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 시각으로 12월 3일 토요일 아침, 캘리포니아주 팜데일의 노스럽 그러먼 공장에서 B-21 ‘레이더’(Raider) 차세대 폭격기의 첫 공개(Roll out) 행사가 진행되었다. B-21 이전의 가장 최신 폭격기인 B-2가 첫 공개된 지 무려 34년 만에 처음 공개된 셈이니, 이번 B-21의 공개는 사실상 끊어졌던 미군 폭격기 개발이 부활했다는 선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군용 항공기는 수송기, 공격기, 조기경보기, 정찰기, 그리고 전투기까지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모든 군용 항공기 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만들기 어려운 것이 폭격기다. 우선 전투기보다 훨씬 크기가 크고 많은 무기를 달아야 하므로 엔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고, 각종 레이더와 미사일이 발달한 21세기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자체 방어 능력을 폭격기에 갖출 수 있는 국가도 많지 않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비싼 운용 유지비를 감당하고 싶은 국가가 많지 않다. 그래서 프랑스, 영국과 같은 핵무기 보유국조차 폭격기 개발과 운용을 포기했으며, 전 세계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세 나라만 폭격기 생산과 개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B-21을 이번에 선보인 미국 외에는 진짜 폭격기를 개발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받고 있다. 러시아의 차세대 전투기 ‘PaK-Da’는 20년 이상 개발 중이지만 시제기를 내놓지 못하고 있고, 현재 운용 중인 구형 폭격기들은 최소 30년 이상 운용한 데다가 몇 대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격추되기도 했다.
러시아보다 국방비 투자를 더 많이 하는 중국도 사정은 나쁘다. 중국은 자신들의 유일한 폭격기인 H-6 폭격기의 최신형인 H-6K를 생산 중인데, 이 폭격기는 1952년에 처음 생산한 구소련제 Tu-16 폭격기의 디자인을 그대로 계승해서 문제점이 많다.
즉, 최근 3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오직 미국만이 B-21이라는 새로운 폭격기를 내놓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 중 가장 강력한 미국의 군사력을 상징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세계의 군사력 판도를 바꿀 강력한 무기가 공개된 셈이다.
그렇다면, B-21은 세계에서 가장 향상된 폭격기일까? 사실 이번 첫 공개 행사에서 미국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Lloyd James Austin III) 및 노스럽 그러먼 CEO 캐시 J 워든(Warden Kathy J)이 발언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B-21은 ‘세계 최고의 폭격기’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군용기’, 혹은 ‘세계 최초의 6세대 군용 항공기’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담백하고 정확한 표현을 즐겨 하는 미국 국방 및 방위산업 관계자의 입에서 이런 자랑이 나오는 게 쉽지 않은데, 현재까지 알려진 B-21의 기술적 특성과 면면을 보면 이런 자랑이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B-21은 지구상 가장 발전된 설계 기술로 설계된 군용기이다.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로 실제와 같은 초정밀 3D 설계를 가상으로 구현하고, 설계 과정에서 AI 및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서 최적화를 적용해서 개발 계약 후 불과 7년 만에 실물 비행기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KF-21 보라매도 계약 후 7년 만에 시제기 제작이 완료되었지만, 기존에 이미 구현되거나 존재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반면 B-21에는 기존 5세대 항공기와 차원이 다른 여러 기능들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미국 항공산업의 저력을 보여준다. 심지어 미 공군에 따르면, B-21의 시제기는 자신이 실전에서 사용할 모든 전자장비를 이미 모두 탑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B-21이 ‘최초의 6세대 군용기’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세계 최고의 스텔스 성능이다. 34년 전 B-2 스텔스 폭격기가 나온 후 그동안 VHF 저주파 레이더를 비롯한 스텔스 비행기 탐지 장비가 계속 개발됐고, 그중 일부는 현재 운용 중인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22나 F-35를 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B-21은 일명 ‘카운터 스텔스’ 기술을 파악하고 반영한 ‘카운터 카운터 스텔스’ 군용기로, 현재 연구 중인 그 어떤 레이더나 적외선 추적 장비도 제대로 탐지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B-21은 B-2 폭격기와 유사한 모습이지만 레이더 스텔스 및 적외선 스텔스 기술에서 큰 발전을 이룬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레이더 전파를 많이 발산하는 제트 엔진 공기 흡입구의 설계가 더욱 교묘해져, 정면 노출 면적이 크게 줄었다. 또한 항공기 비행 제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설계한 B-2 특유의 W자형 날개 뒷면도 크게 단순화되어 스텔스 성이 향상되었다.
두 번째 요소는 ‘사이버전 및 합동 교전’ 능력이다. 전작인 B-2는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은밀히 혼자서만 움직였다. 반면 B-21은 은밀히 침투하면서도 아군에게 정보 공유와 네트워킹, 그리고 전자전이 가능하다. F-22와 F-35에서 적용한 위성 데이터링크 및 은밀 네트워크 기술을 총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B-21은 세계 어떤 표적이든, 어떤 나라의 영공이든 몰래 침투해서 공격할 수 있고, 자신이 적진에 침투하면서 얻은 정보를 아군에게 공유하면서 적을 마비시킬 수 있다.
마지막 요소는 ‘모든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B-21이 기존 B-2 폭격기에는 없는 공격적인 전자전(EW) 능력을 갖출 것이며, 심지어는 사이버전 능력, 즉 적의 민간 전산망 등에 침투해서 교란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전자전 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즉, B-21이 침투해서 적 표적에 폭탄을 투하하면서, 동시에 적의 민간 인터넷망에 폭격 위치를 가짜로 알리는 스팸 문자를 건네거나, B-21을 요격하려는 요격기에 적극적인 전자 공격을 수행해서 요격을 방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여기다가 향후 B-21을 보조할 윙맨 무인전투기를 붙이거나, 전자전 무기보다 발전된 EMP 펄스 무기나 레이저 무기를 장착하게 된다면 육/해/공의 모든 표적에 B-21이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B-21 레이더는 이렇게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미국 항공 기술의 결정체이자,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중국과의 전쟁을 가정해 만들어진 최초의 군용 항공기이자, 미국 국방장관이 B-21이 “확장억제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확장억제를 매우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미국의 동맹국이 도발 혹은 핵무기 공격을 받을 때 다양하고 ‘적절한 수단’으로 대응과 보복을 해주겠다는 개념이다. 핵우산과 다른 것은 동맹국이 핵 공격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핵미사일로 보복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 그때그때 적절한 비핵/핵무기를 골라서 보복하겠다는 점이 핵우산과의 차이점이다.
이 관점에서 보았을 때, B-21을 배치하는 2026년 이후의 한반도와 동아시아 안보 상황은 지금과 상당히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B-21은 스텔스 폭격기이자, 오직 미국 본토에서만 출격하기 때문에 미국이 보복이나 방해받을 우려 없이 필요할 때 자유롭게 B-21을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켜 북한과 주변국을 압박하거나, 심지어 남몰래 비행한 뒤 필요할 때 공개하는 방식으로 확장억제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군과 정부는 B-21이라는 미국의 새로운 확장억제 수단을 우리 국익에 맞춰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미국은 앞으로 어떻게 북핵 억지를 할 것인지 연구와 대비가 필요한 대목이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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