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 주요 대기업의 연말 인사 키워드는 ‘여성’이다. 눈에 띄게 늘어난 여성 CEO 발탁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견고했던 유리천장이 깨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정말일까.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비즈한국이 우리나라 20대 기업의 여성 임원 현황을 조사했다.
#‘첫 여성 사장’, ‘첫 여성 대표’ 연일 화제이지만…
삼성전자의 2023년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첫 여성 사장의 발탁이다. 삼성전자는 5일 이영희 삼성전자 DX부문 글로벌마케팅센터장이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으로 승진한다고 밝혔다. 오너 일가 출신이 아닌 여성으로는 첫 번째 사장이다. 이 사장은 로레알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로 200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갤럭시 마케팅을 이끌었다. 2012년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삼성의 첫 여성 사장 후보로 거론돼왔다.
유통가에서도 다수의 여성 CEO가 나왔다. 지난달 LG생활건강의 새 대표로 이정애 부사장이 선임됐다. LG그룹 최초의 여성 사장이 된 이 대표는 1986년 LG그룹 공채 출신으로 LG생활건강에 입사해 생활용품, 럭셔리 화장품 사업 등을 담당했다.
CJ그룹은 지난 10월 CJ올리브영의 대표로 이선정 신임대표를 발탁했다. 이 대표는 2006년 올리브영에 MD로 입사해 15년 이상을 MD 전문가로 지냈으며 올리브영의 첫 여성 CEO로 주목 받는다. 11번가는 안정은 최고운영책임(COO)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 내정했다. 11번가의 첫 여성 CEO인 안 내정자는 11번가의 운영을 총괄한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 전문가로 불린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 대기업에서 여성 CEO가 발탁된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고 상징성이 있다”며 “여성 CEO가 나온 기업 내 분위기는 고무적일 것으로 보인다. 성별에 관계없이 능력이 있으면 임원까지 올라갈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갖췄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등기임원 27명 중 사내이사는 네이버 2명뿐
전문가들은 능력 있는 여성 리더가 늘어나는 일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제 발걸음을 떼는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기업에서 리더로 성장할 만한 여성 관리자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여성 임원 비율이 8.7%로 OECD 가입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김 연구위원은 “OECD 가입국 중 여성 임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아이슬란드다. 여성 임원 비율이 47%에 달한다”며 “10% 미만인 곳은 헝가리(9.4%)와 우리나라뿐이다.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국내 여성 임원 비율이 굉장히 낮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수치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만 해도 국내 여성 임원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3년 새 임원 비율이 3배 이상 늘었다. 제도적으로 기업이 여성 임원을 발탁하도록 강제한 효과다.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8월 시행된 자본시장법은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기업은 이사회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때문에 최근 주요 대기업이 여성 임원 발탁에 시동을 걸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올해 여성 CEO, 임원의 발탁이 늘어난 것은 제도적 효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비즈한국이 시가총액 상위 20대 기업(2022년 12월 5일 기준)의 여성 임원 숫자를 조사한 결과, 여성 임원 비율은 6.3%에 불과했다. 20대 기업의 전체 임원 수는 3380명인데 그 중 여성 임원 숫자는 214명에 그쳤다.
기업의 여성 임원 숫자는 대부분 한 자릿수에 머문다. 삼성SDI와 SK는 9명, 셀트리온·삼성물산·KB금융 8명, 삼성바이오로직스·SK하이닉스는 5명, LG에너지솔루션·신한지주는 3명 등으로 나타났다. 여성 임원 숫자가 가장 많은 곳은 삼성전자로 총 66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임원 수(1115명)가 많다 보니 여성 임원의 숫자도 타 기업보다 많다.
전체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카카오(24.1%)다. 카카오는 전체 임원 29명 중 7명이 여성 임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14.7%), LG화학(10.1%), 네이버(17.5%), KB금융(19.5%), 신한지주(10.3%) 등도 여성 임원 비율이 두 자릿수로 집계됐다.
아직은 기업이 여성 인재 육성에 소극적이라는 한계점도 엿볼 수 있다. 등기임원 중 여성 임원은 대부분 외부 인사인 사외이사에 편중됐기 때문이다. 20대 기업의 여성 등기임원 27명 중 25명은 사외이사다. 20개 기업 중 19개 기업이 여성 등기임원을 사외이사로 두고 있다. 여성 사내이사가 있는 곳은 네이버가 유일하다. 네이버는 최수연 대표이사와 채선주 ESG·대외정책 대표가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김난주 연구위원은 “여성 임원 중 사외이사 비중이 높은 것은 회사 내부에 임원까지 올라갈 인재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이 내부적으로 여성 인력을 육성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며 “사원급으로 시작한 여성들이 경력단절 등의 문제로 관리직까지 올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교수 등 전문직 여성을 외부에서 발탁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하지만 여성 관리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대기업에서 시작된 지금의 분위기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의 확대가 필요할 것”이라며 “현재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기업에만 여성 인재 활용을 강제하고 있는데, 더 많은 기업으로 확대할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
코로나19 토종 1호 치료제·백신 '용두사미' 초라한 현주소
·
'서울시민의 발' 시내버스 10대 중 1대는 이 사모펀드 소유…차파트너스 '공공성 훼손' 논란
·
16시간 교육으로 정품 감별? 민간 자격증 '명품감정사' 전문성 논란
·
매출 257억 원, 영업적자 352억 원…당근마켓, 대표이사 교체 카드 빼들었다
·
'공유 킥보드도 난린데…' 강남에 등장 '공유 스쿠터'에 우려 나오는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