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여성가족부가 부여하는 가족친화인증을 받은 기업 및 기관이 올해 처음으로 5000곳을 넘어섰다. 일과 가정생활이 양립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선보이는 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대기업 중심으로 ‘아빠 육아휴직’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남성도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인데, 실제 기업에서 제도를 활용하는 남성은 얼마나 될까. 비즈한국이 주요 대기업의 남성 육아휴직 현황을 확인했다.
#LG전자 221명, 카카오 10명…업종별 편차 커
비즈한국은 시가총액(2022년 12월 14일 기준) 상위 30개 기업 중 남성 육아휴직자 수를 공개한 21개 기업의 육아휴직 현황을 조사했다. 21개 기업에서 지난해 육아휴직을 신청한 남성은 모두 1304명으로 전년(1282명)보다 소폭 늘었다. 여성 육아휴직자 수는 4400명이었다.
눈여겨볼 점은 업종별로 남성 육아휴직자 수의 편차가 크다는 점이다. 남성 근로자가 많은 제조업 부문에서는 남성 육아휴직자 수가 높았지만 금융·IT 업종에선 휴직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직원이 세 자릿수를 기록한 곳은 제조업종인 LG에너지솔루션, LG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이다. LG전자는 지난해 육아휴직을 사용한 531명 중 남성이 221명(41%)으로 집계됐다. 현대차는 지난해 육아휴직 사용자 중 남성이 188명, 여성은 162명이었다. 남성 육아휴직자 수가 여성보다 더 많은 것은 전체 임직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94%)이 현저히 높은 탓으로 보인다. 전체 임직원 중 남성 직원이 96%를 차지하는 기아 역시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93명) 수가 여성(61명)보다 많았다.
반면 남성이 많은 대표 업종 중 하나인 IT 부문은 남성 육아휴직자 수가 적다. 네이버는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 수가 21명으로 집계됐다. 여성 육아휴직자는 88명이다. 카카오는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 대상자가 535명이었지만 사용자는 10명으로 나타났다. 2020년에는 남성 육아휴직 대상자 429명 중 13명이 제도를 사용했다. 두 기업 모두 전년보다 육아휴직 신청자가 줄었다.
제조업과 IT 부문의 남성 근로자 비중이 모두 높은데도 차이가 나는 것은 재택근무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카카오 관계자는 “카카오는 임직원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신청자는 2년의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며 “지난해 육아휴직자가 적은 것은 재택근무의 영향이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많이 하게 되어, 자녀 양육을 위해 휴직이 꼭 필요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금융권은 아직까지도 남성의 육아휴직에 보수적인 분위기다. KB금융그룹은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 수가 97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 중 11%에 불과했다. 2020년에는 9.6%, 2019년에는 7.4%였다. 신한금융그룹의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자 588명 중 남성은 41명(7%)에 그쳤다. 하나금융그룹도 남성 육아휴직자가 전체 휴직자 중 4.1%에 불과했다.
#중소기업까지 확산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육아휴직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8세 이하 자녀 양육 시까지 1년의 유급 육아휴직을 보장한다. 이는 2020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인 9주에 비하면 5배가 넘는 것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기간이 길다.
문제는 잘 만들어진 제도를 활용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 9월 발간한 KOSTAT 통계플러스 가을호에서 육아휴직 활용 현황을 분석한 정성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육아휴직 제도의 수준은 OECD 주요국과 별다른 차이가 없거나 부분적으로는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러나 제도의 활용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우리나라는 대규모 사업체, 공공부문 등 특정 집단 중심으로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남성 육아휴직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지만, 중소기업과 영세기업 종사자에겐 다른 세상 얘기다. 육아휴직 신청이 반려되거나 육아휴직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1년간 육아휴직을 사용한 김 아무개 씨는 “내가 회사 남성 직원 중 육아휴직을 사용한 첫 사례였다”며 “회사가 육아휴직 신청을 받아주면서도 퇴사의 수순으로 생각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회사에서 큰 성과를 냈음에도 육아휴직을 신청하니 ‘어차피 퇴사할 사람’이라며 인사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다른 사람들이 내 사례를 보고도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착잡해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서도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정 연구위원은 “최근 3~4년 사이 남성 육아휴직자가 빠르게 늘어난 건 정부가 육아휴직 급여를 인상하는 등 제도를 사용하게끔 유도한 영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지원도 여력이 되는 사업장 중심으로만 사용되다 보니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공공기관의 남성 육아휴직자가 늘어나는 결과가 나왔다”고 분석했다.
장 연구위원은 “계속해서 정부에 제도적 지원을 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기업의 육아휴직 문화가 중소기업에까지 퍼지길 기대하지만 이른 시일에 이뤄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
"배달앱·쇼핑몰 악성 후기 지워준다" 리뷰 삭제 대행업체 실태
·
[단독] 고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두 딸, 물려받은 오산 땅 1261억에 매각
·
'90년대생은 못 받는다?' 국민연금 2057년 고갈설 팩트체크
·
SPC 불매운동 여파? 파리바게뜨 '굿즈' 중단 속사정
·
"착한 수수료" 내세웠던 공공배달앱 줄줄이 중단, '예견된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