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는 스타 작가 탄생에 초점을 맞춘 다른 공모전과 달리 민주적으로 작가를 발굴해 미술계의 텃밭을 기름지게 하려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특정 경향이나 장르 혹은 미술 활동 경력, 나이에 상관없이 대상 작가의 스펙트럼이 넓다. 일곱 번의 시즌을 통해 180여 명의 작가를 발굴했다. 이 중에는 미술계에 첫발을 내딛은 작가가 있는가 하면, 활동 경력이 풍부한 작가도 있었다.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작가도 나왔고, 작품 활동의 모멘트가 된 작가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프로젝트 출신 작가들이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협회’를 만들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결실이다.
아침 일찍 걸려오는 전화 소리에 걱정 가득 질문도 가득/어디 멀리 노래하러 갔었다더니 그래 집에는 언제 온 거니?/글쎄, 밤 열두 시 넘었는데 잘 모르겠네, 아주 늦은 밤은 아니었어요./가게들은 문을 닫고 텅 빈 역 안엔 대낮같이 불만 켜져 있었어./택시를 기다리는 사람 많아 이 추운 날에 고생할 뻔했는데/이제 이사하고 난 뒤로는 염려 없어요. 집에까지 금세 걸어왔어요./ (중략)
엄마 나는 대학 가면 그림 그려서 멋진 화가가 될 줄 알았지/허나 딴짓을 아주 열심히 하였더만은 이젠 노래하며 잘 살아갑니다./엄마 요즘 고향 가는 기차는 말야, 아주 좋아 빠르고 세련됐어요./서울역에서 출발하고 두 시간 남짓이면 우리 살던 동네에 도착하잖아./내가 고등학교 내내 친하던 그 친구 있지, 걔도 지금 서울 살아요/지하철 4호선 타고 서울역에서 출발하면은 한 시간이면 주희네 집이야. (하략)
젊은 싱어송라이터 정밀아의 ‘서울역에서 출발’이라는 노래의 일부분이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대답하는 형식의 내용으로 재미있게 엮었다. 소소한 일상사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MZ세대 정서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잔잔한 노래다. 이 노래를 들으면 정밀아는 서울역 근처에 살며 중남부 지방 출신, 미대에 진학했지만 가수가 되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젊은이다. 친구는 4호선으로 한 시간 거리에 사니까 노원구쯤 될 것이다. 가사도 서울역 어느 카페에서 쓴 것 같아 보인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이러한 흐름은 최근 우리 문화예술계를 주도하는 한 현상이다.
그동안 한국 문화예술은 이념 과잉에 시달려왔다. 예술이 주로 다룬 주제는 정치적인 것이나 지적 허영주의, 철학 사상, 복잡한 조형 이론이나 개념 그리고 외래 사조의 추종 등이었다. 그래서 예술은 언제나 심각했다. 사회적 이슈나 환경 문제, 물질문명 비판 혹은 역사적 갈등이나 이데올로기 등을 주제 삼아 왔다. 이런 예술은 언제나 가치 있는 것으로 대접받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자신이 주체가 되는 공정하고 투명한 가치에 무게를 둔다. 사회적 이슈보다는 개인의 개별적 가치를 중시한다. 이러한 생각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사에 가치를 두는 예술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기존 예술계에서 주제로 다루지 않았던 소소한 일상사가 각광받는 주제가 되었다.
이엘리도 그런 흐름에서 주목 받는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이런 것도 회화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주제가 중심을 이룬다. 정밀아 같은 가수의 노래, 친구와의 여행, 반려견의 일상, 모닝커피, 창문 밖으로 보이는 별, 자신의 방에 놓인 화분 등이 그림의 내용이다. 작가는 이런 주제를 그림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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