의 회사에서 다음 세대의 회사로 인재가 이동하는 속도와 규모’다. 성장을 만드는 선순환의 수레바퀴를 의미하는 플라이휠(Flywheel) 모델이 유럽 생태계의 성장 모델에서 고스란히 보인다.
성공한 유럽 테크회사 출신들이 새로운 스타트업을 창업해 또 다른 성공 사례로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2000년대 설립된 1세대 유니콘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설립한 2세대 스타트업 창업자가 약 1500명이다. 이렇게 2000년대에 창업한 유니콘과 2010년대에 창업한 유니콘 스타트업의 창업자 수를 살펴보면, 플라이휠의 가속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조금 더 들여다보자면 유럽 스타트업 창업자의 55%, 스타트업 리더급의 59%는 1세대와 2세대 스타트업에서 모두 일한 경험이 있다. 창업자의 40%는 이전에 회사를 설립한 경험이 있고, 이 중 20%는 최소 2개 이상의 회사를 설립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창업자의 33%, 스타트업 C레벨 수준(최고경영자급)의 리더 45%가 해외 근무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유럽 토박이’보다 글로벌한 안목을 가진 인재가 스타트업을 더욱 잘 이끈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다세대에 걸친 스타트업 경험, 스타트업 리더들의 글로벌한 배경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전에 다른 경제 위기, 즉 하강 국면을 경험해본 창업자와 리더가 많다는 것이다.
2022년의 경제 침체와 불황뿐만 아니라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미 많은 창업자를 시험했고 불확실성에 대처하도록 훈련시켰다. 따라서 ‘경험 많은 창업자’들이 이끄는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는 현재의 단기적 관점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조심스레 낙관해볼 수 있겠다.
투자 부분에서 2022년은 2023년에 비해 투자자의 수가 소폭 감소했지만, 투자금 중 아직 집행되지 않은 자금(Dry Powder)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 말 유럽 VC와 투자자들은 총 840억 달러(109조 원)에 달하는 드라이 파우더 자금에 의존했다.
2022년에는 투자 자금이 모이긴 했지만 경제 상황이 위축돼 전반적으로 자금의 배치가 늦어졌다. 따라서 2023년 상황이 더 나빠지더라도 자본 유동성은 확보된 셈이다. 다만 주의할 것은 자본이 배치되는 속도다. 시장 상황에 따라서 투자자들이 자본 투입의 시기, 양, 속도를 조절할 것이다.
두 번째 생을 사는 ‘재벌집 막내아들’이 아닌 한, 미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거시적인 흐름과 그 흐름을 결정짓는 세부적인 데이터를 살피면 무엇을 해야 할지, 크게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정도는 알 수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바라보는 지금, 스타트업은 지나온 숲과 그 숲을 이루는 나무, 그리고 숲을 가꾸는 여러 요소의 현 상태를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모든 혁신가의 건투를 기원한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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