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 집 절반은 지어진 지 2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이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 노후주택은 943만 5000호로 전체 주택(1881만 호) 50.2%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지어진 지 20년~30년(서울) 이상 된 건물을 ‘노후·불량건축물’로 규정하고 있다.
정비사업은 노후·불량건축물이 밀집한 동네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말한다. 주민들이나 관할 지자체는 정비사업 절차를 통해 낡고 오래된 집을 허물어 다시 짓고, 도로와 주차장, 공원과 같은 기반 시설을 새로 공급해 동네를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동네 노후 수준에 따라 정비사업은 재건축·재개발·주거환경개선사업 등으로 달리 불린다.
정비사업은 도심지역 주택 공급에 핵심적인 역할도 한다. 회사와 관공서, 은행과 각종 문화시설이 밀집한 도심에는 주택 수요가 많지만,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가용한 땅에는 이미 주택과 상가, 오피스가 빽빽하게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곳에 신규 주택을 공급하려면 다른 용도로 쓰던 땅을 주택 용지로 바꾸거나, 기존 주택을 수직 또는 수평 증축하는 정비사업 방식으로 세대수를 늘려야 한다.
‘재미있는 재개발·재건축 이야기’
송재웅 지음, 미르커뮤니케이션
2만 원
주거 환경 개선과 도심지 주택 공급을 도맡고 있는 정비사업 특징 중 하나는 발주처와 수주처 간 정보 격차가 크다는 점이다. 통상 사업추진 주체로 나서는 주민 대부분은 정비사업이나 주택 건설 사업과는 무관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반면 사업을 수주하는 건설사와 협력업체들은 이 분야를 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이다. 주민들이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체 도움을 받더라도 정비사업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
성공적인 사업 진행을 위해서는 정비사업을 보다 정확하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또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비사업에 대한 학습과 이해도 제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비사업 진행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협력업체들 역시 ‘똑똑한’ 조합원들을 좋아한다. - 50쪽
‘재미있는 재개발·재건축 이야기’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30년을 근무한 송재웅 작가가 정비사업에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송 작가는 삼성물산 수주전략팀 수주기획 및 홍보 담당과장으로 정비사업에 뛰어들어 서울 강남지역 반포주공2단지, 잠실5단지, 대치은마, 신반포3차, 잠실진주, 고덕시영, 둔촌주공 재건축사업 등을 수주했다. 주택사업부 리스크관리 파트장과 강남사업소장을 지낸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는 개포2단지, 개포시영, 잠실진주 아파트 재건축사업과 고덕아남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을 도맡았다.
재개발구역에서 토목공사비로 인한 추가 부담이 발생하면서 조합원과 시공사 간의 분쟁이 잦아 이슈가 되던 때였다. 이에 삼성물산은 ‘지질 여건에 관계없이 토목공사비 확정’ 조건을 제시했다. 반면 A 사는 일반 토사로 토목공사비를 제시해 추후 암반이 나올 경우 토목 공사비가 대폭 증가될 리스크가 있는 변동 조건을 제시했다. 이제 공사비 차이는 의미가 없는 것이 됐다. 오히려 ‘확정공사비’를 제시한 우리 조건이 훨씬 나은 것이었다.-124쪽
‘재미있는 재개발·재건축 이야기’는 주민들과 발주처의 정보 격차를 줄여줄 만한 책이다. 송 작가는 정비사업 최대 거래처인 건설사가 어떻게 정비사업을 수주했고, 수주한 사업이 어떻게 성공했으며, 그 과정에서 파트너인 사업시행자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사업을 임했는지를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냈다. 배경이 되는 사례 다수는 땅값이 비싼 서울 강남권 사업장으로 정비사업 이후 주변 단지보다 높은 분양가와 매매가격이 형성됐다. 사업 시행자와 건설사가 수주 및 시공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업성을 높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예정가격’이란 입찰 전에 미리 정해놓은 공사비용을 말한다. 정부가 국고 부담으로 공사를 발주할 떄는 이 예정가격이 사실상 입찰 상한가격이다. 정부공사의 낙찰가격이 예정가격 이하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정가격은 실제 거래가격을 원칙으로 하되 적정한 거래 실례가 없을 때는 원가계산을 통해 산정한다. 정비사업에도 조합이 시공자 선정을 위해 입찰공고를 할 때 공사 예정가격을 표시하는 경우와 아닌 경우가 있는데 필수 사항은 아니다.-144쪽
무주택 실수요자나 일반인이 정비사업을 처음 접하기도 편리하다. 정비사업 요체가 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2003년 제정돼 내년이면 제정 20돌을 맞는다. 역사는 짧지만 총 142조로 엮은 정비사업 규정과 절차는 다소 복잡하고 현실감이 떨어진다. 이를 단순 해설하는 서적 역시 일반인들이 정비사업을 쉽게 이해하고 중요한 지점을 집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 경험 사례를 중심으로 정비사업 쟁점과 상식을 풀어낸 ‘재미있는 재개발·재건축 이야기’는 일반인에게도 훌륭한 입문서가 될 수 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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