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류나 스포츠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그렇게 하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셔서…정부가 무언가 추진하는데 민간 차원에서 협조를 바라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부당한 압력에 따른 기부금 출연에 대해) 국회에서 입법을 해서 막아주십시오.”
2016년 12월 6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소신발언은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날 특별위원회에는 재벌 총수 9명이 출석했다. 청와대의 압박에 따라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의 주도로 주요 대기업을 비롯해 총 62곳의 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 원 규모의 출연금을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출연금의 대가성 여부를 추궁하는 자리였다.
LG그룹 역시 다수 계열사를 통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각각 48억 원, 30억 원을 출연했다. 그러나 구 전 회장의 소신발언은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피해도 특혜도 받지 않았다”던 정유섭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언급과 함께 LG를 사실상 최순실 사태 무풍지대로 평가받게 했다. 비록 패소했으나 LG화학이 영등포세무서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 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는 지난달 29일 LG화학이 영등포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감액경정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풀어서 설명하면, 법원이 “세금을 되돌려달라”는 LG화학의 요청을 거부한 영등포세무서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은) 설립에 원시적 하자가 있고, 원고(LG화학)는 객관적 검토 없이 사업내용과 설립취지도 알지도 못한 채 출연금 액수만 통보받고 출연했다”며 “(두 재단에 대한)출연과정에서 공익성이 고려됐다고 보거나, 출연행위에서 공익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데다, 두 재단에 대한 LG화학의 출연을 공익성을 띤 기부로 인정하기 어려운 만큼 LG화학의 출연금이 손금산입(당해 연도에 기업회계에서는 재무상 비용으로 처리되지 않았으나 세법 상으로는 인정해주는 것)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법인세법 34조에 따르면 지정기부금단체에 기부한 금액은 기업소득의 10% 한도 내에서 전액 필요경비로 산입된다. 또 10%를 초과하는 기부금에 대해서는 5년에 걸쳐 이월해 공제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각각 2015년 12월과 2016년 3월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됐으나,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며 2017년 6월 30일 지정기부금단체 취소 처분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에 LG화학은 “두 재단에 출연한 기부금이 국고에 귀속돼 돌려받지 못하는데 법인세까지 감액경정 처리가 거부되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LG화학은 2019년 4월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따라 그해 7월 법인세를 수정신고 하고 납부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20년 8월 출연 당시 두 재단이 지정기부금단체였던 점을 들어 영등포세무서에 세금을 되돌려 달라고 요청하는 ‘법인세 감액경정’을 청구했다. 영등포세무서는 같은 해 10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LG화학은 2021년 1월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고, 조세심판원은 2021년 9월 이를 기각했다. 결국 LG화학은 2021년 12월 2일 영등포세무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영등포세무서에서 ‘세금을 깎아서 돌려달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이 같은 영등포세무서의 거부조치가 타당한지를 법원이 확인해 거부조치를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원고인 LG화학이 승소했을 경우 얻을 수 있었던 경제적 이익인 원고소가는 5억 1136만원이다.
이와 관련, LG화학 관계자는 “(미르·K스포츠재단이) 당시 기재부가 고시한 지정기부금단체였으므로 정당하게 기부금 처리를 했는데, 이후 논란이 되면서 세금을 냈다”며 “세금은 냈지만, 법적으로 정확하게 확인을 해보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항소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며 “판결문을 받아 내부에서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eop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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