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가장 잘 나가는 부처로 검찰과 기획재정부가 꼽힌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검찰 출신 인사들이 곳곳에 포진한 것은 검찰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이 잘 아는 검찰 인사들을 중용한 탓으로 꼽힌다. 기재부 출신들이 대통령실은 물론 주요 내각을 장악하고 있는 점도 윤 대통령이 검찰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한 때문으로 해석된다.
경제와는 다른 길을 걸어온 윤 대통령이 기재부 출신들에게 경제 정책 추진을 믿고 맡겼다는 것이다. 전임 정부에서 급증한 정부·가계 부채, 낮아진 경제성장률, 하락하는 청년 취업률 등 여러 문제 해결을 위해 기재부 출신들의 정책 입안 및 추진 능력에 기댄 셈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달리 기재부 출신들이 정부 주요 포스트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경제는 성과보다는 우려를 낳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에서 가장 주요한 자리에는 기재부 출신(기재부 전신인 재무부·경제기획원 포함)들이 임명됐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기 때문에 국가 의전 서열 17위임에도 권력의 핵심으로 불리는 대통령실 비서실장에는 김대기 실장이 앉아 있다. 김 실장은 행정고시 22회 출신으로 기재부에서 근무했다. 대통령실 경제수석인 최상목 수석 역시 행시 29회 출신에 기재부 1차관을 지냈다. 박성훈 국정기획비서관은 행시 37회로 관에 들어와 기재부에서 근무하다 부산광역시 경제부시장을 거쳤다. 김병환 경제금융비서관 역시 행시 37회로 기재부에서 일을 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로 들어왔다.
내각에서는 대통령 다음 서열인 국무총리를 맡은 한덕수 총리가 기재부 출신 중 최고 어른이다. 한 총리는 행시 8회로 들어온 뒤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 주미대사 등을 지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행시 25회 출신으로 기재부 1차관과 국무조정실장 등을 지낸 뒤 20대 총선 때 정치에 입문했다. 21대 총선에서 재선된 뒤 윤 정부 출범 이후 부총리로 친정에 복귀했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행시 28회로 기재부 예산 관련 업무를 두루 거친 뒤 기재부 2차관과 보건복지부 차관 등을 역임했다. 행시 25회 출신인 김주현 금융위원장 역시 기재부 출신이다. 우리나라 경제 정책을 입안하고 각 부처를 지휘해 추진할 수 있는 주요 자리에 모두 기재부 출신들이 앉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 부처 중 성골(聖骨)이라 할 수 있는 기재부 출신들이 경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자리를 줄줄이 꿰차고 있음에도 현재 경제 성적표는 물론 향후 경제 전망은 오히려 어두운 상태다. 실제 투자와 소비, 수출 등 경제를 뒷받침하는 버팀목들이 흔들리고 있다. 경기 악화에 기업 재고자산이 180조 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수준으로 불어나면서 기업들의 신규 투자 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설비투자가 2.0% 줄어든 데 이어 내년에는 3.1% 감소해 하락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늘어난 가계부채에 물가까지 뛰면서 소비 심리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출은 반도체 등 주력 제품의 실적 악화 영향으로 두 달 연속 감속하면서 무역수지는 8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무역수지 적자 총액(425억 6000만 달러)은 기전 최대 적자인 1996년(206억 2400만 달러)을 이미 넘어섰다.
내년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9개 주요 외국계 투자은행(IB)이 11월 말 보고서를 통해 밝힌 2023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1%였다. 특히 노무라는 내년 주택가격 하락과 금융여건 악화로 소비가 감소할 것이라며 -1.3%로 역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재부 출신들이 대통령실과 내각 주요 포스트에 앉아있는데도 경제성적표나 전망이 좋지 않은 데는 3고(고물가·고환율·고금리)가 불러온 최악의 세계 경제 상황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예상치 못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미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대폭 인상, 중국의 코로나제로 정책 여파에 따른 경기 둔화 등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기재부 출신이 가진 한계 자체가 이러한 외부 악재를 이겨내기 위한 국내 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점도 경제 성적표가 나쁘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의석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인데 경제 관료 출신답게 지나치게 현 정부의 경제정책 추진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민주당이 받아들이기 힘든 법인세, 상속세 등을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세제 개편안을 내놓아 처리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예산안 역시 각종 복지예산 감액 등을 둘러싼 야당의 반발로 대치 국면이 이어지면서 법정 처리시한(2일)을 넘겼다.
경제계 관계자는 “여소야대 국면인 만큼 야당 정책 등도 고려한 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지만 한 총리나 추 부총리, 김 실장 등 기재부 출신들은 경제 관료로 잔뼈가 굵어서인지 그런 점이 약해 보인다”며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책임을 지는 것은 전 정부나 야당이 아닌 현 정부이고, 결국 정부에서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재부 출신들의 능력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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