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가 종영을 앞두고 있다(12월 13일 기준). 1화 시청률 3.7%로 시작한 이 12부작 드라마는 시종일관 3%대를 답보하며 화제를 일으키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내가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이하 ‘연매살’)를 꾸역꾸역 시청한 이유는 이상욱 역의 노상현을 보기 위해서다. 종영 시점에 굳이 이 드라마를 소개하는 건 지금이 많은 연예인들이 연예대상, 연기대상, 가요대전 등 연말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매니저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기이기 때문이고.
프랑스의 동명 드라마(Dix Pour Cent)를 원작으로 한 ‘연매살’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들을 움직이게 하는 숨은 공신들인 매니저를 주인공으로 한다. 연예인의 ‘가방 모찌(심부름꾼)’부터 스타를 만들어내는 권력에 이르기까지 매니저를 바라보는 시선의 간극은 넓고도 넓다. 연예인 매니저를 주요 인물로 설정해 연예계 전반의 희로애락을 담은 작품은 이전에도 여럿 존재했다. 10~20대는 잘 모르겠지만 전도연과 조인성, 그리고 ‘연매살’에도 등장하는 이서진이 출연한 2002년작 ‘별을 쏘다’, 김하늘•송윤아•이범수•박용하의 팽팽한 기싸움이 쫄깃했던 2008년작 ‘온에어’라는 흥행작이 있었고, ‘연매살’처럼 동명의 해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2016년작 ‘안투라지’나 올해 방영했던 ‘별똥별’도 있다. 영화로는 안성기•박중훈의 호흡이 기가 막힌 ‘라디오 스타’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거고, 스타와 매니저의 모습을 관찰하는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은 몇 년째 방영 중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연매살’은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은 아니다. 한국 연예계와 매니저의 현실을 나름대로 현실성 있게 담아낸 것 같지만, 시트콤을 보는 듯 매니지먼트의 일상을 가벼운 터치로 접근하면서 드라마적인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회 실명으로 등장하는 스타들의 에피소드가 재미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에피소드를 한 회에 풀어나가고 해결하면서 시선이 분산된다. 매니저의 고충을 담아낸다지만 실상 스타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누가 주인공인지 아리송한 것도 이 작품의 인기가 지지부진한 이유. 그러니 나 역시도 천제인 팀장(곽선영)과 러브라인으로 엮이는 국세청 조사국 팀장 이상욱(노상현)의 매력에만 몰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스타를 뒷받침하고, 더 나아가 스타를 만들어 내고, 때로는 스타와 함께 흥망성쇠를 함께하는 매니저는 꽤나 흥미로운 존재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라고 했던 ‘라디오 스타’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말처럼, 오롯이 혼자 힘으로만 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배우 위해서라면 누구 앞에서든 무릎 꿇는데 0.1초도 걸리지 않는다”던 ‘온에어’의 매니지먼트 사장 장기준(이범수)의 대사가 오글거렸지만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거렸던 건 스타와 매니저의 특수한 관계를 충분히 이해 가도록 설명한 대사였기 때문이다.
‘연매살’에도 단순히 비즈니스 관계로만 설명할 수 없는 스타와 매니저의 관계에 주목한 장면들이 있긴 하다. 오랜 시간 함께한 배우 조여정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 상황을 모면하는 거짓말로 급급하다 난관에 처하는 김중돈 팀장(서현우)의 모습을 담은 1화, 메쏘드엔터를 창립한 왕태자(이황의)와 진선규, 이희준의 오묘한 관계를 보여줬던 2화, 뇌졸중 현상으로 작품 하차 위기를 맞은 배우 이순재가 메쏘드엔터를 찾아 매니저들에게 ‘이번 영화도 끝까지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11화 등에서 그런 장면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그 장면들이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소화해 감동이 남지 않고 짧게 휘발되는 게 문제. 실리 위주로만 움직이는 매니저, 한없이 착하고 진심을 다하는 매니저, 서툴지만 차근차근 성장해가는 매니저 등 주요 인물들을 예상 가능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설정한 것도 매력이 떨어지는 요소다.
낮은 시청률이 안타까울 정도로 쟁쟁한 배우들을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건 그나마 ‘연매살’의 장점. 1화의 조여정을 시작으로 진선규, 이희준, 김수미, 서효림, 수현, 오나라, 박호산, 김수로, 김호영, 김소현, 손준호, 김지훈, 김주령, 다니엘 헤니, 이순재, 그리고 12화의 김아중에 이르기까지 숱하게 많은 배우들이 실제 본인 역할로 등장해 자잘한 웃음을 안겼다. 고부 관계인 김수미와 서효림이 한 작품에서 연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모습이라든가 부부 관계인 김소현과 손준호가 ‘쇼윈도 부부’ 행세를 하는 모습, 세계적으로 히트한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김주령 등 배우들의 실제 관계와 커리어를 십분 활용한 부분은 나름 눈길을 끌었다.
현실에서 가수 겸 배우 이승기와 후크엔터테인먼트와 음원료 정산 문제, 후크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 등 횡령 혐의 등이 불거지면서 ‘연매살’에서 메쏘드엔터를 창립한 왕태자의 대규모 공금 횡령 사실은 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 공교롭게도 마태오 이사를 맡은 이서진이 후크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 시청자 또한 이런 점을 여실히 느낄 테다. 드라마는 단편적이나마 별(스타)을 비추는 빛(매니저)이라는 이상적 관계를 그리고 있지만, 현실은 도리어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형국이라 입맛이 씁쓸하다.
과연 ‘연매살’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연매살’을 보는 연예인들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매니저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소속사와 갈등을 겪고 있는 연예인들이나 반대로 스타들의 갑질로 앓고 있는 매니저들은 이 드라마를 어떻게 볼지 자못 궁금하다. 어쩌면 이젠 연예계 산업을 그리는 드라마에도 박민수나 장기준, 김중돈 팀장 같은 매니저 말고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매니저를 주인공으로 하는 피카레스크물이 등장할 때가 아닐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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